도급자의 안전사고 책임, 지나친 강제가 아닌 지휘감독권 부여가 핵심

국토부, 안전사고에 따른 책임을 도급자에도 강제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

현대산업개발 부산 북항대교 공사현장 사고, 뒤늦게 사실 밝혀져

도·수급자 사이의 안전사고 책임 문제, 현장에 도급자 측 안전관리 지휘감독권 부여로 해결

과거 부산시 북항대교 공사현장에서의 사고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당시 공사를 도급했던 현대산업개발 그리고 수급자들의 안전사고 책임 문제가 새롭게 대두됐다. 사진은 현대산업개발 서울 삼성동 사옥. (사진=한민철 기자)
한민철 기자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해 도급자가 그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수급자에게 전적으로 떠넘기려 하는 관행이 여전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물론 도급자는 수급자에 업무를 위탁하며 안전사고 관리감독의 의무까지 넘겼기 때문에 자신들에게까지 사고 발생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관계 부처에서는 도급자에 안전사고 책임을 강제로 지우는 방안으로 관련 규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 도급자 측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최근 법원에서 판결이 나며 밝혀진 현대산업개발의 과거 부산시 북항대교 공사현장 사고 사례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간접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는 잇단 철도사고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차량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철도 안전관리체계 기술 기준’을 개정했다.

이 개정안에는 철도 운영자 및 시설관리자가 위탁업체를 활용해 업무를 하더라도, 철도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위탁업체에게 전적으로 지우는 것이 아닌 자신들도 지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시 말해 특정 일을 의뢰하는 ‘도급자’ 그리고 해당 일에 대한 의뢰를 받는 ‘수급자’ 사이에서 업무가 진행되면서 실무가 수급자를 통해서 대부분이 이뤄진다 할지라도, 그 업무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은 수급자뿐만 아니라 도급자 역시 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당시 철도시설 관리자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국토부의 개정안이 부당하다며,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철도시설공단은 대부분의 업무가 도급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수급자의 잘못을 통해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 도급자 측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철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건설 및 토목 등의 분야에서 수급자에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특정 업무의 일부만이 아닌 전부를 위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사실상 업무 전반을 위탁받은 수급자가 업무 중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하며, 도급자의 책임은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자 건설기술진흥법 등 관련 법규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과거부터 국내 산업계에서는 도급자와 수급자 간 도급계약에 있어, 수급자에서 비롯된 안전사고에 대해 도급자가 면책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는 대법원 판례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1991년 3월 8일과 1993년 5월 27일 대법원의 선고 내용(사건번호 90다18432, 92다48109)에서는 도급계약에 있어 수급인으로부터 비롯된 손해에 관한 도급인의 책임 정도에 대해 명시돼 있다.

대법원은 “도급계약에 있어 도급인은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수급인이 해당 일에 관해 제3자 등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은 없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도급자와 수급자 간의 관계에서 업무 중 안전사고 등 과실에 대한 책임은 수급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에 일부 도급자들이 공사 단가를 허위로 낮춰 수급자들을 싼값에 고용하면서, 안전사고 책임에 대해 지나치게 회피하는 등 ‘갑질’을 한다는 문제는 업계 내외부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특히 수급자 측이 그 도급자들의 불평등한 계약 제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재도급을 하는 등의 ‘또 다른 갑질’을 행하며, 수급자 아래의 또 다른 회사에 그 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도급인이 수급인의 업무 진행 및 방법 등에 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업무 시행에 관해 구체적으로 지휘감독을 한 경우, 도급인은 민법 제756조에 의해 수급인의 과실에 따른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바라봤다.

만약 도급인을 통해 업무에 대한 지휘 및 감독이 수급인에 이뤄진다면, 이는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관계로 당연히 사용자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도·수급자 양측의 수급자의 과실로 인한 도급자의 책임 여부에 대해, 까다로운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최근 수급자의 안전사고에 도급자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현대산업개발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부산 북항대교 공사현장 안전사고 문제

현대산업개발(회장 정몽규)은 지난 2006년 부산시와 부산 북항대교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이듬해 사업비 수천억원 규모의 부산 북항대교 건설공사 계약을 최종적으로 따내며 착공에 들어갔고, 이후인 지난 2014년 4월 북항대교의 완공 소식을 전했다.

북항대교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을 연결하는 다리로, 광안대교와 남항대교 사이의 허브 그리고 부산 내 항만 물류에 대한 원활한 수송 및 교통난 완화 역할 등을 해오고 있다.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을 연결하는 북항대교. (사진=연합)
그런데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이 북항대교에서도 완공을 앞둔 지난 2013년 다소 큰 사고가 발생했었다.

본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2월 9일 북항대교는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날 오전 현장에서는 크레인 위 바스켓에 근로자들이 탑승해 향후 북항대교의 요금소가 지어질 구조물의 상부에 올라가 외벽에 설치한 패널 사이의 틈을 실리콘 처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컨테이너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이 공사현장을 지나고 있었고, 해당 트럭의 운전사는 크레인은 봤지만 크레인과 연결돼 바스켓을 지지하는 ‘붐대’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트럭 내 컨터이너가 붐대 끝에 위치한 바스켓에 부딪쳤고, 바스켓에 타고 있던 근로자들이 추락해 큰 상해를 입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다행히도 이들 근로자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트럭 운전사 측으로부터 치료비를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근로자들은 현대산업개발 직원들이 아니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이 사고가 발생하기 반년 전인 2013년 6월 관리사무소와 요금소 건축설비공사를 A사에 도급했고, A사는 이 공사 중 창호와 유리, 패널, 잡철 공사를 또 다른 B사에 도급했다.

이어 B사는 패널 공사 중 복합패널 설치공사 부분을 C사에 재하도급했고, 사고가 발생했던 날 C사는 D라는 건축업체로부터 근로자들을 공급받아 요금소 외벽작업을 의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리해 보자면, 최초 도급자는 현대산업개발 그리고 수급자는 A사, 이후 A사는 다시 B사에 도급, B사는 C사에 도급, C사는 D사로부터 외벽공사 근로자들을 공급받았고, 이들이 해당 사고를 당했다.

제4의 하도급으로 갔던 북항대교 공사는 한동안 보상 책임에 대한 공방으로 이어졌다.

사고를 일으킨 트럭에 대해 자동차공제계약을 체결했던 회사는 당시 사고가 트럭 운전사의 전방주시 소홀이 원인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크레인의 바스켓이 이 차량의 통행 높이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돼 있는 채로 그 바스켓 안에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또 공사현장 주변은 평소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 차량이 빈번히 통행하는 차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호수 또는 통제수를 둬서 진입하는 화물차량을 통제하거나 차량과의 충격을 피할 적절한 조치가 되지 않은 채 작업을 진행한 부분도 지적했다. 때문에 트럭 측의 전적인 과실은 아니었다는 주장이었다.

A사와 D사가 트럭 측이 자동차공제계약을 맺은 회사와 과실에 대해 가리는 도중, 현대산업개발의 책임에도 시선이 향했다. 이번 사고에 따른 과실 책임이 현대산업개발 측에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사고에 따른 책임을 지우려는 지적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측도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은 단순히 북항대교 관리사무소와 요금소 건축설비공사를 A사에 도급했고, 이 공사 부분에 있어서 안전관리 등 모든 사항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 역시 수급사에 있다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현대산업개발은 A사에 재하도급을 금지하도록 했지만, A사가 사실상 이를 어기고 B사 등에 재하도급을 한 것이었다. 때문에 현대산업개발은 오히려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의무가 있다기보다는 중요한 공사에 잡음을 맞게 된 피해자라는 목소리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

결국 이 사고에 대한 과실 책임은 소송으로까지 번졌는데, 최근 법원은 현대산업개발 측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판결을 내놨다.

강제로 책임 지우기보다 현장에 도급자 측 ‘안전관리담당자’ 세운다면…

이 사건의 소송을 담당했던 부산지방법원은 현대산업개발 측에게도 이번 안전사고에 따른 과실 책임이 있다며 A사와 함께 공동으로 트럭 측이 맺은 자동차공제계약 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대산업개발은 수급사에게 공사 업무를 위탁하면서, 그에 따르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맡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대법원의 지난 1991년 3월 8일 등 판결에서 제시한 조건의 내용처럼 당시 ‘구체적 지휘감독권’을 현대산업개발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산업개발은 북항대교 공사에 있어 관계기관과 협력해 공사현장 및 주변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이에 공사현장 부근에 위험표지판, 신호등을 설치하며 교통통제 업무를 지휘하는 등 현장을 총괄하는 ‘안전관리담당자’를 자사에서 고용해 배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 안전관리담당자가 수급자인 A사가 이행해야 할 안전사고 등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감시하고 사실상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판단이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대법원 판례 내용처럼 현대산업개발은 A사가 자사로부터 위탁받은 업무에 관해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경우 도급자인 현대산업개발이 민법 제756조에 의해 수급자 A사의 과실에 따른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재판부는 “현대산업개발은 공사현장에 안전관리담당자를 두고 위험요인을 관리하며 안전관리업무를 총괄했다”라며 “현대산업개발과 A사를 비롯한 하수급인들 사이의 관계는 실질적으로 사용자 및 피용자와 다를 바가 없으므로 현대산업개발 역시 사용자책임을 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A사 역시 B사 및 C사에 대해서는 도급자 입장으로서 당시 공사현장을 관리감독했던 것으로 파악됐고, 역시 A사도 사용자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현대산업개발의 북항대로 공사 사고는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관해 도급자와 수급자 간 법적인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아무리 도급자가 모든 업무를 수급자에게 맡겼고 때문에 향후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수급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며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하려 할지라도, 사고 당시 공사현장 및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고 있었다면 안전사고에 대한 사용자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대로 국토부가 철도 안전관리체계 기술 기준 개정 등을 통해 도급업자에 무조건적인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려 한다면 큰 반발에 부딪힐 뿐이었다,

그러나 도급자가 자유롭게 수급자와 도급계약 조건을 반영하되 업무 현장에 안전관리담당자를 둠으로써 실질적으로 현장의 지휘감독권을 행사하게 한다면, 도급자 역시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수급자에 안전사고 관리감독의 책임을 전적으로 전가하는 ‘갑질’까지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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