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이론에도 없는 정책…되레 핵심 지지층 발등 찍었다

‘고용ㆍ분배쇼크’ 국내 경제 강타 文 정부 ‘소득주도성장’ 흔들

자영업자ㆍ저임금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피해 집중, 집단 반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양대 컨트롤타워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사진=연합)

강민경 기자

‘고용쇼크’와 ‘분배쇼크’가 잇따라 국내 경제를 강타한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갈림길에 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취업자 수는 2708만3000명으로 1년 전보다 5000여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취업자 증가치인 31만명과 대비했을 때 6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다. 또한 실업자 수는 100만명대를 7개월 연속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체감 청년실업률은 22.7%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공공 일자리 확충에만 33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노동시장에서 긍정적인 시그널은 보이지 않았다.

고용쇼크에 이어 소득분배 지표까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2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소득 하위 20%의 가구소득이 급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소득 가구와 고소득 가구 간 소득격차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10년 만에 최악의 분배 성적표가 발표되자 전문가들은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라는 3대 축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3대 축의 선순환에다 일자리 창출까지 포함하는 것이 이른바 ‘제이(J)노믹스’다. 그 가운데서도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꼽힌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 그들의 소비 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소득주도성장을 이끄는 양대 컨트롤타워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참여연대 출신인 장하성 실장은 문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자 현 정부의 핵심 실세 3인방 중 한 명으로 지목된다. 장 실장은 현 정부 집권 초기부터 소득주도성장 정책,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의 주창자이자 문 대통령에게 최초로 소득주도성장론을 설파한 인물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개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목받기 시작해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간한 보고서를 계기로 알려졌다. 홍 전 수석은 이 개념을 기반으로 부경대 교수 재임 시절인 2012년 논문을 작성하는 등 최근 10여년간 관련 연구에 매진해왔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소득주도성장을 이끌어온 홍 전 수석은 지난 6월 신설된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이는 사실상 ‘경질’로 해석됐다. 지난 1분기에 양극화 심화 및 일자리 정책 부진이 통계로 나타나자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장하성 실장ㆍ홍장표 전 수석이 소득주도성장 ‘투톱’

올 2분기 통계에서는 각종 지표가 더욱 악화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취업자 증가치가 60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소득 상ㆍ하위 격차는 5배를 넘어섰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경제학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론의 모호한 정체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이른바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온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근거하긴 하지만, 임금주도성장 자체는 경제학의 개념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소득 주도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근거가 경제이론상 무(無)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성장 이론 가운데 그러한 원리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경제성장 실패 및 고용시장 경직 등의 근본 원인은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경제성장 이론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또 “홍장표 전 경제수석 본인이 쓴 논문에 해당 명칭이 나오고 국제노동기구(ILO)가 발간한 출판물에서도 ‘임금주도성장’이란 명칭이 몇 차례 언급되긴 하지만 경제성장 이론으로 보기엔 무리이고 실제로도 경제성장 이론이 아니다”라며 “홍 전 수석이 쓴 논문도 해당 개념을 간단히 테스트한 정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경제성장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용상황 관련 긴급 당정청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오늘날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현실성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에 대공황이 발생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 케인지언 학자들의 주도로 ‘유효수요 진작’ 정책을 적용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효과로 끝났고 또 그것은 수십 년 전 시대에 맞아떨어진 개념이었다”며 “지금은 일반인들도 물건이 필요하면 웹사이트에서 해외 직구(직접구매)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이자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 시대인데 임금을 올리면 국가 생산이 늘 것이라는 것은 다소 옛날식 사고”라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주요 세부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도 뜨겁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취업자 증가폭이 1만명 밑으로 떨어졌던 때는 지난 30년간 다섯 차례에 불과한데,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이 없는 현재의 시기에 고용쇼크가 발생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 17일 통계청 자료에서 시장원리에 따라 일거리가 없으면 취업자가 줄어드는 제조업, 교육서비스업, 사업시설관리ㆍ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의 고용이 각각 12만7000명(-2.7%), 7만8000명(-4%), 10만1000명(-7.2%) 감소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 근로자 일자리 감소

특히 관련 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해당 업계 관계자들은 “임금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인 서비스업과 제조업 순으로 고용 타격이 심하다는 것이 통계청 보고서에서 입증됐다”며 “이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나비효과”라고 지적했다.

자영업자 A씨는 “최저임금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을 때는 오히려 시급보다 더 높게 임금을 책정했었고, 임금 부담이 덜하니까 한 명이라도 더 고용하고 좀 편하게 경영하자는 생각이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직접 일하거나 가족들에게 부탁하자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고용주도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데 순수익이 줄어드니 어쩔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업계에서는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급락해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소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제조업의 경우 보통 자재를 구매해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물건을 납품하는 식인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재료 단가가 올라 비싼 가격에 재료를 살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대기업에 납품할 때 그만큼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까 눈치가 보여 그대로 납품할 수밖에 없고, 결국 마진율이 크게 떨어져 중소기업 업계 내부에선 경영하기 너무 힘들다는 말이 정말 많이 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고용시장 축소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부터 경제침체가 이어진 것이 고용한파의 근본 원인이라며 잠재성장률 하락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잠재성장률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고용이 감소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면서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는 낮은 잠재성장률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고, 또한 최저임금 인상도 고용시장 축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고용시장 경직으로 인해 노동 총임금의 감소로 이어지는데, 이는 자영업자와 저임금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시장 취약층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며 “결국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노동시장 취약층을 더욱 힘들게 하면서 포용적 성장이 아닌 배제적 성장을 야기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성장 정책이 아닌 분배 정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소득증대와 경제성장은 하나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분배 정책과 경제성장 정책을 별도로 수립해 시행하는 것이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성장 정책 아닌 분배 정책 성격이 짙어

김소영 교수는 “현재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 근로장려세제 등의 정책은 사실 분배 문제ㆍ노동자 문제ㆍ복지 문제 등과 더 많이 관련되어 있다”며 “경제정책을 수립할 때는 분배와 성장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는 경제정책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교수 역시 “적정한 최저임금 인상은 납득이 가지만 이제 정부는 급조된 이벤트성 단기 공약을 내려놓고 중장기적으로 경제를 바라봐야 한다”며 “노동자와 사용자가 모두 국민이기에 노동과 자본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선 안 되며, 최대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도록 노력하되 노동시장의 역동성과 생산성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야권에서는 정부가 균형 잡힌 시각과 기준으로 경제정책의 시행 방향 등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기재위 간사)은 “양극화가 심하고 분배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부응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있을 수 있으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성장 정책”이라며 “경쟁력 강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해 실용적인 목표를 세워 구조개혁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허상을 둘러싼 공리공론이 이념 대립으로 번지면 국정이든 국민의 삶이든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민경 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