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국제정세 한국에겐 버거운 파고… 안테나 높이고 호재·악재 현명하게 대처

지난 11월 28일 오후 홍콩 센트럴 에딘버러 광장에서 열린 미국 인권 및 민주주의 법안 통과 추수감사절(Thanks USA)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을 들고 있다. 연합

경제로 읽는 트럼프 탄핵

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 1월 21일에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2019년 12월 현재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 지수가 2만8000 선을 오르내리니 취임직전 지수인 1만9817 대비 3년 만에 40% 넘게 급등한 셈이다. 트럼프 집권 이래 미국은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전 세계가 경기불황에 허덕이는 동안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NATO와 일본 및 한국을 상대로 미군 주둔비에 바가지를 씌운 계산서를 내밀고 있으며, 사우디로 하여금 막대한 군사물자를 수입하게 하는 등 장사꾼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붉은색 선거구호였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철저히 구현해 내고 있다.

이 와중에 정적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공화당)을 하원에서 탄핵하였다. 탄핵증서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겠다는 그녀의 호언은 야당이 장악한 하원에서 무난히 통과되었다. 다만, 탄핵을 헌법을 통한 혁명으로 본다면, 모든 혁명의 씨앗이 배고픔이었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대통령직 파면은 경제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취임 이래 주가지수 40% 상승과 실질적 완전고용(실업률 3.5%)으로 국민을 배부르게 만든 이상, 자본주의 종주국이 염치와 도덕과 같은 정신적 배고픔을 빌미로 수장을 교체할지는 매우 의문이다. 트럼프가 저질렀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나 러시아의 선거개입설도 태평가 속에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제시된 증거조차 흐릿하기 때문이다. 경제지표가 증명하는 미국의 호황기에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이 내년 2월 언저리에 자당 소속 대통령을 쫓아낼 가능성도 비현실적이다. 정작 심판의 날이 필요하다면 몇 개월 뒤인 내년 11월 3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대안으로 내세워 은근슬쩍 넘어가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우산혁명과 홍콩증시

지난 11월 24일, 홍콩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우산혁명의 민주파가 90% 가까운 압승을 거두었다. 중국 기관지들은 금번 선거에서 기록된 유권자 70% 선거참여율과 90%를 넘는 몰표에는 조직적 선거부정의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베이징의 고위층들은 작금의 홍콩이야말로 골수 공산당 같아 보인다는 쓴 농담을 던지기도 하였다. 선거결과가 공개된 11월 25일 새벽에는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의 트레이더들이 호들갑을 떨며 향후 친중국파의 궤멸이 주가지수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아시아 외환시장을 어떻게 뒤흔들 것인지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베이징과 홍콩에 2중, 3중의 안테나를 가동하며 가장 믿음직한 정보자산을 총동원하였다. 선거 직후 이틀 동안 500 포인트(약 +2%)가 넘는 항셍 지수의 상승에 선악이 판별되었다. 감격스러운 사건이 생겨도 증시가 폭락하면 민심은 동요하기 마련이지만, 증시는 화답으로 홍콩인들의 ‘선거 심판’을 추인하였다. 학생들에 의해 주동된 민주열풍에 외국인 자금까지 가담한 자본시장은 일단 합격판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앞으로 증시가 급락하고 홍콩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되면, 자본시장은 홍콩의 민주열풍에 반대표를 던질 개연성도 그만큼 크다. 유독 올해 홍콩의 성탄절에는 마천루에 걸려진 꽃등의 밝기와 화려함이 예년에 비해 덜했고 그 숫자도 적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콩의 성탄절이 금년에 블랙 크리스마스(Black Christmas)라고 칭해진 이유는, 건물주들이 중국본토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홍콩정부가 예년과 같이 세금환급이나 막대한 재정을 풀면 풀수록, 중국 본토의 견제도 그만큼 거세질 것이다. 우산혁명파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를 감안하여 장기전을 꾀하자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나서기 좋아하지 않던 홍콩 중산층이 투표로 무혈혁명의 전초전에 대거 동참했지만, 전면전은 피하자는 실리적 목소리는 점점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계속 전진이든 전략적 역주행이든 신년 초에는 목표를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 다가올 것이다.


요트지수(Yacht Index)와 불황의 징후

초호화 요트 시장은 소수에게만 알려진 글로벌 경기의 시금석이다. 초호화 요트를 굴릴 정도의 수요자는 세계적으로도 억만장자이자 똑똑한 자산가(Smart Money)인 바, 이들의 행태가 글로벌 경기를 선행한다는 논리이다. 스티브 잡스나 아랍 왕족이 보유했다는 수 천억 원대의 호화요트는 상상을 넘어서는 가격표 외에도 하루 유지비만 몇 억씩이 든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웬만한 부자들에게는 공짜로 줘도 유지하기 어렵다. 역으로 어지간한 경기불황에도 무풍지대이며 부동의 수요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초고가 사치품이다. 이 같은 특수한 자들의 애장품인 초호화요트 시장도 2019년도 매출액이 작년 동기대비 무려 45%가량 감소하였다. 불황의 또 다른 징후이다. 10월 독일의 산업생산(-5.30%, YoY) 또한 2009년 11월 이래 최대의 낙폭을 기록하였다. 그래프만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가장 스산한 모양새다. 미국경제 다음으로 세계경제의 가장 우등생이라는 독일경제지표가 가리키는 시침과 분침도 불황을 향하고 있다.

혼돈의 국제정치와 각자도생(各自圖生)

국제정치 리스크는 주요국의 선거일정에 따라 반복되기 마련이나, 금번에 도래하는 정치계절은 이상기후에 가깝다. 특히, 지난 몇년간 한국경제의 선행지수라 할 수 있는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오작동으로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고, 후행국 중국은 드디어 저성장의 덫에 신음하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제적 선거의 해’인 2020년 주요국들은 외치와 국제공조를 뒷전에 둔 채 자국의 내치와 선거 이슈에 매몰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4년전 히트상품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이제 전세계로 전염되어질 것이 뻔하다. 예컨대, 4년 전 불쑥 테이블 위에 던져진 이른 바 Apple세(Apple Tax)는 미국 대선국면에 대하여 EU가 펼친 선제적 방어책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이 높다. 조세감면국인 아일랜드를 명목상 본사로 뒀던 애플사의 절세 전략을 EU가 전면 부인한 것은 다분히 2016년 미국내에서 벌어진 선거국면에서 대EU 제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생산거점을 제법 많이 가진 한국의 재벌사들이 신년에 경계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하는 반면교사의 사례이기도 하다.

FTA(Free Trade Agreement)를 비롯한 정치-경제-군사-외교 등 타국 선거판에서 전방위적으로 거론될 모든 이슈가 한국에게는 버거운 파고로 밀려들 가능성이 높다. 피비린내 나는 자국 정치판을 이겨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타국에게는 추한 히스테리와 정치적 카드를 남발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에 2020년에 퍼져나갈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구호는 주머니에 여러 개의 송곳을 숨기고 있을 것 같아 두렵다. 이 같은 환경에서 경제적 생존성을 높이려면 격동격변의 변동성에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호재와 악재를 현명하게 인수분해하여야 한다. 예컨대 전 세계가 불황의 터널에 갇혔어도 나스닥(Nasdaq)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지 않았는가!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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