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연합

올 들어 많은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디지털화폐를 연구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한 가운데 디지털화폐의 패권을 쥐기 위한 국가 간, 단체 간 보이지 않는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최근 다보스포럼은 글로벌컨소시엄을 발족했으며, 국제결제은행은 중앙은행들과 함께 새로운 연구 그룹을 만들었다. 다보스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y Forum)은 지난 1월 24일 디지털화폐에 대한 거버넌스 관리체계 설계를 목표로 하는 글로벌 컨소시엄(이하 ‘컨소시엄’)을 발족했음을 발표했다. 이 컨소시엄은 금융 수용성과 상호 운용 가능한 혁신적인 정책에 대한 해결책들을 통해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공간이 적절하게 규제되고, 선진국과 고성장 시장에 걸쳐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포함되어야만 금융 수용성에 대한 기회들이 열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국가나 전문가들에 대한 정보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함께 하는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국제적이고, 다중의 이해관계자들의 접근을 강조함으로써 선도적인 기업, 금융기관, 정부 대표, 기술 전문가, 학계, 국제기구, NGO, 다보스포럼 구성원들을 글로벌 차원에서 모두 모아 함께 이끌어 나갈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컨소시엄을 통해 디지털화폐에 대한 논의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컨소시엄은 각 국가별로 세분화된 규제 시스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효율성, 속도, 상호 운용성, 수용성 및 투명성 등이 컨소시엄 이니셔티브의 핵심이 될 것임을 밝힌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혁신적인 규제 접근법을 제시하여, 디지털 통화가 제시하는 기회를 탐색하는 공공 및 민간의 행위자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지침 원칙을 함께 설계할 것임을 강조한 데서도 그 맥락을 엿볼 수 있다. 컨소시엄 발족에 앞서 세계경제포럼은 지난 1월에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정책 개발 툴킷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거버넌스의 핵심은 공동 설계에서 발행에 이르는 CBDC의 생애주기를 다루는 규칙과 관행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는 법적인 평가, 이용자 참여, 금융 관리, 성능 관리, CBDC 종료 등에 대한 범주의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 보고서의 목적은 CBDC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종합적이고 위험 인식기반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신중하고 다양한 해결책에 대한 고려, 거버넌스 전략, 다수의 이해관계자 등 여러 요소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는 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국제결제은행, 6개 중앙은행과 실용화를 위한 그룹 결성

반면에 세계경제포럼에 앞서 지난 1월 21일에는 영국은행, 캐나다은행, 일본은행, 유럽중앙은행, 스웨덴은행, 스위스국립은행 등 6개 중앙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과 함께 CBDC에 대한 사례 연구를 통한 경험 공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그룹을 결성했다. 공동의장으로는 BIS의 혁신 허브 책임자인 베노우트 쿠레와 영국은행 부총재인 존 커닐리프가 맡는다. 한동안 CBDC에 대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일본은행의 참여는 일본이 그동안 내부적으로 CBDC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가장 이른 시기부터 CBDC에 대한 연구를 가장 활발하게 진행해 왔던 영국 또한 지난 2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나 이번 참여로 이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 그룹은 국경 간 상호 운용성을 포함한 경제, 기능과 기술적 설계, 선택 사항 등을 포함하는 CBDC 사용 사례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식도 공유하게 된다. BIS는 CBDC와 관련이 있는 기관과 포럼 특히, 금융안정위원회와 지불 및 시장 인프라 위원회(CPMI)와 긴밀하게 협력할 것을 밝혔다. 이 그룹은 CBDC를 다루는 다수의 중앙은행들이 직접적으로 나서는 최초의 사례이다. 그동안 2~3개의 중앙은행간 CBDC에 대한 개별적인 주제에 대한 개념 설계 및 실험을 위한 시도는 여러 사례가 있었으나 이처럼 CBDC에 대한 포괄적인 협력이 구체화된 것은 처음이다.

비트코인

디지털화폐 주도를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은 ?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게 될 경우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떤 기술로, 어떠한 체계로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 다음은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했을 경우 미치는 금융환경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모두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더 나아가 이 두 가지의 문제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서로 나누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있다. 디지털화폐를 구현할 기술들에 대한 논쟁이 가장 첨예한 상태이다. 블록체인 등과 같은 분산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을 주장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블록체인과 같은 분산원장 기술로는 현재 수준의 금융거래를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분산원장 기술이 디지털화폐의 특정 운영 부분에 사용될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이는 중국은행의 CBDC 연구에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디지털화폐에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는 디지털화폐의 운영체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여기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체계가 디지털화폐 이용자의 원장관리를 중앙은행이 직접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 경우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기존 금융체계가 송두리째 바뀐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상업은행의 역할이 사실상 상당 부문 사라지는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은행이 모든 이용자의 원장을 관리할 경우에 파생되는 문제들에 대한 것이 또 새로운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모든 국민들의 돈의 흐름을 관리하게 되어 금융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중앙은행이 과연 모든 국민들의 금융 거래 등을 보관하여 관리가 가능할 것인가도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중앙은행에 모든 금융 활동 정보가 집중된다면 시스템 장애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융 시장 전체가 마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 된다.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하여 중앙은행이 이용자들의 원장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은 최근 논의에서 점차 배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다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상업은행의 원장 관리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분산원장 기술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실험들은 다수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전히 이용자에게 제공될 디지털화폐 기술이 어떤 기술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모호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동안의 논의나 실험의 결과로 얻어진 대체적인 방향은 기존의 현금과 같은 이용 체계를 그대로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중국의 CBDC 연구에서 구체화된 바 있다. 중국의 CBDC는 근본적으로 본원통화를 그대로 디지털화할 것임을 내세우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가상화폐 방식이 디지털화폐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가상화폐 방식은 이용자 간의 자금 전달이라는 부분은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으나 시스템 장애 등이 발생할 경우 사용이 불가능하고 해킹 등에 취약하다는 단점들이 부각된다. 또한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금융상품의 확대 등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이다. 처리 속도 또한 기존의 금융 환경을 담아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디지털화폐 기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디지털화폐가 기존의 현금처럼 이용되려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카드 등과 같은 곳에 디지털화폐용 지갑을 담는 기술이 가장 유망하다. 이러한 기술을 채택하게 될 경우 앞에서 언급된 다수의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기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이러한 기술의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디지털화폐가 발행되었을 경우 기존 금융환경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가장 많은 연구 결과를 내놓은 곳이 영국은행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 또한 디지털화폐의 기술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논의가 다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화폐가 발행될 경우 기존의 화폐 체계와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 기존 화폐 체계와 더 나아지는 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 설정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중국처럼 기존 현금을 디지털화한다는 방식도 많은 이점을 줄 수 있다.

디지털화폐는 분명 기존 화폐 체계가 주지 못한 다른 요소를 담아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 쉽게 받아들여지고 활용될 수 있다. 이미 많은 금융 선진국의 금융 환경은 디지털화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금 사용률이 낮아 굳이 디지털화폐의 필요성도 낮은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화폐가 가져올 유용성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고액권이 장롱 속에 들어가 자본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는 전 세계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된다. 또한 이용자의 금융 사생활을 철저하게 보장하면서 불법 자금의 세탁이나 테러자금의 이동을 막을 수 있는 기능도 또 다른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은 아직 국제적인 흐름에 뒤처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화폐에 사용될 기술과 그 이후에 대한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진행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세계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아직 분명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디지털화폐에 필요한 다양한 디지털기술을 선도하는 삼성전자 등과 같은 기업들을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호현 (테크칼럼니스트·공학박사)

- 한호현은 정보통신분야 공학박사로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등 다수의 기관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총괄본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정보통신부, 현대정보기술 등 공공,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통신 관련 다양한 실무 경험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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