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에서 말하고 있다. 연합

기절한 실물경제

코로나19와 함께 온 글로벌 경제쇼크는 영구적일 수 없지만, 3월말이래 미국의 고용지표는 순식간에 최악을 기록했다. 주간 신규실업급여 신청자가 3월 말~4월 중순 4주간 동안 무려 약 2200만명(미국 전체인구의 약 6.7%)으로 폭증한 것이다. (그림)


이 수치는 2007~2009년 금융공황 당시의 미국전체 누적 실업자 수를 단번에 넘어선 기록이고, 오바마 이래 트럼프에 걸친 12년 호황기 전체에 기록한 누적 총고용창출분(약 2150만명)을 다 까먹은 것과 같다. 또한 동 통계는 미국 노동부가 관련 데이터를 기록에 남기기 시작한 이래 4주 누적 기준으로 최대치 신기록에 해당한다. 지난 1개월여 동안 보여준 글로벌 증시가 자본주의 역사상 최단기간내의 약세장 돌입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그야말로 실물경제가 코로나19 사태에 수요절벽과 공급절벽이 동시에 밀려들어 전후좌우로 목이 졸려 기절한 것이다. 이 경우, 그냥 놔 두면 경제도 생물처럼 사망한다. 최근 앞을 다투어 전세계 정부계정이 전세계적으로 실물에 개입하는 것은 나중에 죽은 경제를 되살리는 비용보다, 지금 개입하여 막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국가들이 경쟁이나 하듯이 공통적으로 세금으로 임금을 보조해 주고, 실업대란을 막고, 전기요금을 지원해주는 등 기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지요소를 공급을 약속하고 있다. 혼수상태(Coma)에 빠진 응급환자에게 산소호흡기와 수액 링거를 처방하는 것과 같다. 정책적 기대는 중환자가 조속히 깨어날 것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죽음의 계곡을 안전하게 건너 경제가 죽지 않고 생존할 것을 바라는 것이 전대미문의 전세계적 재정공조의 목표점이다.

“以Bubble, 制Bubble”로 왼꼬리 잘린 블랙스완(Black Swan)

2008년 금융공황 때와 마찬가지로 전세계 정부계정은 작금의 금융위기를 거대한 슈퍼버블로 제압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규모가 2008년과 비교해도 가히 천문학적이다. 예컨대 1조라는 돈은 1억원을 한푼도 안쓰고 1만번 모으면 만들어진다. 같은 산식에 따라 1000조라는 돈은 1억원을 1000만번 모으면 만들어진다. 천하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막상 미화 2조2000달러 경기부양 패키지(한화 약 2700조원)를 승인할 땐 손끝이 떨렸다. 자그마한 나라를 세우고도 남을 만한 돈이다. 대통령의 서명에 앞서 야당이 장악한 미국 하원마저 구두로 법안통과를 집행할 만큼 촌각을 다퉈 해당 법안을 백악관으로 넘겼지만, 천하의 장사꾼 트럼프에게도 1억을 2700만번 모여야 만들어지는 엄청난 규모(또는 1000만원을 2억 7000만 명에게 무상분배시 들어가는 비용)의 경기부양 패키지에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작아졌다. 서명 직후 볼이 벌겋게 상기된 채, “태어나서 이렇게 큰 돈에 사인해 본 적이 없다”는 트럼프 특유의 긴장을 깨는 농담이 실시간으로 CNN 뉴스를 탄 이유는 당연하다. 역사 이래 가장 큰 인위적 버블의 생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의 영화가 코로나19 한방에 무너질 위기 앞에,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FRB)와 재무성이 연합하여 올인(All-In) 베팅을 선언한 것이다. 뒤늦게 긴급사태를 선언한 일본도 한화 1200조가 넘는 부양책을 연타석으로 쏟아내었다. 동경올림픽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을 때는 10조~30조도 많다던 부양책 논의가, 코로나사태가 심상치 않자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100조를 넘었고 미국의 횡보를 엿보더니 무려 1000조를 넘기며 아베 수상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사석에서 어느 기자가 혹시 총리가 잘못하여 0을 하나 더 붙이신 것 아니냐는 비꼬는 질문도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以Bubble, 制Bubble”로 부를 수 있는 슈퍼통화정책과 슈퍼재정정책의 결합은 마치 리스크 분포도의 왼쪽꼬리가 잘라버린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정책적 개입의 시점이 -2σ 이거나 -3σ 이거나 혹은 그보다 더 좌측에 포진되었든, 그만큼의 도덕적 해이를 필연적으로 각인하게 된다. 다만 이 같은 “以Bubble, 制Bubble”초식은 2008년 금융공황 당시에 시전되어 큰 효과를 보았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금융시장은 일단 수직낙하를 멈추고 눈치보기로 화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쿠라 지는 곳에 창궐하는 좀비노믹스(Zombinomics)

크리스티나 액티피스 교수는 지구상 생물의 반 이상을 기생충이라 정의한 바 있다. 어쩌면 실물경제의 반 이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기생경제는 버블경제 시기에 최고조에 달한다. 예컨대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는 벌써부터 아베의 무한대 재정베팅에 흥분상태에 돌입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의 지방자치 시스템은 2대, 3대 또는 4대까지 특정 가문이 대를 이어 호령하는 곳이 허다하다. 이들이 구축한 지역패권은 사이비 종교집단에 가깝다. 이성이 통하지 않고, 다이묘(大名)의 명령에 행동대장 노릇을 하는 아쿠자보다 더 아쿠자 같은 지역세력들이 예산과 인사 및 인가권을 쥐고 흔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외피를 입었을지언정 사실은 이를 가장한 지역자치 내지 지방자치가 봉건독재의 독화살이 되어 일본경제를 잃어버린 20년으로 저격하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예스런 시골길 옆에 신작로가 놓여지고, 그 위로는 고속국도를 놓고자 능선을 허물어 산중턱에 큼지막한 터널을 뚫고 교각을 덧대는 짓들이 자행되는 근본적 이유이다. 한편, 이번에 아베가 밝힌 무려 GDP의 20%에 해당하는 108조엔(한화 약 1200조원) 규모의 부양책은 2008년 글로벌 금융공황 당시 뿌려댔던 GDP의 3%수준의 부양책 대비 7배에 가까운 천문학적 규모다. 신문과 미디어가 한 목소리로 지금이 1933년 대공황보다 나쁘다든지 2차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바람을 잡을 때, 누군가는 병풍 뒤에서 돈 세는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달리 의심한다면, 어차피 희망없는 일본경제라면, 코로나를 핑계로 화끈하게 곳간을 열어보자는 심산이 숨어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패한다 해도 고작 ‘잃어버린 20년’이 ‘잃어버린 30년’쯤으로 바뀌고 더욱이 정권유지에도 도움이 된다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의심이 맞다면, 좀비(Zombie)가 된 아베가 죽어야 일본이 살 길이다. 하지만 변성기가 덜 지난 듯한 목소리의 아베 총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을 따라 올인(All-In)의 패를 던진 것을 보면 권력의 끝을 보고자 함이다. 횡액이 흉흉하면 부적 써주는 사당들이 호황을 이루듯이, 부패한 정치꾼들에게는 재정폭탄은 이유가 뭐였건 탐스러운 굿판이 아닐 수 없다. 토호들의 이권싸움으로 지저분해 질 운명일지라도 이들이 큰 판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순진한 관료와 거시경제학자들을 농락하는 것은 돈을 푸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아니라 돈을 주무르는 보이는 작은 손들이다. 바야흐로 사꾸라 지는 4월의 일본은 이미 사망선고가 내려진 아베노믹스의 시신에 좀비기생충들이 북적댈 것이다. 야마토다마시이(大和魂)를 흰 눈처럼 날리던 사무라이의 죽음의 미학은 21세기 일본에서는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부양책(stimulus)보다 휴전(truce)

때때로 난제의 답은 쉬운 곳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수요-공급의 동시붕괴는, 역으로 코로나19의 진압시 전대미문의 시장반등을 가져올 개연성도 상당하다. 숨겨진 과제는 인과응보 사이에 장기간의 시간차가 발생하는 제이커브(J-Curve) 효과를 얼마만큼 좁히는 데 있다. 공급체인의 재가동에 물리적 시간이 걸릴 것이고, 수요의 회복 역시 조심스러울 것이며, 유통망 연결도 순차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이즈로 모두가 옷을 돌려 입을 수 있는 듯한 마법의 요술지팡이는 없다. 한 땀 한 땀 맞춰나가고 꿰어야 한다. 이 같은 제한적 상황에서도 글로벌 정책 중에 집행 가능한 옵션이 무엇일지 생각을 바꿔 조금이라도 개선하여야 할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수요-공급을 작위적으로 저해하는 미-중 무역전쟁이 눈에 거슬린다. Big2 양국(특히 미국)이 국제패권의 이기심을 잠시만 내려놓는다면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휴전선언은 지금까지 발표된 어떠한 선진제국의 부양책도 능가하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피 흘리던 일부 분쟁지역조차도 총구를 거두고 인류애 차원의 휴전을 결행하였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 냉전의 시기도 아니질 않는가? 통행세를 얼마로 할 지에 대한 분쟁치고는 무역전쟁으로 꽉막힌 수급의 고속도로는 꼬리가 너무 길다.

근본적으로 금번 코로나19로 인한 실물쇼크는 유동성 위기가 원인이 아니다. 시장의 유동성 총량은 우려했던 것보다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한국 증시에서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이 십시일반 넣었다는 돈도 며칠 만에 무려 20조가 넘었다. 타이밍과 종목이 문제이지 주식시장에도 유동성은 풍부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려운 점은 안전자산선호(Flight to Safety)로 유동성에 빈익빈부익부의 쏠림현상이 필연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Top-Down 방식의 유동성 처방이나 국가간 통화스왑이 과연 진정한 스위트 스폿(sweet spot)인지는 의문이다. 맞긴 하였지만 다 맞지는 않았다는 느낌의 훅(hook)이거나 슬라이스(slice)로 변질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전진은 했지만 목적지와 가까워 진 것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19 역병을 잠재우는 노력을 경주하여야 함이 무엇보다도 최우선순위이나, 수요-공급에 인위적으로 막힌 곳이 있다면 서슴없이 돌파해 주는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중국, 한국, 일본, 유럽 및 멕시코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가 전개하여 왔던 무역전쟁의 휴전은 비단, 잠정적이고 조건부라고 하여도 손끝을 덜덜 떨며 한화 2700조원을 퍼붓는 슈퍼버블보다 미국 스스로에게 더 큰 가성비를 선사할지 모르니 고민해 볼 노릇이며 전 세계 지도자들이 달려들어 청원해 볼 일이다.

● 김문수 Aktis Capital(Hong Kong) 최고투자책임자(CIO)

- 1995년 골드만삭스(홍콩)에 입사한 이래로 20여 년간 홍콩기반 아시아 전문 투자업에 종사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후 산업은행 딜링룸에서 국제금융을 익히고,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유수 투자은행에서 국제채권,외환, 파생상품 및 M&A 등을 경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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