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에게 현금성 생계비를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제 도입 논쟁이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5월 11일부터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지만 출발점은 4차산업혁명의 도래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부의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대안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18세기경 서구에서 여러 정치사상가들에 의해 제시된 기본소득제 개념은 1960~1970년대 미국의 제임스 토빈 등 여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시민보조금(demogrant)’라는 이름의 기본소득을 제안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됐고 여러 국가에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각국 정부들 재난기본소득 지원 정책 도입

우선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각국 정부들은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지원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주요국별 코로나19 대응 및 조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직접 소득지원을 확정하거나 검토 중인 국가는 홍콩o대만o싱가포르o호주o중국 지방정부o일본 등이다.

홍콩은 이달 중 만 7년 이상 거주한 모든 성인 영주권자 700만명에게 1인당 1만 홍콩 달러(약 155만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지급 대상을 저소득층 신규 이민자로 넓혔다.

싱가포르에서는 21살 이상 모든 시민권자에 소득o재산 수준에 따라 최고 300싱가포르달러(약 26만원)를 지급하고 20살 이하 자녀 둔 부모, 저소득 근로자 지원제도 대상, 50세 이상, 주택개발청의 방 1~2개 집에 거주하는 21살 이상 등에게는 100~720싱가포르달러를 추가로 지급한다. 대만은 피해업종 종사자들에게 경기부양 바우처로 404억 대만 달러(약 1조6700억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호주도 직업훈련생 12만명에게 13억호주달러(약 1조1천억원), 연금 및 실업급여 수급자들에게 1인당 750호주달러(약 58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전국민에게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은 5월부터 국민 1인당 10만엔(약 110만9000원)씩 지급하고 있다. 앞서 일본은 금융위기 당시 전 국민(17~64세)에게 1인당 1만2천엔(약 14만원), 16세 이하와 65세 이상에게는 2만엔씩 지급한 바 있다.

유럽, 기본소득제 논의 활발…스위스 국민투표o핀란드 실험 이에 앞서 유럽에서는 기본소득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본소득이 가장 잘 알려진 계기는 2016년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를 통해서다.

당시 스위스는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보장액으로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반대 77%로 부결됐다. 불확실한 재원 마련 방안이 부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핀란드는 실제로 기본소득제 실험을 실시했다. 핀란드는 2017년 25~58세 실업자 2000명을 무작위로 골라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3만원)를 지급하는 실험을 했다. 이는 실업률 감소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실시됐다. 핀란드 정부의 최종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행복감 상승 등 복지에 미치는 영향은 있었지만 고용 촉진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2017년부터 3년간 저소득층 4000명에게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을 주는 실험을 실시했다. 이 경우 일자리를 얻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재원 고갈로 실험은 1년만에 중단됐다.

나미비아o알래스카 모델 성공 사례로 꼽혀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오미타라 지역에서는 민간단체들이 합작해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지역주민 930명에게 매달 100나미비아 달러(1만4000~1만5000원)를 지급한 결과 빈곤율과 실업률이 큰 폭으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임금과 농업생산량, 자영업 소득도 모두 증가했다.

현재까지 큰 성과를 보고 있는 기본소득 제도로는 ‘알래스카 영구기금’이 꼽힌다. 알래스카주 정부는 1982년부터 주민들에게 ‘영구기금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알래스카 주가 보유중인 석유자원이 시민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1976년부터 조성된 이 기금은 천연자원 수입의 일부를 영구기금으로 적립한 후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내 주민들에게 배당해주는 방식이다.

1년 이상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며 1982년 첫 배당금 1000달러(약 120만원)가 지급된 후 2008년에는 3296 달러(약 394만원)가 지급되기도 했다. 2019년 기준 지급액은 1606달러(약 191만원)였다.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빈곤율이 낮으면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 모델은 석유자원이라는 확실한 재원을 토대로 인구 70만 명 규모의 작은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장서윤 기자 ciel@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