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 퇴출 행보에 SUV 위기감↑…친환경차로 변신 중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SUV가 사상 처음으로 연간 60만대를 넘어섰다. 사진은 ‘GV80’ 주행 모습. (사진 현대자동차)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일상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비대면 일상이 확산되자 평범했던 일상 대신 생소했던 일상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이미 일상의 대세가 된 것처럼 ‘차박’(차에서 숙박하는 야영) 문화가 점점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차박은 코로나19 여파로 다중이 모이는 숙박업소를 피해 독립적인 야영을 즐길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차박의 인기몰이는 자동차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 완성차 업체 5개사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60만대를 넘어선 것이다.

SUV, 더 이상 경유차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미 SUV는 지속적인 인기를 끈 차종이다. 중국의 승용차 판매에서 SUV 비중은 40%를 넘은 지 오래됐고 한국에서도 SUV 비중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SUV가 픽업트럭과 함께 판매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차를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여가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SUV를 활용한 차박의 인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SUV 인기에 불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SUV는 총 61만5982대가 팔려 2019년 53만4414대보다 15.3%가 증가했다. 또 전체 국산 승용차 판매(137만4715대) 가운데 SUV가 44.8%를 차지했다. 이는 2019년(41.3%)에 비해 3.5%포인트나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미니밴과 SUV를 모두 포함한 레저용차량(RV) 전체로 보면 총 71만8295대가 팔려 전체 내수차 판매의 52.3%를 차지했다.

최근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비중을 높이고 있는 데다 그 속도도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차 시대가 조기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계도 내연기관차 생산을 빠른 시일 내에 중단하겠다고 잇달아 선언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경유차 중심으로 출시되던 SUV는 자칫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세계 환경단체 중심으로 경유차 퇴출 운동이 벌어졌고 국내에서도 노후 경유차 단속이 강화됐다. 심지어 폐차 시 정부 보조금까지 지원되는 등 다양한 유인책이 나오면서 경유차 퇴출 분위기가 고조됐던 것이다.

실제로 까다로운 인증 절차 등으로 경유차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휘발유를 사용하는 SUV 비율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최근까지도 SUV는 경유차가 대세였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부터 급격하게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출시 기준으로 SUV 경유 차량 비율은 38.7%에 달해 휘발유(47.8%) 차량보다 비중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모델 출시가 늘어나면서 SUV는 더 이상 경유차가 아닌 친환경차로 거듭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들 관심이 증대되고 정부의 그린뉴딜 시책이 실시됨에 따라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 차량 증가가 본격화되고 있다”며 “최근 소비자 수요 추세가 대형화, 친환경화, 개성화로 전환되고 있어 앞으로도 친환경차로 거듭난 SUV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 중심 새로운 SUV 모델 대거 출시

최근 상황만 보면 전기차로 재편되는 자동차 시장에서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SUV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다만 SUV 역시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이 확보돼야만 친환경차가 대세인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새로운 SUV 모델들이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우선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전기차 SUV를 각각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첫 전용 전기차 ‘JW’(프로젝트명)는 아직 출시 일정 등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준중형 SUV 모델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전용 전기차 SUV 모델인 ‘CV’도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다음 달 국내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를 제외하고는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SUV 라인업 확대에 당장 동참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쌍용자동차는 올해 준중형 SUV 코란도를 기반으로 한 첫 전기차 준중형 ‘SUV E100’ 출시를 예고하고 있지만 최근 법정관리 위기감으로 출시 일정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 또한 일부 모델의 부분변경 여지는 있지만 신차 출시 계획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 전기차 SUV 라인업 확대는 전통의 글로벌 완성차 강호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메르세데스-벤츠는 EQ 브랜드 두 번째 순수 전기차 SUV인 ‘더 뉴 EQA’를 올해 상반기 선보인다. 또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브랜드를 처음으로 적용한 SUV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를 역시 올해 상반기 국내에 출시한다. 특히 EQ 전용 충전 솔루션을 함께 출시해 차세대 친환경 모빌리티를 선도한다는 방침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SUV는 1회 충전 시 약 420㎞를 달릴 수 있다.

BMW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순수 전기 모빌리티를 상정한 새로운 플래그십 전기차 SUV ‘iX’를 올해 연말에 출시할 예정이다. iX의 최고출력은 500마력 이상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은 5초 이내일 것으로 예상된다. 100kWh가 넘는 용량을 가진 최신 고전압 배터리가 탑재돼 1회 충전 시 국제표준 배출가스 측정방식(WLTP) 기준 약 600㎞,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약 482㎞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전기차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테슬라의 경우는 의외의 논란에 빠졌다. 최근 ‘모델3’ 등의 품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탓이다. 더군다나 그 동안 테슬라 차량 대부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던 컨슈머리포트가 품질 관리 문제로 테슬라의 최신 SUV 모델인 ‘모델Y’를 추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모델의 증산 시기에는 테슬라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년 간 테슬라 품질 문제를 지적해 온 차량 비평가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고 인정한 셈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