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이사·회사의 이해관계 급변…현재 국내 법원은 재판 전문성 못 따라와

국내 상사법원 설립을 위해 우선적으로 구체적 사전 조사와 제도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기업의 지배구조개선 노력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을 통해 현실화되고 있고 관련 상사소송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국내 법원은 현재 일반 민사소송과 상사소송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민사소송과 상사소송은 법리 구조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재판의 전문성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상사법원 설립을 통해 장기적으로 세계무대에서 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상사소송에 대한 지속적인 서비스 강화와 혁신은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민 보호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기업 둘러싼 국내 법원의 판단, 현실과 괴리 커

상사법원의 필요성과 설립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상사법원 도입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국내 상사법원 도입방안 및 고려사항을 살피고 해결방안을 모색키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5일 ‘상사법원 도입의 필요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다.

류영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세미나 개회사에서 “평소에 주식회사를 둘러싼 다양한 법적 판단에 대해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고 있었다”며 “변화하는 기업과 산업 환경에 따라 사법부의 전문성 및 관점의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으로 상사법원 도입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진행한 고은정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상사소송 제도의 문제점으로 ▲상사 비송사건(민사사건 중 소송절차에 의해 처리하지 않는 사건)의 소송화 경향 ▲상사소송 수행 인력의 부족과 상사소송 전문성 부재의 문제 ▲상사소송 실태조사의 부재를 들었다.

고 교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고도화돼 회사를 중심에 두고 주주와 이사, 회사 사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또 기업의 소송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변론이나 심문이 필요한 대심적 구조를 통한 분쟁 해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상사 비송사건이 오히려 분쟁 해결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는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법원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상사소송 비용이 증가하고 있고 판결의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어 재판의 형평과 정의의 훼손이라는 문제가 함께 야기되고 있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법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고 교수는 상사법원 도입 방안 및 고려 사항으로 ▲사법적 전문성(법관의 능력) 향상 ▲세계무대에서 상사법원의 경쟁력 유지·확보를 위한 전략 ▲현실 세계 수요를 반영한 지속적 혁신 ▲상사법원 설립을 위한 구체적 사전 조사와 제도적 근거 마련 등을 제안했다.

고 교수는 “국내도 상사법원 도입에 있어 전문 인력 증원과 기존 인력의 전문성 강화에 목적을 두고 최대한 유연하게 전문 인력 관리가 추진돼야 할 것”이라며 “국내 상사법원의 설립은 장기적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상사법원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주가 1993년 도입한 이후 21개주로 확대

상사법원 설립을 위해서는 먼저 구체적 사전 조사와 제도적 근거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사전에 수요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절차를 구성하는 것은 상사법원의 적정 사건을 확보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상사법원의 구체적인 제도 설계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 지기 때문이다.

고 교수 자료에 따르면 국가, 국민, 기업의 상호 입장이 다를 수 있고 관련 행정부처 사이에도 의견이 다를 수 있어 사전에 개별적으로 면밀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네덜란드 등의 사례와 같이 상사법원 수립 전에 공청회, 전문가 회의로 충분히 도입의 당위성도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1993년에 뉴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1개 주에서 상사법원을 도입했다. 주마다 고유 법제와 법원조직을 두고 있어 상사법원 명칭, 조직 및 운영은 주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사업에 관련된 사건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미국 뉴욕주 등의 회사법상 특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네덜란드 상사법원은 2019년에 정식으로 출범했다. 네덜란드에서 상사법원 설립을 위한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15년에 상사법원 설립을 위한 시장 조사를 거친 후 2017년이 돼서야 상사법원 설치 법안이 네덜란드 의회 하원에 발의되면서 구체화됐다. 네덜란드 상사법원의 가장 큰 특징은 네덜란드의 법제와 인력을 최대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다.

고 교수는 “국내 상사법원 설립을 위해서는 우선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상사법원 조직과 심판권에 대해 규정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여 진다”면서 “상사법원의 설치와 그 관할구역 등을 정하기 위해 각급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뉴욕의 상사재판부는 미국 내 상사법원의 주요 성공 사례로 평가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주에서 이와 같은 전문법원이나 재판부를 설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뉴욕주는 현재 11개 카운티 지방법원에 상사재판부를 두고 있고 담당 법관 수도 29인으로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기업들의 국내 법원에 대한 불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상사법원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LG와 SK의 배터리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된 것은 한국과 미국법원의 손해액 산정에 대한 개념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국내 법원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이 원인일 수 있다.

류 회장도 “요즘은 기업과 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이른바 대전환의 시대라고도 말한다”며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디지털화의 촉진, 산업의 플랫폼화, 노동 인권에 대한 존중, 전통적 주주 중심주의에서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진화 등은 기업에 대한 판결 주체인 사법부의 전문성 및 관점의 근본적 변화도 비례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