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승'이 피하지 못한 것

[영화되돌리기] 방탄승
'방탄승'이 피하지 못한 것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날 홍콩에는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만큼 불안했던 홍콩의 미래. 홍콩영화계 역시 이 궂은 비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홍콩 반환으로 침체기를 맞고 있던 홍콩영화계는 이미 다른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바로 헐리우드 진출이 이들이 맞이한 새로운 도전이다.

홍콩과 헐리우드 영화의 만남은 불안 속에서 환희와 좌절을 경험한 1997년 이후 더욱 가속화했다. 1998년 성룡은 미국배우 크리스 터커와 함께 ‘러시아워’를 찍어 1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2000년 이안 감독은 ‘와호장룡’을 찍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해 세계의 주류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특히 ‘와호장룡’에 출연한 주윤발은 버디 무비라는 흥행 안전수표에 의지한 성룡과 달리 멜로영화 ‘애나와 킹’의 주연을 꿰찼을 만큼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다. (주윤발의 첫 헐리우드 진출 영화는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이다.) 그런 그가 ‘와호장룡’의 성공 이후, 그것도 오우삼과 함께 ‘방탄승’을 가지고 돌아왔다.

‘오우삼’과 ‘주윤발’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주목을 끄는 영화 ‘방탄승’.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은 오우삼이 아니다. 그는 단지 제작자일 뿐이고 감독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의 폴 헌터라는 미국인이다. 동양무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미국인이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에 대한 실망을 조금 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절대적 힘을 부여하는 두루마기를 수호하는 무명승(주윤발)이 마음씨 좋은 도둑 카(숀 윌리엄 스콧)를 만나 그를 후계자로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진다. 주인공이 벽을 오를 땐 와호장룡의 리무바이처럼 보이고, 무릎을 편 상태로 마이클 잭슨보다 몸을 더 기울일 때는 총알을 피하는 매트릭스의 네오가 떠오른다. 어찌 보면,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블레이드와도 유사하다. 두 영화 모두 절대적 힘을 부여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아이템을 적에게 빼앗기면 상대를 순식간에 무술의 고수로 만들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무술이 표현된 다른 영화를 찾는다면 흑인 배우가 출연한 사무라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짐 자무시 감독, 포레스트 휘태커 주연의 ‘고스트 독(ghost dog)’은 액션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은 훨씬 많을 것이다. 뚱뚱한 배우가 섬세하게 도(刀)를 다루는 장면도 눈 여겨 볼만하다.

좀 더 많은 액션을 원한다면, 스티븐 시걸의 ‘복수무정’은 어떨까? 그는 이 영화에서 취권의 잭키 챈처럼 상당 부분을 무술 수련에 투자함으로서 기존 서양의 액션 영화와는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더욱 강한 액션을 원한다면 이소룡의 작품들을 찾기 바란다. 그는 감독이 누구든지 상관없을 정도로 강하고 빠르다.

즐거운 무술은 역시 성룡. 서양 감독, 동양배우의 영화와 서양감독, 서양배우의 영화의 액션을 비교해서 보려면 매트릭스의 키에누 리브스와 황비홍의 이연걸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다.

헐리우드로 간 홍콩 느와르.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 ‘펄프픽션’에서 자신의 우상인 오우삼의 ‘영웅본색’을 패러디할 만큼 홍콩 느와르는 헐리우드 감독들에게 새로운 장르로 떠올랐다. 하지만 매트릭스로 그 정점에 오른 홍콩 액션, 그것이 어디로 향해야 할 지에 대해 영화 ‘방탄승’은 제대로 된 오답만을 알려줄 뿐이다. 총알을 피하는 방탄(防彈)의 능력을 선보이는 이 영화 방탄승이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은 바로 관객의 실망과 비난이 아니었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2-05 11:16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