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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푸대접 빅리그, 땅을 칠 것"
해외진출 궤도수정, '오기포'로 열도 정벌 뒤 빅리그 재도전



△ 이승엽이 일본진출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원유헌 기자



‘일단 일본부터 정복한다. 그 다음 미국 구단들을 충분히 애태워 올해의 홀대를 멋지게 복수한 후에, 역대 동양인 선수 최고의 몸값을 챙기며 빅리그에 입성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민타자’ 이승엽의 해외 진출이 일본행으로 낙착되면서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그려봄직한 시나리오다.

이승엽의 궁극적인 목표는 꿈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 올해 그 목표를 바로 이룰 수도 있었지만 국민타자의 자존심을 다치면서까지 미국에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도약대로 삼았다. 한국 프로야구를 더블A 정도로 깔보는 메이저리그지만,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선 비교적 자기네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승엽 앞에는 이제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일본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메이저리그로부터 인정을 받든가, 아니면 그마저도 실패해 아시아 홈런왕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든가. 주변의 만류와 부정적 여론을 뒤로 하고 스스로 능력 실험에 뛰어든 국민타자의 앞날을 점쳐본다.


첫 시즌 30홈런 목표



이승엽은 지바 롯데 마린즈 입단이 결정된 후 “일본 무대 첫해에는 2할9푼의 타율과 30홈런 정도를 목표로 하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올 시즌 성적인 타율 3할1리, 56홈런, 144타점과 비교해보면 홈런 목표를 절반 가까이 낮춰 잡은 셈이다. 이승엽이 비록 야구에 관한 한 경지에 오른 타자일지라도 전혀 다른 환경에서 한국보다 한 차원 높은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들과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현실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분석 야구로 불리는 일본 야구는 상대 타자나 투수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 축적과 활용이 특징이다. 그만큼 선수 입장에서는 장점을 살리기가 쉽지 않고, 또한 약점을 간파 당하면 속절없이 당하기 일쑤다.

게다가 일본의 스트라이크 존은 한국과는 반대로 좌우가 좁은 대신 상하가 넓다. 이승엽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는 떨어지는 변화구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높은 타율이나 홈런 퍼레이드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승엽의 성공을 비관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한국 야구를 거쳐 일본에서 뛰고 있는 용병 선수들의 올해 성적이 간접적인 근거다. 두산에서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흑곰’ 타이론 우즈(요코하마 베이스타스)는 올 시즌 40개의 대포를 날리며 당당히 센트럴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지난해 SK에서 뛰며 홈런 3위를 기록했던 페르난데스 역시 지난 5월 지바 롯데 마린스에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홈런 32개, 100타점, 3할3리의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우즈와 페르난데스는 둘 다 훌륭한 타자임에 틀림없지만, 국내에서는 이승엽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은 선수들. 이승엽이 일본에서도 통하리라는 예측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도 이승엽을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첫 시즌부터 당장 50홈런 이상을 쏘아올리기는 어려워도 30~40홈런 정도는 너끈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야구 적응여부가 최대 관건



△ 부인 이송정씨와 함께 환한 표정으로 취재진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는 이승엽 선수. 원유헌 기자

이승엽은 야구 국가대표 드림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이나 아시아선수권 같은 국제대회서 일본 투수들을 이미 상대해 보았다. 일본 무대를 처음 밟게 되는 그에게 이 같은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이승엽은 역대 일본전에서 2할대 중반의 타율을 기록했다. 국민타자의 성적으로는 보잘 것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국제대회의 속성상, 몇 차례 경기의 결과만을 놓고 선수를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목할 것은 이승엽이 저조한 타율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대목에서는 클러치 히터로서 진가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두 차례 맞붙은 대 일본전에서 상대가 자랑스레 내세운 영건 마쓰자카(세이부 라이온스)를 상대로 홈런포와 결승타를 날린 것이 좋은 사례다.

멘탈스포츠인 야구에서 자신감은 기량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요소다. 이승엽이 일본의 대표 투수를 두들겼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눅들지 않고 타석에 들어선다면 일본 정벌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 외적인 변수를 빠뜨릴 수 없다. 일본 무대를 먼저 겪은 선동렬 삼성 코치, 정민태(현대), 이종범(기아) 선수 등은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 선수들과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승엽이 실력으로 일본 선수들을 압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한결 같은 조언이다.


롯데 돌풍 이끌 땐 '이승엽 신드롬'



지바 롯데 마린즈는 아시아 홈런왕을 품에 안았을 뿐 아니라 내년 시즌을 대비해 ‘올인’식의 투자를 하고 있다. 뉴욕 메츠 사령탑 출신의 명장 보비 밸런타인 감독을 데려오면서 3년간 1,100만 달러(약 130억원)의 거금을 들인 데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던 일본인 투수 요시이 마사토 영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밸런타인 감독을 통해 그가 한때 데리고 있던 하와이 출신의 빅리그 강타자 베니 아그바야니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구단주의 결단에 의한 팀 재건 프로젝트의 일환.

지난 74년 저팬시리즈 우승 이후 별다른 황금기를 맛보지 못했던 롯데 마린즈의 이 같은 과감한 행보는 일본 내에서도 단연 관심사다. 당장 내년 시즌 프로야구 판도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는 전망들이다.

물론 롯데 마린즈 부활의 한 축은 이승엽이 맡아야 할 몫이다. 만약 이승엽이 팬들의 기대대로 한국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대활약을 펼친다면 내년 시즌 일본 야구는 아주 볼 만한 드라마가 될 듯하다. 만년 하위팀의 깜짝 반란, 한국 출신 홈런왕의 일본 무대 평정….

이만한 흥행공식이 따로 또 있을까. 올해 열도를 후끈 달궜던 한신 타이거즈의 호시노 돌풍에 못지않은 이승엽 신드롬이 기다려진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3-12-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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