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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고양이의 보은
깜찍하고 찡한 동물의 사랑





일본의 요코하마에 개인이 운영하는 고양이 미술관(猫の美術館)이 있다. 서양식의 2층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 규모는 아담하지만 생각 외로 방대한 고양이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심심치 않다. 전시된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선 후지타 쓰구하루가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걸쳐 제작한 고양이 에칭작품에서부터 근대 판화의 선구자인 고바야시 기오치카의 목판화, 에도시대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풍속화, 미인도를 주로 그린 다케히사 무지의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그림까지 에도시대에서 메이지 작품까지 고양이를 소재로 한 일본의 미술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8년 전부터 미술관을 운영해온 츠보야마 사직씨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모두가 고양이 애호가라고 밝히고 있다.

유난히 고양이를 사랑하는 나라 일본. 고양이 미술관을 비롯해 고양이 박물관과 각종 고양이 관련 이벤트가 많은 애묘(愛猫)민족인 일본, 마네키네코(복을 부르는 고양이)가 거의 모든 음식점의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일본에서만 나올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고양이가 떼를 지어 등장하는 영화 ‘고양이의 보은’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범한 여고생 하루는 어느 날 건널목에서 위험하게 길을 건너려는 고양이를 구해준다. 그 날 이후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는 하루. 마당에 가득 심어져 있는 고양이풀, 온 몸에서 풍겨나는 개박하향, 쥐가 가득 담긴 선물상자까지, 고양이가 좋아하는 기이한 선물들을 받은 하루는 이 모든 사건이 단지 은혜에 보답하려는 고양이들의 순수한 행동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고양이왕국의 왕이 자신을 아들의 며느리로 삼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고양이들의 보은행각이 생각보다 엽기적임을 알고 당황한다. 결국 하루는 마을의 고양이 사무소에 도움을 청하고 그 곳에서 멋진 백작 고양이 바론과 그를 보좌하는 게으르고 뚱뚱한 고양이 무타를 만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 왕국으로 끌려간 이들은 엉뚱하고 엽기적인 고양이 왕을 만나 고양이 왕국에 갇히는 위기에 처한다.

‘고양이의 보은’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귀를 기울이면’을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가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이후 신예감독 모리타 히로유키를 기용해서 선보인 첫 번째 작품이다. 대체적으로 일본에서는 “지브리 답지 않게 경쾌하다”, “스케일이 커진 지브리에 새로운 바람이다” 라는 호평과 함께, 지브리 스튜디오의 전작만큼의 비장미와 묵직한 감동이 없고 극장영화로서의 눈요기도 많지 않아 실망이었다는 혹평이 엇갈렸다. 아마도 고양이 왕국이라는 소재에 걸맞은 조촐하고 아담한 영상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남성 관객들 대부분이 적잖이 실망했으리라고 본다. 원작자가 여자이고 주인공의 가족을 아버지가 부재한 모녀가정으로 설정한 점, 그리고 여고생이 우아한 바론백작 고양이에게 설레어 한다는 순정만화식 표현에서 이 영화가 상당히 여성적인 취향을 갖고 있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그림과 이야기에 기합을 빼고 봄바람처럼 경쾌하고 사춘기 소녀처럼 발랄하게 만든 영화 ‘고양이의 보은’. 고양이를 흉물로 보는 우리네 정서에는 조금 낯선 이야기지만 “고양이 눈과 같이 변한다”라는 일본속담처럼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지닌 고양이들이 흡사 인간들 앞에서 장기자랑이라도 하듯이 귀염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동물로 여겨졌던 고양이가 시나브로 사랑스러워보이지는 않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02-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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