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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굿바이 레닌
통일독일이 남긴 것





기차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 설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계속 환전을 해야 하고, 때로는 생각보다 높은 가격의 환전수수료를 물어야만 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2002년 1월 이후부터는 이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15개 EU 가입국 가운데 12개국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유로화 덕택에 환전의 번거로움도, 환전수수료의 부담도 벗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유로화를 포함해 EU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본부는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해 있다. 유럽을 두 차례 전쟁의 광풍 속으로 몰아간 나라이자, 전쟁 재발을 염려한 주변국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나라 독일. 이 독일이 유럽 경제 통합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분단국가에서 유럽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독일은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지닌 우리나라에게 여러모로 좋은 교과서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독일의 통일 이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볼프강 베커 감독의 <굿바이 레닌>은 아직까지 남북한 통일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영화는 1978년 지그문트 얀이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에 탑승해 달 탐사에 나서는 TV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 후 독일이 통일되기 1년 전인 1989년.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가운데 주인공 알렉스는 서독으로 망명한 아버지를 원망하는 어머니와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미 동독에는 체제 몰락의 징후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고, 몰락을 가속화하려는 시위대가 거리 곳곳에 등장하자 소심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알렉스 조차 시위 무리에 휩쓸리게 된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철저히 체제 수호자로 살아온 어머니는 집회에 참여한 아들의 모습에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지고 8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문제는 어머니가 눈을 감고 있던 물리적인 8개월의 시간이 새로운 세계 역사가 쓰여진 혁명과 변혁의 시간이었다는 데 있다. 알렉스의 어머니가 다시금 의식을 되찾은 그 곳은 눈을 감기 직전의 동독이 아니라 우주비행사 지그문트 얀이 택시 운전사로 전락해있고, 동독산 오이피클과 구형 트라반 승용차는 시장에서 퇴출된, 낯설고도 충격적인 통일독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열혈공산당원인 어머니에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자본주의 체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차마 전할 수 없는 알렉스는 어머니를 위해 동독의 건재함을 가장한 사기극을 벌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독일이 통일 후 겪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들춰내고 있다. 동독의 경제력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실시한 화폐통합으로 대다수 실업자가 양산되고 동독인들 사이에서 심각한 심리적 불안감과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 동독 내 산업기반이 붕괴해 동독의 주거지역이 공동화되는 등의 통일 후유증은 주인공의 삶 속에서 종기 속 고름처럼 배어 나오고 있다. 감독은 알렉스의 사기극에서 가짜 통독 대통령으로 분한 지그문트 얀의 입을 빌어 공산주의 체제이건 자본주의 체제이건 이념의 선이 얼마나 하찮은지, 이념의 골을 넘어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더욱 더 절실하다고 얘기한다.

<굿바이 레닌>이 개봉되면서 잃어버린 동독에 대한 향수와 연민에 휩싸였던 독일. 하지만 한 때는 비록 통일 후유증으로 고생했지만 동구권까지 포섭한 유럽통합을 목도에 둔 지금 유럽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으로 그 위상이 커가는 독일은 비슷한 분단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룰 수 없는 꿈처럼 아득하게만 보인다.

입력시간 : 2004-02-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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