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결정력·리더십·전술부재 벗고 부활의 날갯짓, 독일까진 암초 산적

삼각파도 탈출 코엘류호, 순항?
골 결정력·리더십·전술부재 벗고 부활의 날갯짓, 독일까진 암초 산적

깊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던 축구 국가대표팀 ‘코엘류호’가 부활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잇달아 열린 오만, 레바논 등 중동 국가 대표팀과의 A매치에서 상쾌한 승리를 낚으면서 지리멸렬했던 2003년의 모습을 깨끗이 탈피했다.

전임 히딩크 감독과 2002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이룬 4강 위업을 계승한다는 야무진 각오로 한국 땅을 밟았지만 부임 첫 해 받아든 처참한 성적표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하지만 이제 그의 표정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다. 기나긴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자신의 구상대로 팀이 짜여지기 시작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 달라진 코엘류 리더십

변화는 역시 보스인 코엘류 자신에게서 비롯됐다. 지난해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신진 선수 발굴과 기용, 포백 시스템 시도 등 나름대로 실험을 거듭했던 코엘류 감독은 이제서야 자신의 색깔을 찾아낸 듯하다.

전술적인 핵심은 평소 지론인 빠른 축구와 압박 축구, 그리고 3-4-3 스리백 시스템으로의 복귀 등으로 요약된다. 또 이를 효과적으로 팀에 흡수시키기 위해 이전의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지도 방식도 과감히 버리기로 작정했다.

선수들의 긴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고도의 심리 전술은 하나의 예다. 코엘류 감독은 2월18일 레바논 전에 앞서 소집한 23명의 대표 선수 중 18명의 엔트리를 경기 시작 불과 7시간 전에 발표했다. “마지막에 제외될 5명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는 이유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도록 유도하려는 묘수라는 게 중론이다. 또 이런 방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그보다 앞서 오만 전을 앞둔 12일 저녁 식사 때는 식당 테이블을 2열로 나란히 맞추라는 ‘뜻밖의 엄명’을 내려 선수들과 코치들이 아연 긴장하기도 했다. 자율을 강조하는 과거의 덕장 스타일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향후 코엘류식 관리 축구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코엘류 감독의 변신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오랜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던 유럽파 선수들은 하나같이 코엘류 감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돌아갔다. 특히 이천수(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는 “코엘류 감독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한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고 있는 데다 개개인의 스타일을 인정하기 때문에 선수들도 잘 따르는 편”이라며 강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지난해 아시안컵 예선에서 오만 베트남 등 약체팀에 충격의 패배를 당하면서 경질 위기까지 내몰렸던 코엘류 감독이 유럽에서도 손꼽혔던 명장의 자존심을 서서히 되찾고 있다.

▲ 4강 전사들의 찰떡 호흡

2006 독일 월드컵 예선전으로 치러전 레바논 전에서는 2002 월드컵 4강 영웅들이 대거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베테랑 태극전사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은 지난해 여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의 연이은 친선경기 이후 무려 8개월 만의 일.

역시 4강 멤버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코엘류호가 겪은 난파 위기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는 그들은 한국 축구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유상철(일 요코하마 마리노스)을 대신해 중앙수비수로 나선 신예 조병국(수원 삼성) 외에 전원 4강 전사들로 구성된 스타팅 멤버들은 짧은 소집 기간이 무색할 만큼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신진 선수들의 발굴을 통한 세대교체를 주장하던 코엘류 감독으로서도 당분간은 ‘히딩크의 제자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 한 판이었다.

‘달리기’만 잘 한다는 비아냥에 시달리던 오른쪽 공격수 차두리(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성장도 돋보였던 대목. 차두리는 한층 넓어진 시야와 정교해진 크로스 능력을 선보이며 왼쪽의 설기현(네덜란드 안더레흐트)과 함께 대형 윙 포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았다.

▲ 주전경쟁 불붙었다

비록 월드컵 4강 멤버들이 레바논전을 통해 여전히 한국 축구의 중추 세력임을 과시하긴 했지만 이들도 독일 월드컵 때 주전으로 뛸지는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 코엘류 감독이 올 초 ““포지션별로 2명 이상의 주전을 확보하겠다”며 꺼내든 대표팀 내 완전경쟁 카드 때문이다.

전임 히딩크 감독이 그랬듯이, 말뚝 주전을 인정하지 않는 경쟁체제는 목표 의식과 경쟁심을 통한 경기력 향상에 주안점을 둔 노림수다. 이는 물론 믿는 구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코엘류 감독이 직접 발품을 팔며 찾아낸 신예 선수들과 올림픽 대표팀 등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신세대 스타들이 바로 히든카드다.

당장 유상철의 공백을 잘 메운 조병국이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받고 있는 최성국(울산 현대), 정조국(안양 LG) 등은 선배들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재목들이다. 이들이 치고 들어오면 기존 4강 전사들 내에서도 연쇄적인 포지션 이동과 주전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그야말로 까딱 방심하다가는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각 포지션에서 선수들 간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부추기는 ‘플래툰 시스템’으로 군기잡기에 나선 코엘류 감독. 선수들은 죽기살기로 뛰어야겠지만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 독일 월드컵 이제 첫발이다

지난해 치욕을 안겨 줬던 오만에 통쾌한 복수를 하고 월드컵 예선 레바논전도 무난히 승리로 이끌었지만 코엘류호는 겨우 부활의 첫 걸음을 뗐을 뿐이다. 물론 당분간은 순항이 예상된다. 올해 맞붙을 월드컵 지역 예선 상대들도 몰디브, 베트남 등 FIFA 랭킹에서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약체들이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강팀들과 자주 맞붙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들과 대적해 봐야 코엘류호의 진정한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협회는 이런 여론에 부응해 아시안컵 본선이 열리는 7월 이전에 유럽이나 남미팀과의 A매치를 몇차례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코엘류호의 업그레이드는 이제 시작이다.

김윤현 기자


입력시간 : 2004-02-25 17:12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