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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블랙호크 다운
특수배대원의 광기와 인간애





요즘 우리극장가에서 단연 화제를 꼽는다면 씩씩하고 건장한 한 사내가 보여준 장중한 죽음이다. 흰자위를 드러내며 살기 가득한 동물처럼 싸워대던 그 사내는 사랑하는 혈육을 위해 기꺼이 총받이를 자처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 그가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냉혹한 살인병기가 되었어도, 도무지 이성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전쟁광이 되었어도 관객은 그가 거칠게 내뿜는 사내다움에 도취됐다. 아마도 빨갱이든 국군이든 동생만 살릴 수 있다면 어디에도 총부리를 겨눌 수 있다는 과잉의 형제애를 보여준 그의 모습이 사익(私益)을 위해 요리조리 잰걸음을 치는 요즘 세태의 속 좁은 사내들과 수이 비교됐을 것이다.

사실 사내들이 표현하는 장중미와 비장미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물론 영화 뿐만 아니라 예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기예가 출중한 사내가 역사적 사명, 혹은 마을의 소명을 띠고 완전한 악의 대상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는 줄곧 있어왔다. 대개 이런 사내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육체적인 힘과 희생 정신이다. 간혹 높은 동료애도 첨가된다. 사내들의 이 세가지 특징이 상업적으로 잘 배합되어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블랙 호크 다운! 블랙 호크 다운!(블랙 호크가 추락한다)” 1993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상공. 미 공군 조종사가 교신기를 붙잡고 다급하게 외치고 있다. 미국의 다목적 헬리콥터 블랙호크 헬기가 모가디슈 하늘에서 추락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장중한 전쟁이야기를 풀어내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은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겪은 전쟁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미국이 소말리아의 내란을 진압하고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소말리아의 반군 사령관 아이디드를 제거하려고 벌인 작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블랙호크 헬기가 민병대의 공격으로 추락하면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단 몇 시간 만에 작전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며 야간 투시경도, 마실 물도 제대로 챙겨가지 않은 미군 특수부대원들은 예기치 못한 민병대원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악전고투를 벌이게 된다.



미로같은 모가디슈에서 끈질기게 달려드는 민병대원을 맞아 18시간 사투를 벌이던 미 특수부대원들은 동료 대원들의 절단난 사지와 질펀한 피를 목도해야만 했고 사방의 총격 소리에 묻혀 들려오는 동료의 절규에 진저리쳐야만 했다. 죽어가는 동료의 눈빛과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밟혔지만 전장에서는 값싼 감상을 할 여유도 없다. 남아있는 누군가가 죽어나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작전 실패를 인정한 미군 사령부에서는 모든 부대원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모가디슈에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부대원들을 구출하는 작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랙호크 다운>은 미국이 만든 전쟁 영화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문제에서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소말리아에서 싸우는 미군은 자연스럽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해방군의 이미지를 스스로 부여하며 싸웠던 미군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전쟁을 벌였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지 않고 무작정 포탄 세례를 퍼붓는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길 관객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전장의 기록은 이념과 이데올로기는 사라지고 총과 몸뚱아리로만 남겨진 사내들이 벌이는 피의 난장이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전라의 본능만 남은 사내들이 지옥체험을 하는 현장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블랙호크 다운>을 감상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입력시간 : 2004-02-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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