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탐닉, 중독

[영화되돌리기] 레퀴엠
욕망, 탐닉, 중독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한 아도니스는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젊은 남성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아도니스 콤플렉스는 건장한 체격과 보기 좋은 근육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남성들의 욕망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균형잡힌 근육을 만드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심취해 몸만들기에 유달리 집착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몸짱’이라 불리는, 비정상적일만큼 잘 가꿔진 몸을 소유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중독적으로 운동에 몰두하는 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회적 유행이 되었다.

흔히 무언가에 중독되었다고 하면 대개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중독은 대상을 남용, 오용하는 일에서부터 과잉탐닉이나 습관성 의존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신체적, 심리적 이상 증세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과도하게 이상적인 몸에 탐닉해 강박적으로 운동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요즘의 몸짱 열풍은 어느 정도 운동중독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뭔가를 중독시키는 데 가장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텔레비전이다.

‘No Sugar, No Sugar, No Red Meat!’ TV 다이어트 태피 티본스 쇼의 진행자의 선창에 따라 방청객들이 집단최면에라도 걸린듯이 반복적으로 외쳐대는 다이어트 구호가 텔레비전의 사각 화면에 가득 울려 퍼진다. 이를 황홀경에 빠져 바라보는 주인공 사라여사. 영화 <레퀴엠(Requiem for a dream)>의 그녀는 바로 TV 다이어트 프로그램 중독자이다. 인간의 욕망을 부풀리고 왜곡하는 텔레비전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주술을 걸어대고 욕망의 좌절에 따른 결핍이 극대화되면서 그 간극을 강박적으로 채워나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몸짱에 열광하는 우리네와 더불어 영화 속의 사라여사를 미치게 만든 중독증세이다.

사라여사가 텔레비전 중독자라면 그의 아들은 마약중독자이다. ‘꿈은 죽었다!’, 꿈을 위한 진혼곡(Requiem for a dream)을 부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꿈은 마약과 다이어트로 인해 산산조각 나버린다. 예기치 않게 TV 출연 섭외를 받고 격렬한 다이어트에 돌입한 사라여사는 젊고 행복했던 시절에 입었던 빨간 드레스를 입고 TV에 나가 행복한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지만 모르핀 성분이 함유된 다이어트 약에 중독되어 간다. 아들 해리는 여자친구와 가정을 꾸려 평범하고 단촐한 삶을 살고 싶었으나 마약딜러로 불안한 삶을 지탱해나가다 어느덧 빠져나오기 힘든 마약중독자가 된다. 결국 그들의 욕망은 중독을 향해 질주했고 결핍의 골은 끝내 채워질 수 없었다. TV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사라여사의 궁색하고 뚱뚱한 몸뚱아리를 비웃었고 코카인은 무덤덤하고 단조로운 해리의 일상을 뒤흔들었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중독과 파멸과정을 교차편집, 화면분할, 스노리캠(배우의 몸에 카메라를 장착해서 촬영)과 같은 다양한 비쥬얼의 효과를 사용해서 보여주고 있다. 주사기로 투약된 백색의 코카인 가루가 혈액을 타고 흐르면서 동공이 확대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어느덧 소리가 보이고 빛이 들리는 환각과 환청의 엑스터시에 빠져드는 해리. 해리가 마약을 투약하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표현된다. 관객은 클로즈업 된 그들의 혈관과 동공 속에서 중독자들이 전율하는 말초적 흥분과 불안한 떨림을 감지할 수 있다. 강박적으로 편집된 이 장면들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마치 관객들이 주인공처럼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영화는 독특하고 실험적인 영상으로 관객을 중독시키고 만다.

주인공을 포함해 관객까지 중독시켜버리는 영화, <레퀴엠>. 한계를 지각하지 못하고 욕망에 탐닉하는 순간 우리 귓전에는 이미 삶의 진혼곡(Requiem)이 흘러나오고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입력시간 : 2004-03-1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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