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의 삶에 비친 인생의 희비극

[영화되돌리기] 식신
요리사의 삶에 비친 인생의 희비극

문학이든 회화든 예술작품은 모두 작가의 정신적 등가물이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에드바르트 뭉크는 자신의 불안하고 외로운 심리 상태를 피처럼 붉은 하늘 아래서 절규하는 사람으로 표현했고, 정신적 발작에 시달렸던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지독한 적막함을 파이프가 놓인 소박한 의자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자의식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자화상이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 에곤 실레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넘쳐난 탓인지 유독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영화 감독들 가운데에서도 자화상을 영상 속에 담아내는 사람들이 많다. 우울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팀버튼은 사회의 아웃사이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음울하면서도 기괴한 ‘가위손’이나 ‘배트맨’은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프랑소와 트뤼포와 찰리 채플린은 각각 ‘400번의 구타’와 ‘라임 라이트’라는, 자전적인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영화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 듯한 사람이 있다. 바로 홍콩의 찰리 채플린, 주성치.

광대의 눈물, 패배자의 비애,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영웅의 절망, 주류를 등진 재인(材人)의 말 못할 사정. 주성치 영화는 이렇듯 삶의 희비를 동시에 경험하는 극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개 주성치 영화하면 우윳빛 토사물과 출렁이는 콧물, 얼굴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나 인간이길 포기한 추남 추남이 등장하는 엽기적이고 황당하고 때론 혐오적이기까지한 코미디를 떠올리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의 영화에는 눈물과 웃음이 함께 간다는 그의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공짜 도시락에 목숨을 걸거나 영화에 한 씬이라도 더 나오기 위해 과장된 몸짓을 하는 무명 배우의 설움이 그려진 영화 ‘희극지왕’이나 발가락이 튀어 나올 정도로 헐어 빠진 운동화를 신은 축구선수와 그런 그의 운동화를 토끼 그림으로 기워주는 추녀가 서로의 삶을 보듬어 주는 영화 ‘소림축구’에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자아내는 실소와 박장대소에 숨겨진 주성치의 서글픈 자화상이 담겨 있다. 부모의 이혼, 집안의 유일한 남자라는 그의 가정사적 이력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웃음을 흘려야만 했던 자신의 과거가 페이소스 짙은 그만의 코미디 영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의 수많은 영화 가운데 주성치가 자신의 최고 영화라고 꼽는 것은 바로 ‘식신’이다.

요리의 달인, 왕을 뜻하는 식신은 인생의 부침을 경험한 한 요리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삶의 골과 봉우리를 모두 경험했다고 하는 주성치는 식신의 주인공이 주저없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식신의 주인공 성자는 출세의 탄탄대로를 가는 최고 요리사지만 안하무인한 성미탓에 동료에게 배신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걸인으로 전락한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성자는 사창가를 전전하다 거리에서 국수를 파는 처자를 만나고 그녀의 도움으로 새로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 젊은 처자는 소림축구의 조미처럼 주성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추녀로 분한 미녀. 주성치가 못생긴 여인의 캐릭터를 꾸준히 등장시키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삶이란 것이 사실은 추한 욕망 덩어리일 뿐이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역겹고 추한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웃음 속에 담긴 눈물을 읽어 달라고 관객에게 주문을 하듯이 말이다.

예술의 본질이 페이소스라면 인생의 진실은 행불행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희비극이다. 때론 대책없이 우스꽝스럽게만 보이는 주성치의 영화가 유독 오랜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한없이 고단한 일상에서 되려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마는 안쓰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그의 영화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28 21:17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