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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쑤는 성남, 날개 단 포항
'영원한 우승후보'와 '변방'의 이유있는 몰락과 비상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다는 스포츠 세계의 격언은 수도 없이 봐온 진리다. 그럼에도 이 격언을 곱씹게 만드는 장면을 접할 때면 저절로 눈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전기리그 종반을 향하며 열기를 더해가는 프로축구 ‘삼성 하우젠 K-리그 2004’의 5월 28일 현재 팀 순위를 보자. 지난 시즌까지 국내 프로축구를 3연패한 거함 성남 일화가 어떤 까닭인지 ‘윗줄’에서 보이지를 않는다. 어디에 있을까. 시선이 닿은 곳은 뜻밖에도 꼴찌를 겨우 면한 11위. 만년 하위팀 부천 SK, 신생팀 인천 유나이티드와는 고작 1게임 차다.

반면 1위를 달리는 팀은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다. 사실 전통의 명가라고는 하지만 포항은 지난 수년 동안 상위권에서 좀체 볼 수 없었던 고만고만한 중위권 팀에 불과했다. 그러던 포항이 올 시즌에는 개막 이후 돌풍을 일으키면서 부동의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강자에서 약자로 추락한 성남과 약자에서 강자로 부상한 포항. 축구 팬들에게는 한마디로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할 만큼 ‘상전벽해’와도 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공은 둥글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두 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공수 밸런스 무너지며 나락으로



올 시즌 개막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K-리그 4연패에 도전하는 성남을 ‘당연히’ 우승 후보로 꼽는 분위기였다.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로 불릴 만큼 화려한 선수 구성과 3시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두 차례나 달성한 전통 앞에 이런 전망은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었다.

성남은 지난 2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A3닛산 챔피언스컵 대회에서도 지난해 J-리그 챔피언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중국 갑A리그 챔피언 상하이 선화 등을 제치고 우승컵을 차지, 올 시즌에 대한 전망을 더욱 밝혔다.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최고의 클럽 팀인데, 국내 리그쯤이야 하는 생각을 가질 만도 했던 것.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공격력은 크게 떨어져 골 구경을 하기 힘들었고, 수비 라인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이처럼 공수 밸런스가 크게 흔들리면서 성남은 급기야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지난 시즌 개막 7연승 후 파죽지세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거함의 위용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성남의 부진 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체로 몇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FA로 풀린 선수들이 대거 다른 팀으로 옮겨 가면서 기존의 조직력이 크게 헝클어진 점이 중대한 이유라는 것이다.

성남은 올 시즌 전에 최고의 용병 킬러 중 한 명인 샤샤와 ‘총알 탄 골잡이’ 김대의를 비롯해 핵심 수비수 김현수, 미드필더 윤정환 등 황금 멤버들을 상당수 내보냈다. 물론 이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용병 공격수 아데마, 하리 등을 수혈했지만, 이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연쇄적인 부작용이 불가피했다.

용병이 부진하자 곧바로 주 공격수인 김도훈에게 불똥이 날아든 것. 지난해 득점왕과 MVP에 오르며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던 노장 골잡이 김도훈은 상대 수비수의 마크가 자신에게 집중되면서 특유의 동물적인 골 감각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미드필드에서 공격 라인을 조율하면서 간간이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주던 신태용의 노쇠화 기미도 성남의 예봉을 눈에 띄게 무뎌지게 한 또 다른 이유다.

수비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기형과 이영진은 부상에 시달리는 데다 중앙 수비수인 용병 싸빅은 두 차례나 자책골을 기록할 정도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덕장으로 소문난 차경복 감독마저 “한 골은 먹고 경기를 시작한다”며 답답함을 노골적으로 나타낼까.

K-리그 3연패라는 위업 후에 찾아온 정신적인 안이함도 간단치 않은 문제로 지적된다. 차 감독 역시 이 대목을 부진의 원인으로 중시하고 있다. 때문에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충격 요법’도 시도하고 있다. 교체 멤버들을 투입해 어렵사리 2승째를 수확한 5월 23일 대구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라운드에 설 수 없募?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차 감독의 그 같은 의지가 읽힌다.

하지만 성남의 재도약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5월 26일 울산전에서 귀화 선수인 이성남이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는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성남은 조직력을 추슬러 후기리그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탄탄한 조직력과 돋보이는 집중력



지난 95년 후반기 우승 이후 9년 동안 ‘변방’을 맴돌았?포항 스틸러스의 약진은 성남의 몰락과 대비되는 올 시즌 프로축구의 최대 볼거리다. 당초 대부분 전문가들로부터 중위권 전력으로 분류됐던 포항의 1위 질주는 얼마 전까지 ‘이변’으로 치부되기도 했으나 이젠 ‘대세’로 자리잡을 기세다.

포항이 강호로 변모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먼저 최순호 감독의 지도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시즌 내내 열혈 서포터스들로부터 성적 부진에 대한 퇴진 압력을 받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던 최 감독은, 오히려 그 수난을 통해 한층 더 강한 리더십을 몸에 익혔다.

모래알 같던 팀의 조직력도 지난 동계 훈련을 거치며 한결 단단해졌다. 선수들이 감독의 용병술과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게 된 것. 최 감독은 “어떤 포메이션을 구사해도 선수들이 잘 소화해내는 것이 좋은 성적을 내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감독의 전술 운용을 뒷받침하는 공격과 수비 라인의 능력도 타 구단에 비해 탄탄한 면모를 갖췄다. 장신 스트라이커 우성용과 브라질 용병 까를로스, 따바레즈로 짜여진 공격진은 5월 28일 현재 팀이 기록한 11골 중 7골을 터뜨리는 등 제 몫을 충분히 해주고 있고, 브라질 1부리그 명문팀 출신 산토스는 팀의 수비 라인을 이끌며 철벽 방어선을 구축했다. 특히 상당수 전문가들이 포항 돌풍의 핵심으로 지목하기도 한 산토스는 포항을 수비가 강한 팀으로 거듭나게 한 주역으로 평가된다.

‘되는 집안’의 남다른 면모는 또 있다. 지금까지 올린 6승 가운데 후반 터진 결승골로 승리를 챙긴 경우가 무려 5승. 경기 막판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끈끈한 플레이를 펼친다는 단적인 증거다. 여기에는 교체 선수가 ‘한 방’ 해준 경우도 적지 않아 최순호 감독의 번득이는 용병술이 읽혀진다.

포항의 명가 부활을 앞에서 진두지휘해 온 최 감독은 이제 전기리그 우승에 대한 욕심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물론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자신감이 붙어서다. 과연 그는 우승 사령탑의 자리에 올라 지난해 퇴진 압박을 받았던 설움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을까. 포항 서포터스들뿐 아니라 많은 축구팬들의 시선이 최 감독과 포항의 행보에 쏠리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06-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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