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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의 골프이야기] 먼저 당신의 컵을 비우시오


어떤 젊은이가 선(禪)에 관한 거의 책을 독파하였다. 그리고 그는 대선사(大禪師)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가르침을 구하기 위하여 대선사를 찾아갔다. 자리를 함께 하였을 때 젊은이는 대선사에게 책에서 읽었던 선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모조리 읊었다. 한 동안 젊은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선사는 차를 한 잔 하자고 말해 놓고는 격식을 갖추어 차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채 젊은이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찻잔에 가득 차서 넘쳐흐르는데도 대선사는 계속하여 차를 따랐다. 넘친 차가 찻상에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대선사는 차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찻물이 방바닥에까지 넘쳐흘렀다. 젊은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선생님, 그만, 그만! 잔이 가득 차서 넘치고 있어요!” 그러자 대선사는 차 따르기를 멈추고 비로소 한 마디 하였다. “ 이 찻잔과 같이 당신의 마음은 당신 자신의 생각과 선입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당신이 먼저 당신의 컵을 비우지 않는 한 당신이 무엇을 더 배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난 토요일에는 어떤 신문사의 논설위원님들을 따라서 라운딩을 하였습니다. 그 분들 가운데 H위원님은 평상시 80대 초반을 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내기 골프에 강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 홀에서 저의 티샷은 페어에이 우측 벙커에 들어 갔습니다. 반면에 H위원이 티샷 한 볼은 멋지게 날아서 페어웨이 한 중간에 멈추어 섰습니다. 이어서 H위원이 세컨 샷 한 볼은 홀 컵 바로 근처에 떨어졌으나 굴러서 퍼팅 그린을 약간 넘어 가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렇지만 퍼터로 스트로크를 하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을 지점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벙커탈출을 시도한 볼은 깔끔하게 온그린 되어 홀 컵으로부터 5피트 정도 되는 지점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홀에서 버디를 하였으나 H위원님께서는 스리 퍼팅을 하여 보기를 범하였습니다. 두 번째 홀에서도 H위원님께서는 스리 퍼팅을 하여 보기를 범하였습니다. 세 번째 홀에서는 벙커에서 서드 샷을 한 다음 1미터도 되지 않는 지점에서 파 세이브 퍼팅을 하였으나 들어가지 않아 보기를 범하였습니다. 나인 홀을 마치고 나자 저의 스코어는, 버디 하나에 보기 두 개를 하여 37타이었고, H위원의 스코어는 47이었습니다. 후반 나인에 가서 우리 일행들은 가벼운 내기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내기를 하지 않으니 집중이 되지 않아 골프가 재미없다고 다른 일행들이 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반 나인 홀을 마치자 저의 스코어는 버디 하나에 노 보기로 35타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하나같이 평소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핸디캡보다 훨씬 나쁜 스코어를 기록하였습니다. 목욕탕을 거쳐 식당에 모였을 때 일행들은 저에게, “ 왜 라운드 하는 동안 한 마디라도 해 주지 않았느냐?”며 불평 섞인 칭찬을 늘어 놓았습니다. 앞서 든 이야기는 그날 일행들이 섭섭함을 털어놓는 것을 보고, 제가 떠올렸던 것입니다.

“ 골프란 가르쳐 지는 것이 아니라 배울 수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골프에 있어서 지도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지도가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열정과 노력에 달려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골프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는 네 가지의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위에 든 대선사의 이야기에 비유하자면, 엎어진 컵과 같은 골퍼로 도무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 먹혀들지 않는 골퍼가 있고, 바로 세워져 있으나 밑바닥에 구멍이 난 컵과 같이 가르쳐 주어도 들은 것을 곧 바로 잊어 먹거나 좀처럼 기억하여 익히려 들지 않는 골퍼가 있습니다. 세워져 있고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지지 않았지만 안에 더러운 것이 묻어져 있는 컵과 같이 남의 말을 듣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기 주장이 강하여 남의 말을 따르지 않는 골퍼가 있고, 끝으로 똑 바로 세워져 있고 밑바닥에 구멍도 없으며 안도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컵과 같이,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에 성실히 따르는 골퍼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골프장에서 라운드 하는 동안 만나는 많은 골퍼들이 네 번째의 컵과 같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제가 필드에서 만난 대부분의 골퍼들이 비록 말로는 저더러 골프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제가 골프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든지, 저의 말이 그들의 잔에 머물러 있지 못 한 채 넘쳐흘러 버리고 마는 것을 지켜보아 왔던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골프에 관한 자기 생각과 선입견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무슨 말을 한다 하여도 그들은 좀처럼 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자기들의 방식대로 골프를 하는 것입니다.

소동기 변호사ㆍ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4-06-3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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