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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 여행] 장계현(下)
솔로곡 <나의 20년> 공전의 히트
록, 컨트리, 트로트 등 끝없는 실험


보컬 장계현의 콧소리가 매력적인 템페스트의 첫 히트곡 ‘잊게 해주오’는 군사정권의 압제에 무력감이 만연되었던 대학생들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밤새 노래하고 연주하는 자체가 즐거웠던 시절이었죠. 작곡가 김영광씨가 우연히 우리 노래를 듣고 음반 내자고 해 발표했는데 히트가 되었습니다.”

장계현은 75년 잠시 템페스트를 떠나 록그룹 ‘하얀 날개’로 둥지를 옮겨 센트럴호텔에서 활동했다. 당시‘하얀 날개’의 라인업은 보컬 장계현, 베이스에 친동생 장계돈, 키보드 박수천, 기타에 라이더스와 히식스 등에서 활동했던 이진동의 5인조였다. 장계현이 빠진 상태에서 지구에서 나온 템페스트의 음반은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지다연과 함께 취입한 ‘내일이면 간다네’라는 곡 때문. “다연이가 그 곡을 밀고 있어 우리가 양보하고 그 판을 죽여버렸죠. 우리는 나름대로 히트곡이 많았을 때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타워호텔에서 활동하던 친정팀 템페스트의 운영이 힘들어지자 두 팀이 다시 합쳤다.

다시 오아시스와 손잡고 76년 '장계현과 돌풍' 음반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듯 노래하는 가수만이 집중 조명을 받는 현실 때문에 늘 리드보컬 장계현의 이름을 따 음반을 발표하는 가운데 갈등이 공존했다. 템페스트의 리더는 유상봉. 결국 음반 발표 이후 장계현과 유상봉은 또 다시 양분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는 대마초 파동으로 중요 인기 록그룹 멤버들이 무대에서 상당수 사라졌던 시기다. 장계현은 대마초는커녕 술 담배도 하지 않았던지라 대마초 돌풍 속에서도 건재했다.

77년 솔로 가수로 독립한 그는 자작곡인 ‘나의 20년’을 발표했다. 반응은 대단했다. KBS TBC DBS CBS 등 유명 방송사의 가요 관련 상들을 휩쓸고 TBC라디오 인기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서는 1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을 만큼 공전의 히트가 터졌다. 단번에 인기가수 대열에 오른 그는 콧수염을 기른 특이한 외모와 비음이 가미된 독특한 음색의 가수로 주목받으며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방송에서는 솔로 가수였지만 클럽과 음반 세션은 템테스트 멤버들과 변함없이 이어갔다.

‘햇빛 쏟아지는 들판-신세계’(78년) 발표 때 섹스폰 송명석이 보강되었다. 이후 장계현은 연주 활동에 전념하려는 마음에 3년간 템페스트 멤버들과 함께 부산 코모도호텔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활동했다.‘나의 20년’의 빅히트로 정상의 인기가수가 되었건만 그는 솔로 가수로서의 인기보다는 음악적인 만족을 주는 그룹사운드에 훨씬 애착을 느꼈다.

81년 장계현은 사랑의 아픔을 가벼운 디스코 리듬에 표현한 ‘너너너’를 발표해 건재를 과시했다. 이때 오리엔트의 나현구 사장과 포크 곡 메들리 작업을 했다. 원래 나 사장의 친척인 김세환이 부르기로 했지만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활동 금지가 되어 대신 장계현이 작업한 것이다. “2~3일 만에 30곡이나 불러 힘들었습니다.” 87년 이색 트로트 곡 ‘나 없이도 행복해다오’를 발표해 초판이 모두 팔려나가고 방송 인기순위 10위권에 진출하기도 했다. “자꾸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시도해 본 거죠. 트로트가 노래하기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이후 그는 교통사고 등으로 2년 동안 휴양한다. 91년 트로트 곡 ‘내청춘의 이력서’는 신시사이저와 컴퓨터 음향을 배제하고 통기타와 바이올린 등 현 위주의 24인조 어쿠스틱 반주의 대담한 편곡으로 야심차게 시도했던 곡이다.

온 나라가 IMF 경제 난국에 신음하던 98년 4월. 한동안 잠잠하던 장계현은 이번엔 컨트리음악인 9집 ‘어둠 속에 서서’를 발표했다. 미국 테네시주 내시빌에서 녹음 작업을 한 이 음반은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되었다. 음반 발표 기념으로 자신의 히트 곡들과 신곡들을 모아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이틀간 콘서트도 개최했다. 불황의 찬 바람에 몸서리치던 30대 이상을 위한 공연이었다. 2001년 4월 정동문화예술회관의 팝콘서트 '원더풀 투나잇'에서도 장계현과 템페스트는 중견 가수들의 백세션과 더불어 추억의 팝송을 노래했다. 5월엔 이틀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대수, 송창식등 70,80년대 포크가수 25팀과 함께 한국포크 30년 기념공연 ‘행복의 나라로’에 참여했다.

2003년에는 부산 송정에서 '동녘에 해뜰 때' 카페를 열어 사업가로도 변신한 그는 올해 4월 성인가요 취향의 '내 청춘 다시 한번' '잊을 거에요' 등 5곡을 비롯, 왕년의 히트곡들을 포함한 10곡을 담아 11번째 앨범 '아픈 사랑'을 발표했다. "중년가수가 밀려나면서 가요계가 시끄러운 댄스와 힙합, 그리고 트로트로 양분되는 시점에서 퓨전 트로트를 선택했습니다. 멜로디 강한 곡에 팝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성인가요에 내 스타일을 접목하려 애썼습니다." 또한 7월에는 템페스트 멤버들과 함께 시청 광장에서 7080세대를 위한 ‘여행을 떠나요’ 콘서트 무대에 올라 주옥같은 팝 레퍼토리로 열대야를 잊게 해줬다.

현재 마포 공덕동에서 '장 스튜디오'와 부천 중동의 라이브 카페 '사운드'를 운영하며 음악 외길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그는 "선진 음악시장의 경우 컨트리 가수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가수들이 두터운 팬 층의 지지로 음악적인 열정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국내 가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털어놓는다.

입력시간 : 2004-09-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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