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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실미도
진실을 압도한 과잉의 사내다움



이순신과 안중근, 최배달, 역도산 그리고 감사용까지. 요즘 브라운관과 스크린의 주인공들이다. 쉽게 극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이런 실존 인물을 극화시키는 것이 요즘 영화판의 추세이다.

현재 개봉작 외에 제작 중인 영화 가운데서도 실화 영화가 상당히 포진해 있다. 지강헌 사건과 노근리 사건, 그리고 전두환 시절 언론 통폐합의 희생양이었던 민영방송 TBC 사건 등 그늘졌던 시절에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일들이 영화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말이지 제작사들의 투철한 온고지신 역사의식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실화 영화들이 그 극적인 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실의 실타래를 얼마나 풀고 있는 걸까?

1,000만 관객을 끌어들이며 실화영화 제작 붐의 물꼬를 튼 작품인 ‘실미도’. (이 전에 물론 ‘살인의 추억’이 있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 픽션과 논픽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실화영화의 위험한 곡예를 볼 수 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이렇다. 1968년 북한군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다. 남한은 대북 응징차원에서 684(69년 4월에 창설)부대를 창설한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범죄자 31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원들은 목숨 건 지옥훈련을 받는다. 오직 김일성의 목을 따는 그 날만을 위해. 그런데 그만 남한과 북한이 화해무드를 조성한다.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린 684 부대. 이들에게 남은 건 역사 속에 고스란히 묻혀지는 일 뿐. 이제 이들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 그것도 청와대 습격을 도모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조국과 민족에 농락당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자결한다.

그런데 사실은 다르다. 극의 막판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당국의 사살 명령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또 이들이 군경과 대치하다 장렬하게 집단 자살로 최후를 맞은 것이 아니라 실수로 수류탄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어이없이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31명 가운데 대부분이 범죄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다.

어차피 영화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고답적인 역사적 고증을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진보적 역사의식으로 시대의 아픔을 그리면서도 영화 속 인물들은 도리어 신파적이고 퇴행적 감성에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주인공 설경구의 가족사에 월북한 아버지 이야기를 넣어 시대사적 비극과 개인사적 비극을 섞으려는 작위적인 설정(사실은 평범한 공군이었음)과 김 중사가 부대원 몰살 명령을 막으려고 떠나면서 연출하는 과잉의 비장미(김 중사는 원래 약혼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음), 멋있게 권총 자살하는 부대장의 어딘지 있어 보이는 카리스마까지(자살은커녕 부대원들의 습격에 저항조차 못하고 숨짐)…. 시절의 아픔을 공유한 자들에게는 모두 면죄부를 주되 속절없이 야속했던 시대에 대해서만큼은 긴 한탄을 하려는 듯하다.

실화영화가 인물을 묘사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런 인물에 대한 너그러운 평가에 따른 ‘소 영웅주의’다. 이 때문에 정작 밝혀져야 할 진실들이 묻혀지고 영화는 멋진 사내들만의 이야기로 빠져버린다.

언제나 현실보다 극적인 것은 없고 사실보다 실감나는 것은 없다. 이 때문에 실화영화는 관객들에게 역사 고증의 타는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동시에 실재 사실이 뿜어내는 극적인 재미는 허구의 이야기보다 무게감 있는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간혹 사실을 취해야 할 곳에 허구를 취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곳에 박제같은 묘사를 해대는 실수를 범하?범작들이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실화영화들이 소재 발굴의 용이함에만 기대어 소재 활용의 고민에 게을러지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10-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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