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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되돌리기] 팻 걸
발칙한 소녀들의 첫 경험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는 15세 소녀의 성 체험기가 화제가 되었다. 해리포터까지 누르고 베스트 셀러가 된 이 책에는 15세인 지은이의 첫 경험담과 함께 다섯 남자와 벌인 집단 섹스, 유부남과 복장 도착자와의 섹스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중들은 첫 성경험을 하는 사춘기 소년들의 성장통을 다룬 이야기에는 익숙해 하지만 첫 경험을 하는 사춘기 소녀들의 고백에는 당혹스러워 한다. 소년과 소녀를 바라보는 이러한 어긋난 시선에는 대개 처녀성에 대한 남성들의 왜곡되고 음험한 욕망이 담겨 있다.

처녀성과 순결을 연결시키는 것은 정복되지 않은 처녀지를 차지하려는 남성들의 소유욕에 기인한다.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간혹 원시민족들 사이에서는 소녀가 직접 자신의 처녀막을 파괴하기도 하고 티베트에서는 처녀인 소녀를 오히려 결혼상대자로 부적격자라고 여기기도 한다. 고대유럽에서는 ‘처녀 기피증’이 있어 신랑과 교합하기 전에 다른 남자에 의해 처녀막을 터뜨리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처녀성이 어디에서나 순결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 모두 남성에 의해 재단된 시선이 담겨 있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신성하든 불경하든 남성이 바라보는 처녀성일 뿐이란 얘기다.

여자, 그것도 성적으로 미숙한 소녀들이 생각하는 처녀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진실한 속내를 들여다볼 기회는 사실 좀처럼 없었다. 소녀가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발칙하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이전에 이미 여성의 성적 욕망을 낱낱이 파헤친 문제작 ‘로망스’로 주목을 끈 카트린느 브레이야 감독의 영화 ‘팻걸(Fat girl)’은 결코 청순하지 않은 소녀들의 예기치 못한 음담패설로 관객의 주목을 끈다.

영화의 주인공은 12살의 뚱뚱하고 못난 동생 아나이스와 15살의 이쁘고 매력적인 언니 엘레나이다. 두 사람은 생김새 만큼이나 뚜렷이 다른 성적 견해를 갖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와 첫경험을 꿈꾸는 로맨티스트 엘레나. 절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첫경험을 하겠다는 엉뚱한 소녀 아나이스. 첫경험에 대한 이들의 생각 속에는 남자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은 소녀들의 어리숙한 바람이 담겨 있다.

오매불망 짜릿짜릿한 첫경험을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여름 바캉스를 맞아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게 된 것. 휴가지에서 이탈리아 남자를 만난 이쁜 언니 엘레나는 대담하게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동생 아나이스는 이들의 남녀상열지사를 무심한 듯 부럽게 지켜본다.

하지만 여성의 질은 그다지 쉽게 남성을 허락하지 않는 법. 쉽게 열리지 않는 처녀지 앞에서 이탈리아 남자친구는 달콤한 유혹을 건네고 엘레나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미지의 그 곳을 허락하고 만다. 그리고 처녀성 상실의 대가는? 그것은 낭만적인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낭만적 사랑의 탈을 쓴 욕망의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소녀의 첫경험은 한 여름밤의 실수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아나이스의 첫경험은 어땠을까? 그녀의 첫경험은 그녀의 엉뚱한 바람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나이스는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첫날밤을 치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나이스의 첫 상대는 밝히지 않겠다.) 결국 영화는 첫경험이 소녀들에게 이토록 허망하고 잔혹하다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 ‘팻걸’의 원제는 ‘A ma sœur(내 자매에게)’이다. 아마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소녀들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섹스에 대한 낭만적 판타지는 버리라’고. ‘그건 그저 그런 장난이거나 아니면 끔찍하고 역겨운 사고일 뿐’이라고.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


입력시간 : 2004-12-0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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