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돌리기] 이름 속에 숨겨진 재미와 감동


최근 개봉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을 보면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대천사 가브리엘에서부터 악마의 우두머리 루시퍼까지 성서의 인물들이 때론 진지하게, 때론 우스꽝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루시퍼가 담배 회사 대주주라는 설정은 애연가들에게 사뭇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 콘스탄틴은 어디에서 튀어 나온 인물일까? 분명 성서에 나오는 인물은 아니다. 하느님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를 믿지 않는 주인공 콘스탄틴. 그는 영화 마지막에 자기 희생을 통해 신의 구원을 받게 되면서 신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버리게 된다. 이는 ‘십자가의 환영’을 보고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박해 받던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는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기독교와 성서에 관련된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은 할리우드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경우는 역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매트릭스’. 인류의 구세주를 의미하는 주인공 네오(Neo, 그리스어로 ‘새롭다’라는 뜻으로 철자를 재조합 하면 ‘One, 구세주’),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트리니티, 루시퍼를 연상시키는 사이퍼 등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또한 성서를 비트는 영화 ‘도그마’의 타락 천사 로키는 성서에서 분쟁과 악의 신을 의미한다.

성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도 쉽게 발견된다. 절대 악과 싸우는 여전사 이야기를 다룬 영화 ‘엘렉트라‘에서 엘렉트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가멤논의 딸로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의 화신이 되는 비운의 여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영화 속 이름들은 어떨까? 이름에 유독 집착하는 감독으로는 ‘간첩 리철진’이나 ‘킬러들의 수다’로 유명한 장진 감독을 들 수 있다. 여자 배우 기용에 인색한 그는 자신의 영화 속에 대개 화이, 화녀, 충녀처럼 고전적인 여자 이름을 쓰곤 한다. 이는 김기영 감독의 요부 시리즈 ‘화녀’, ‘충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팜므 파탈 이미지를 오히려 구원의 여성상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묘한 이질감을 주고 있다.

프랑스의 레오 카락스 감독은 알렉스라는 남자 이름에 집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쁜 피’,‘퐁네프의 연인들’,‘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주인공 이름이 모두 ‘알렉스’였으니 말이다. ‘알렉스’란 이름은 그리스어 ‘알렉산드로스’에서 따온 말로 인류의 수호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이름이 비슷한 이미지로 쓰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누라에게 주도권을 뺏기고 허수아비 사장으로 일하는 ‘마누라 죽이기’의 봉수(박중훈),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해 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소시민 봉수(설경구), 만날 비전 없는 엑스트라로 전전하는 ‘엑스트라’의 봉수(임창정) 등은 모두 조금 어리숙한 우리시대의 주변인 ‘봉수’들이다. 유독 ‘봉’자가 이와 같은 이미지들이 많은데 ‘라이터를 켜라’의 쪼다 봉구(김승우),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떠벌이 봉팔, ‘봉자’에서 평범한 소시민 봉자(서갑숙)도 인간미 철철 풍기는 ‘봉’시리즈의 이름들이다.

이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감독의 분신이기도 하고 주제 의식을 드러내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특정 이미지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사실들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일이다. 예를 들어 ‘미스터 빈(Mr. Bean)'의 이름 빈(Bean)이 수많은 야채 리스트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고서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Bean이 콩을 의미하고 콩이 속어로 별 볼 일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사내(Mr. Bean)가 펼치는 황당무계 모험담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3-02 14:36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