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도 같은 완전무결한 사랑

[영화 되돌리기] 워크 투 리멤버
종교와도 같은 완전무결한 사랑

8일 성 베드로 광장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장에 ‘불청객’이 한 명 있었다. 모든 참배 객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그는 바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해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으로부터 이라크전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받았다.

전 세계인 뿐 아니라 가톨릭 수장에게까지도 미움 받은 부시 대통령.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것도 신앙심이 가장 깊다는 회개한(Born again) 신자다. 미국 내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 보수적 신앙을 가진 개신교 신자들이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이 미국의 종교성이야말로 미국 사회를 다른 서구 나라와 구분 짓는 특성이라고 했던 것처럼 미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깊게 종교화한 사회다.

영화계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교영화로서는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비롯해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 ‘킹덤 오브 헤븐’, 16세기 일본으로 건너간 성직자들이 사무라이를 개종 시킨다는 내용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차기작 ‘침묵’에 이르기까지 종교성이 짙은 영화 제작이 할리우드에서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2002년 개봉한 최루성 영화 ‘워크 투 리멤버’에서도 미국 내 종교적 보수주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필적할만한 하이틴 스타 맨디 무어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상대 배우로 등장한 쉐인 웨스트 역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신예 스타였다. 이 같은 꽃미남 꽃미녀가 나오는 영화라면 모두들 그렇고 그런 틴 에이지 영화를 떠올릴 법도 했다. 그런데 ‘워크 투 리멤버’는 이러한 예상을 깨고 복고와 신파로 중무장한 독특한 영화였다.

줄거리는 방정치 못한 고등학생이 목사의 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회개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10대 영화하면 ‘아메리칸 파이’류의 난잡한 이야기만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너무나 촌스러운 복장의 맨디 무어가 나와 잘생긴 남학생을 참회의 길로 인도하는 이 영화는 상당히 낯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기독교적 성향은 미국 내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프랑스 학자 기소르망이 미국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교회로 몰린다며 미국 사회가 놀랄 만큼 종교적이라고 말했듯이,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종교성이 어쩌면 그들의 강한 정체성인지도 모른다.

고결한 순애보 앞에 변심이란 있을 수 없다. ‘워크 투 리멤버’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무조건적인 종교요, 최고의 선이다. 미국인들의 종교성도 이와 같다. 그들의 고결한 신념 앞에 변심은 곧 악이다. 이 때문에 그들 눈에 자연스레 북한은 악이고, 이라크 전쟁은 십자군 전쟁이 된다. 그래서 그렇게 종교적인 나라가 가장 비종교적인 일들을 저지른다. 그것은 변치 않는 순수한 사랑, 순도 100%의 운명적 사랑 안에 숨어있는 독선과도 같다.

‘워크 투 리멤버’는 단순히 진부한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와 가족, 신앙을 지지하는 이 영화에서 미국인만의 도덕적 가치와 그들만의 신앙을 중시하는 비종교적인 미국이 떠오르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4-21 15:40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