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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미술이야기] 까미유와 로댕의 비극적 사랑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
천재적 여성 미술가 남근주의 벽에 좌절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



1-까미유 끌로델 '성숙의 시대' (1900) 오르세 미술관 소장
2-영화 '까미유 끌로델'
3-까미유 끌로델 사진 (1882)
4-로댕작 '까미유 끌로델의 초상'(1886)

(왼쪽) 까미유 끌로델 '기도하는 여인'(1889) / (오른쪽) 까미유 끌로델 '왈츠'(1893)
미술은 언어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에 미술은 영화의 또 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와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나보았으면 한다.

2만 5000년이 넘는 미술의 역사에서 여성미술가들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사상 가장 황금기였다고 할 르네상스 시절 당시 화가들의 면면을 기록한 바자리(Giorgio Vasari, 1511~1574)의 '미술가 열전'(Le Vita De' Piu Eccellenti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을 살펴봐도 여성미술가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문에 자조적인 말이긴 하지만 여성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델이 되거나 아니면 관람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미술사에서 여성에 대한 벽은 높았지만 근대정신, 근대성이 시대를 선도하기 시작한 인상주의시절에 들어서면서 몇몇 여성미술가들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미술사에 있어서 미술이란 남근중심사회의 상징적인 장르로 여권 신장이나 여성운동가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많은 여성미술가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현대미술을 풍요롭게 해주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만약 요즘 태어났다면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여성조소예술가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1864~1943)이다.

여성미술가로 작품에 대한 재능과 남다른 열정으로 작품에 임했던 까미유 끌로델은 미술가로서, 한 여성으로서 남다른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파란만장한 일생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가로서 제대로 된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사랑에 배신당해야 했던 일생을 다룬 영화가 바로 그의 이름을 그대로 영화제목으로 한 '까미유 끌로델'(1988)이다.

나름대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구가했던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 1955~ )가 여성조소예술가 까미유 끌로델을 맡고, 그녀의 이기적인 애인이자 라이벌인 동시에 스승이었던 로댕역에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 1948~ ) 가 출연한 이 영화는 벨기에의 유명한 카메라 감독이었던 브루노 누이땅(Bruno Nuytten, 1945~ )이 처음으로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카메라감독으로서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3차원의 조소작품의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발군의 기량을 통해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방년 20세의 아름답고 건강한 조소예술가 지망생 까미유는 조소를 배울 셈으로 로댕의 문하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무려 24세나 많은 44세의 로댕(Auguste Rodin,1849~191 7)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운명적인 '아픈 사랑'에 빠져 들고 만다.

젊고 자신의 작업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재능에 매료된 로댕은 까미유를 그가 제작 중이던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삼성 로댕갤러리가 소장 전시중이다) 제작팀에 배치하고 그녀는 로댕과 조소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언제나 최선 이상을 다한다.

하지만 까미유와 로댕의 관계는 매우 복잡 미묘하게 전개된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제관계, 작가와 모델이라는 실질적인 관계, 그리고 이성간에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동시에 예술가로서 묘한 경쟁관계와 로댕의 까미유의 재능을 시기하는 이기적인 사랑은 그들 둘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영화를 절정으로 이끌어 간다. 여기에 까미유는 로댕이 첫 사랑이었던 반면에 로댕의 끊임없는 여성편력은 까미유를 괴롭힌다.

로댕의 아내가 되어 예술적 동지로 함께 살기를 희망했던 까미유에게 로댕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젊음 그리고 재능을 탐했던 허상이자 이기적인 한 남성에 불과했다.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까미유는 로댕을 떠나 홀로서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드뷔시(Achille-Claude Debussy,1862~1918)를 만나 예술가로서 교감을 나누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해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까미유는 당시 사회가 가졌던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한계를 느끼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잃게 되고 살상가상으로 로댕에 대한 피해망상증세로까지 번져 그녀의 어머니는 까미유를 정신병원에 30여 년간 입원시키고 만다.

당대 최고의 조소예술가로 가장 인간적인 조각 작품을 제작해서 대리석에 피를 돌게 한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던 로댕과 달리 그에 못지않은 재능과 열정을 가졌지만 여성이라는 편견 때문에 좌절하고 끝내는 30여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까미유는 대개의 재능 있고 자신의 일에 몰두했던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는 평범한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나 재능이 뛰어났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사랑하기조차 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은 19세기 근대정신이 시대를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여전했던 시절 한 재능 있는 여성이 그 시대를 어떻게 힘겹게 살아내야 했고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동시에 미술의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던 까미유 끌로델의 존재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수작이다.

영화는 처절하게 번민하면서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자 여성으로서의 까미유에 대해 끝없는 연민을 갖게 한다. 여성예술가로서 철저한 분석과 데생으로 흙을 가지고 살아있는 조소작업을 실천한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로댕에 버금가는 조소예술가로 재평가된다.

로댕의 이기적인 동시에 까미유의 재능을 시기하는 야비한 로댕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예술적 평가를 다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까미유의 삶에 관객들은 빨려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까미유 끌로델의 전기 영화이자 남근주의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영화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휴먼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댕과의 사랑 때문에 가족들에게까지 배척당해야 했던 까미유는 이 영화를 계기로 로댕의 불운한 애인의 역할에서 시대를 선도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거듭 태어난다.

까미유 역을 맡는 동시에 영화 제작자로도 참여한 이자벨 아자니의 역할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그는 광기어린 카미유를 호연해 세자르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 만 아니라 여성해방론자로서의 역할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특히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 여성운동가들이 주장하던 바를 까미유라는 재능있지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예술가의 삶을 통해 사랑과 자신을 동시에 구현하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내달렸던 젊고 야심만만한 조소예술가의 삶을 추적하면서 여성해방을 주장한다. 따라서 영화에서 까미유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편견과 부조리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동시에 남성지배구조로 인해 희생되는 여성으로 그려짐으로써 동등한 재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남성들 때문에 세상을 등져야 하는 사람이 된다.

일부에서 지나치게 까미유의 삶을 멜로로 끌고 갔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지만 드라마틱한 내용 전개와 이자벨 아자니의 분출하는 듯한 광기어린 눈빛은 그 자체로 영화의 매력을 더해준다. 또한 파리 로댕미술관에서 2008년 열린 까미유의 회고전을 떠 올리며 작품을 보노라면 그 둘 사이의 애증을 아는 관객들은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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