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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고 응원하는 스포츠 영화의 미덕
[시네마]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한국판 '쿨러닝' 연상되는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각본 없는 드라마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



만약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킹콩을 들다>와 <국가대표>를 극장에서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영화계엔 ‘스포츠 영화는 안 된다’는 암묵적 공포가 있었다. 확실히 스포츠는 쉽게 손댈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일단 스포츠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배우들이 최소한 아마추어 수준으로 스포츠를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선 기술력과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경기를 다루는 만큼 이야기는 항상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로 결론 나고, 제 아무리 실감나게 경기를 재현해봐야 실제 경기의 박진감을 못 따라간다. 이렇다보니 스포츠 영화는 ‘잘 해야 본전’이라는 취급을 받았고, 뮤지컬과 함께 제작기피 순위 1등을 다퉜다.

하지만 스포츠엔 도무지 외면할 수 없는 끓어오르는 에너지가 있다. 비록 반짝 인기일지라도, 올림픽 시즌이 되면 사람들은 TV 앞에 모여 숨을 죽인다. 이때만큼은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구분이 사라진다. 순수하게 인간의 몸으로 써 내려가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 모든 관객이 한 마음으로 울고 웃는다.

아무리 ‘스포츠는 안 된다’고 겁을 줘도, 영화가 스포츠를 품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건 이런 매력 때문이다.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의 김용화 감독은 한국 최초의 스키 점프 국가대표 팀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마음을 뺏겼고, 한국 최초로 스키 점프를 내세운 스포츠 블록버스터 <국가대표>가 탄생했다.

<국가대표>의 도입부는 익숙하기 그지없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전국 각지의 괴짜 선수들을 찾아 모으듯, 스키점프 국가대표 팀의 코치 방종삼(성동일)은 급하게 전국 방방곡곡에서 선수들을 찾아 팀을 만든다. 때는 199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둔 상태에서 선전용으로 스키 점프 팀이 급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등록된 스키 선수를 탈탈 털어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국가대표 5인방’이 결성된다. 미국 알파인 스키 주니어 부문 선수 경험이 있는 입양아 헌태(하정우)가 그중 가장 선수다운 선수. 청소년 스키 선수였지만 약물 복용으로 쫓겨나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흥철(김동욱), 흥철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고깃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재복(최재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 면제를 받아야하는 칠구(김지석)와 정신지체를 앓는 칠구의 동생 봉구(이재응)는 각각의 사연을 품고 국가대표 팀에 합류해 지옥훈련을 시작한다.

한 여름의 동계 스포츠, 열악하다 못해 기가 막혀 웃음이 나오는 훈련환경, 팀원 간의 갈등, 드라마틱한 경기 과정까지 <국가대표>는 할리우드 스포츠 영화 <쿨러닝>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많다. 이건 칭찬이다. 헌태를 비롯해 흥철, 재목, 칠구와 봉구, 방 코치 각자의 이야기는 스포츠 영화의 공식 속에 무리 없이 녹아들고, 필요한 순간 코믹한 상황을 등장시켜 호흡을 가다듬는다.





‘국가대표’라는 소재 속에 어쩔 수 없이 묻어나는 민족적 신파 정서도 과하지 않다. <국가대표>의 가장 큰 힘은, 주인공들을 향한 숨기지 못하는 애정이다. 아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가능한 애정일 것이다. 변변한 연습복 하나 없어 ‘USA'로고가 박힌 스키복을 입어야 하는 헌태, 쓸데없는 짓 하고 돌아다닌다고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묵묵히 연습장으로 돌아오는 재복,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악천후 속에서 팀을 위해 끝내 날아오르고야 마는 칠구, 팀을 살리기 위해 무릎 꿇는 방코치의 모습은 ’진심 어린 신파‘를 보여준다.

부상을 막기 위해 연습장에 물을 뿌리고 스키를 타던 팀원들이 한 겨울 밤 쏟아지는 장대비를 보고 약속이나 한 듯 연습장으로 모이는 장면은 진심어린 신파의 결정체다.

코미디와 드라마를 양 손에 쥐고 성큼성큼 뜀박질하던 영화는 후반부의 경기 장면을 통해 ‘스포츠 영화’의 진면목을 발휘한다. 방 코치의 말 대로 “스키 점프의 룰은 간단”하다. 거의 절벽 같은 빙판길을 미끄러져 내려와 허공으로 도약하고, 더 멀리 날아 착지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선수들이 까마득한 절벽 레일을 빛처럼 통과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관객석은 잠시 숨을 멈춘다. 우아한 비행을 끝내고 선수들이 착지하는 순간, 진공상태가 깨지듯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나온다. 실제로 와이어에 몸을 묶고 60미터 상공에 매달려야 했던 배우들의 노력과 신기술을 동원해 박진감 넘치는 경기장면을 담아낸 감독의 합작품이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긴장하며 그들의 비상을 응원하게 된다. 이것이 스포츠 영화의 미덕이다. 경기의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경기에 빠져들고, 함께 응원을 보내는 것. “이기고 지는 건, 스포츠에서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교과서 속의 ‘뻔한 위로’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다가온다.

실제 한국 스키 점프 국가대표 팀의 전적이 화면에 전해질 때, 뭉클한 감동이 솟는다. 언제까지 비인기종목 선수들이 열악한 상황을 딛고 인간승리를 보여줘야만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솟는다. 더불어 충무로 비인기 종목이었던 ‘스포츠 영화’의 비상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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