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록에 대한 천진한 믿음과 치밀한 영화적 구조의 만남

만약 지구의 종말이 5시간 앞으로 다가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도망가기엔 턱없이 짧고, 손 놓고 포기하기엔 억겁만큼이나 긴 시간. 0.0001%의 희망을 믿으며 피난길에 오른 사람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마지막을 기다리는 사람이든, 잠시나마 과거를 떠올리며 인생을 정리할 것이다.

매순간 내 인생의 선택은 옳았던가. 하기 싫었지만 해야만 했던 선택, 꼭 하고 싶었지만 못한 선택, 절대 하지 말아야 했을 선택과 마지막 순간에도 자랑스러운 선택까지. 지난 삶의 대차대조표를 정리하는 동안 한 곡의 음악이 필요하다면, 숨겨진 펑크 록 <피쉬 스토리>를 권한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피쉬 스토리>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의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소소한 작은 선택부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생일대의 선택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제의 선택이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만든다는 것.

만약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오늘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피쉬 스토리>는 그물코처럼 얽힌 세상 속 낯모를 사람들의 ‘후회없는 선택’이 내일의 기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다. 기적의 씨앗은 무명 록 밴드의 마지막 노래에서 피어난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진심을 다해 부른 열정적인 노래 한 곡이 37년의 시간을 넘어 기적의 그물코를 꿰는 과정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영화는 2012년, 도쿄 거리에서 시작한다. 여느 때라면 인파로 북적거릴 한 낮의 도쿄는 기이하게도 텅 비어있다. 쓰레기더미만 휘날리는 거리를 한 남자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활보 중이다. 마치 세상의 주인이라도 된 양, 자신만만한 표정의 남자는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소리에 경악한다.

지구 코 앞으로 돌진해오는 혜성과 충돌해 지구가 산산조각나기 5시간 남짓 남은 지금, 태평하게 노래라니! 하지만 지구 마지막 날, 한 그루의 사과나무 대신 한 곡의 펑크록을 듣겠다는 레코드 가게 주인은 무명 밴드 ‘게키린’의 LP를 꺼낸다. 제목은 ‘피쉬 스토리’. “나의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거대함과 사나움에 고래조차 달아나겠지”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에, 거대한 고독을 노래하는 펑크록이 흘러나오자 묘하게 생기가 돈다.

영화는 특별한 설명 없이 2012년을 시작으로, 1975년, 1982년, 2009년을 오가며 이 음악을 거쳐 간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먼저 전설적인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데뷔하기 1년 전이자, 일본에 펑크 록이라는 말도 생경했던 1975년. 무명의 록 밴드 게키린은 눈물의 마지막 녹음을 한다.

진심으로 록을 사랑하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게 된 젊은 밴드는 마지막 곡에 모든 열정을 담는다. 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인기도, 명예도, 돈도 아니다. 그저 이 노래를 부르는 자신들의 마음이 누구에겐가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시간이 흘러 1982년. 반주 중간에 있는 묘한 ‘묵음’ 때문에 ‘피쉬 스토리’는 오컬트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해진다.

우연히 신기 있는 여인에게 세상을 구하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들은 소심한 대학생은 ‘피쉬 스토리’를 듣다가 위기에 빠진 한 여자를 구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09년. 이유도 모른 채 평생 ‘정의의 사도’로 훈련받으며 자란 한 남자는 지구 종말론자들이 장악한 페리 호에서 한 여고생을 구한다. 그리고 다시 2012년, 텅 빈 거리위로 ‘피쉬 스토리’가 흘러나온다.

원작자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치밀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유명하다. 설명 없이 시간을 넘나드는 구성은 소설에선 효과적일지라도, 영화에선 난데없거나 산만할 수 있다. 하지만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를 통해 이미 이사카 코타로의 원작을 성공적으로 화면 위로 꿰어낸 나카무로 요시히로 감독은 <피쉬 스토리>를 통해 각 시대의 정서를 살리면서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엮는 작업에 성공했다.

단순하고 소소한 각각의 사건들은 어느 순간 아귀를 맞추고 포개져 단단한 성을 이룬다. ‘허풍’이라는 의미의 ‘피쉬 스토리’가 오역되면서 특별한 의미로 변하는 과정이나 ‘피쉬 스토리’에 남아있는 ‘묵음’의 사연이 2012년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발해서 감동적이다.

시간을 넘어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고 열정과 희망을 일깨우는 데 확실히 음악의 공이 컸다. 영화가 슬며시 기운을 잃을 때 즈음 흘러나와 결정적인 순간을 만드는 음악은 영화 전체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린다. 록의 정신은 희망, 열정, 에너지가 아니었던가. 세상이 절망적일 때, 일어서라고 북돋우는 록 음악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피쉬 스토리>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영화의 진심이 와 닿는 건, 아마도 영화 속 그 음악이 ‘진짜’이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영화 속 밴드의 연주는 모두 실황이다. ‘게키린’의 베이시스트 역을 맡은 이토 아츠시와 보컬을 연기한 코라 겐코는 3개월 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영화에서 실제 연주를 소화했다. 일본에선 영화 개봉과 함께 ‘게키린’이란 이름으로 정식 앨범을 발매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

매끈하기보단 거칠고 열정적인데, 펑크록의 순수함과 만나 매력이 배가 됐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패러디와 설정이 영화 팬들을 웃음바다로 몰아넣고, 수준 높은 영화음악이 록 마니아의 어깨를 잡아 흔든다. 한곡의 록 음악이 세계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피쉬 스토리>의 천진한 ‘뻥’이 마음에 와 닿는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