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정수라 '아! 대한민국' 1983년 오아시스레코드온 국민이 사랑했던 특별한 노래솔로 버전 발표후 응원가로 인기몰이… 가요차트 정상 이변 연출

70-80년대에 대중가요 음반을 구입해 본 사람이라면 어느 가수의 음반에나 어김없이 수록되어 있는 건전가요나 군가에 대한 짜증스러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땐 ‘건전가요 리스트’에 등재된 노래들 중 한 곡을 무조건 수록해야만 음반을 발표할 수 있던 통제의 시절이었다.

‘사회정화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강행된 제도 속에서 가수들이 선호했던 건전가요로는 ‘조국찬가’, ‘어허야 둥기둥기’, ‘시장에 가면’ ‘새마을 노래’, ‘꽃동네 새동네’, ‘잘살아보세’ 등이 있었다.

건전가요란 시대적 상황이나 현실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야 했다. 시행 초기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고운노래가사 대상’을 수상한 ‘아침이슬’은 발표 초기엔 ‘건전가요 리스트’에 당당하게 등재된 노래였다.

그러나 노래가 시위현장에서 단골 레퍼토리로 불리어지고 김민기가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힌 후 금지곡으로 둔갑했다. 음반에 수록할 건전가요로 선택한 음반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처럼 우리의 대중가요는 정권의 필요에 따라 ‘금지곡’으로 묶었다가 필요에 따라 ‘건전가요’로도 변신을 거듭하는 아픈 역사를 되풀이해 왔다. 건전가요를 강제로 수록해야 되는 악습은 80년대 민주화항쟁의 여파로 90년대 초반에서야 사라졌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8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이자 건전가요다. 대부분의 건전가요가 대중의 외면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관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곡은 애국가만큼이나 많이 불리어진 당대의 빅히트 곡이다. 유토피아적 내용을 담은 가사와 경쾌한 리듬, 귀에 착착 감겨오는 멜로디는 전국의 도시, 농촌은 물론이고 해외동포들에게도 애창되었다.

사회정화위원회와 한국방송협회 제정 건전가요로 뽑혀 무차별 보급이 시작되었을 때 때마침 KAL여객기 폭파사건, 남침 땅굴 발견사건, 중공기와 북한기 귀순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와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었다. 그때 국민감정을 하나로 묶는 데 이 노래는 제격이었다. 처음엔 건전가요라는 이유로 꺼렸던 방송사에서도 정책적으로 꾸준히 노래를 내보냈다. 그 결과 가요 차트 정상에까지 등극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정수라는 1974년 본명 정은숙으로 제1회 한국가요제 본선에 출전해 ‘종소리’란 노래로 데뷔했다. 이후 CM송과 영화주제가를 주로 부르고 1982년에 첫 독집을 발표했지만 주목받는 가수는 아니었다. ‘아! 대한민국’은 ‘국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고취시키자’는 의도로 제작된 건전가요 모음집에 정수라와 장재현의 혼성 듀엣 곡으로 처음 발표되었고 이후 민혜경과 김현준도 듀엣으로 불렀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히트가 된 것은 1983년 정수라의 독집에 솔로 버전으로 실리면서부터. 작사가 박건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흔히 말하듯 관제가요도 정권에 아부한 작품도 아니다. 건전가요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아 가사를 쓴 것은 ‘우리의 땅’이고, ‘아! 대한민국’은 단순한 건전가요로는 히트되기 힘들다는 생각에 밝고 건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내 바람을 담아 만들어 본 노래다.”

솔로 버전 발표 이후 운동장에서 응원가로 사용되며 엄청난 인기몰이가 시작되었다. 대학가 운동진영에서도 노랫말을 수정해 운동가로 이용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결국 그해 MBC 10대가수 신인상은 정수라의 몫이 되었다. 이 노래는 이후 LA올림픽은 물론 각종 국내외 스포츠대회를 통해 온 국민이 애창하는 국민가요로 떠올랐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당시의 건전가요들을 들어보니 짜증스러웠던 노래들이 놀랍게도 추억으로 다가온다. 시대적 상황을 거세하고 자세히 가사를 음미해 보니 하나같이 좋은 가사고 멜로디가 뛰어난 곡도 많다. 이는 건전가요에 참여했던 작사, 작곡자 그리고 가수가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음악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마련이다.

분명한 것은 ‘아! 대한민국’은 ‘건전가요’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어 온 국민이 사랑했던 특별한 노래라는 사실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