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한음파 '독감' 2009년 트리퍼사운드 下앨범 수록곡 전체가 화학작용 일으켜날것 그대로의 열정과 삶에 대한 고민 가슴 뻐근한 감동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과거의 음울하고 환각적인 사이키델릭 장르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치사회적 격변기였던 60-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장르적 호응을 이끌어냈던 ‘사이키델릭’의 미덕은 관습의 전복을 통한 자유의 획득이긴 했다.

그런 점에서 록밴드 한음파의 장르적 시도는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정서적으로 꽤나 유효한 선택으로 이해된다. 현재의 불안한 정치경제 사회적 현실은 그때와 닮은 꼴이 아니던가!

사실 록밴드 한음파를 사이키델릭 밴드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앨범을 들어보면 전 곡이 아닌 음악적 필요에 의해 도입된 몇 곡에만 사이키델릭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음파는 한국적 사이키델릭을 처음으로 선보였던 신중현과도 차별되는 새롭고 진보적인 ‘사이키델릭의 모델’을 제시한 점에서 평가 받을 만하다.

관습적인 음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운드를 지향하는 한음파의 향후 음악 정체성에 ‘사이키델릭’은 의미 있는 장르적 대안이자 지향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앨범을 쭉 들어보면 숨소리조차 부담스러운 정적인 분위기와 가슴에 응어리진 무언가를 토해내듯 폭발적인 분위기가 공존함을 알 수 있다. 이점은 이들의 음악이 테크놀로지와 화려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긴장감이 결여되어 있는 요즘의 대중음악과 완벽하게 차별적임을 증명한다.

수록된 10곡은 일관된 정서를 향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히트곡을 염두에 두고 상투적으로 배열된 독립된 트랙들이 아닌 수록곡 전체가 화학작용을 발휘하는 앨범이란 이야기다. 비록 유행하는 트렌드와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날 것 그대로의 뜨거운 열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수록곡들은 가슴 뻐근한 감동이 있다.

앨범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무덤으로 몰고 가는 비상식적인 정서는 불안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히려 선(善)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2001년 첫 EP에 실렸던 첫 트랙 '초대'는 이 앨범이 흥미로운 음악여행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몽환적 분위기가 인상적인 곡이다. 마치 지독한 감기에 걸려 현기증이 일어나듯 멍한 상태를 복잡 소란스런 사운드로 덧칠한 ‘독감’에는 놀라운 창법이 숨겨져 있다.

하나의 목에서 두 가지 다른 소리를 내는 몽고의 전통창법 ‘험’이다. 이 트랙에는 ‘네스티요나’의 여성보컬 요나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타이틀 곡 ‘무중력’은 직접 내몽고에 가서 배웠다는 몽골 현악기 마두금의 애조 띤 슬픈 선율과 에너지 넘치는 기타 사운드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폭발직전의 분노를 담은 듯 긴장감이 감돌지만 매미를 울음을 연상시키는 발음이 재미난 '매미', 게스트로 참여한 네팔인 카락 펜파의 청명하면서도 상여가락을 연상시키는 허밍 코러스가 기괴한 분위기를 더하는 '무덤', 그리고 은유적인 가사와 경쾌한 사운드가 귀에 감겨오는 2번째 EP‘ 5호 계획’에도 수록된 '200만 광년으로부터의 5호 계획'은 수록곡 중 가장 대중취향적인 트랙이다. 'Sleep In'은 세상과의 단절을 고하는 외침이다.

전기를 뽑아내고 통기타 한대로 담백하게 노래한 발라드 곡 ‘연인’은 일종의 보너스 트랙 같다. 여타의 수록곡과 다소 이질적인 이 슬픈 노래의 오리지널 버전은 피아노와 만돌린이 들어간 밝고 화사한 곡이라 한다. 헌데 옥탑 방에서 이정훈이 기타 한 대로 불렀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 로파이(lo-fi) 사운드의 칙칙한 질감으로 되살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멤버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9분의 러닝타임의 대곡 ‘참회’는 이 앨범의 백미다. 이 노래는 ‘원 테이크’ 즉 동시녹음으로 완성한 곡이다. 드럼스틱이 부러지는 라이브의 생생한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기에 연주 때마다 느낌이 다른 즉흥적 매력까지 담고 있다.

첫 정규앨범을 통해 지난 10년의 음악을 정리한 한음파는 과거의 음악에 방점을 찍고 새로운 소리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음악을 무아지경으로 노래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음악에 그대로 투영되어 더욱 많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