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영화 초설ost 1958년 픽쳐 유성기SP 유니버샬레코드영화 존재 확인해 주는 유일한 재료50년대 국내 기술로 제작… 500만원 호가하는 진귀한 보물

히틀러는 그림에 대한 병적인 수집벽이 있었다. 조선 정조 때 '시.서.화 3절'로 불렸던 신위는 돌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도 가는 곳마다 수석을 주워 수레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수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 대상이고 그 역사 또한 장구하다.

픽쳐 디스크는 음반 전체에 그림이 그려진 음반을 말한다. 정규앨범이기보단 소량의 전시수집용 기념음반으로 희귀성과 더불어 그 화려한 시각적 매력으로 수집본능을 자극시키는 매력적인 음반이다.

이 음반은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60~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제작이 시작되어 80년대에 절정을 이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픽쳐디스크는 요절한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 록음악의 전설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와 영화 스터워즈의 OST가 있다.

특히 사후에 온갖 의혹을 불러온 마릴린 먼로의 그림음반은 무명시절의 누드 사진이 수록되어 전 세계 마니아들의 표적이 되었다.

1978년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된 비틀즈의 픽쳐디스크는 그 화려한 디자인이 군침을 돌게 하고 록그룹 퀸의 요절가수 프레드 머큐리의 마지막 음반도 기념 픽쳐디스크로 나와 전 세계 음반수집가들을 흥분시켰다.

국내에서는 60년대에 불국사 방문기념으로 종이 픽쳐 디스크가 제작되었고 한일은행 창립기념, 대학과 호텔의 신년 인사, 개관, 개교기념으로 소량 제작했었다.

이처럼 국내 픽쳐디스크는 60년대에 각종 기념물로 일반에 널리 애용되다 70년대에 자취를 감췄다. 국내에 픽쳐디스크가 처음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가수 신윤정에 이어 가왕 조용필이 해운대 콘서트 실황을 소량 한정 LP로 발표했었기 때문. 당시 '국내 최초'라는 요란한 상업적 수식어가 붙었던 것은 대중에게 픽쳐디스크는 존재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

과연 조용필의 픽쳐디스크가 국내 최초일까? 아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국내 그림음반의 역사는 재킷조차 없던 유성기 음반 시절인 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자와 기술이 열악했던 50년대에 국내 기술로 제작한 영화OST 픽쳐 유성기 음반의 실존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 엄청났던 영화의 인기가 빚어낸 기적이 아닐까 싶다.

세간에는 '5~6장 쯤 나왔을 것'이라는 풍문이 있지만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픽쳐 유성기 음반은 단 3장이다. 먼저 1958년 4월 20일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는 파격적인 영화답게 주연배우 최은희와 김학의 충격적이고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음반에 담겨있다.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눈 내리는 밤'OST도 있다. 최근 필름이 발굴된 이 영화OST에는 50년대 악극단 시절의 '눈물의 여왕' 전옥의 사진이 들어있다.

그녀가 영화배우 최무룡의 어머니고 최민수의 외할머니라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 영화는 악극을 영화화한 국내 최초의 영화로 이후 3번이나 리메이크된 50년대 최고의 영화다.

가장 중요한 픽쳐 유성기음반이 하나 더 있다. 괴짜 감독으로 유명한 고 김기영감독의 1958년 5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초설'의 OST 유성기음반이다.

영화의 필름은 고사하고 시나리오조차 없는 진귀한 영화이기에 이 음반은 영화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유일한 자료다. 음반 앞면에는 주인공인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와 박암의 영화스틸 사진과 주제가를 부른 인기가수 나애심의 사진이 예술적으로 새겨져 있다.

나애심은 '디디디'로 유명한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다. 뒷면에는 당시 유니버샬에 소속된 현인, 황정자, 송민도, 장세정 등 유명 전속가수들과 작곡가 손목인 등 14명의 가수, 작곡가들의 사진이 음반 전면을 빙 둘러있다.

존재조차 숨겨져 있었던 이 유성기 픽쳐음반은 500만원을 호가하는 한국대중음악과 영화계의 진귀한 보물이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 CD에는 다양한 그래픽과 사진, 그림이 디자인되고 있다. 비주얼 이미지가 중요한 디지털 시대를 몇 십 년 앞서 세상에 나온 진귀한 아날로그 픽쳐디스크들의 존재는 우리 대중음악의 만만치 않은 공력의 여과 없는 증명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