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 등 '나미 신드롬'까지[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나미 '인디언 인형처럼' (1990년 서울음반)6집 수록된 평범한 노래 DJ붐붐과 댄스 스타일로 재취입

얼마 전 타계한 국내 1호 남성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던 한국 문화계의 마당발이었다. 일반대중과는 상관없는 장르로 여겨졌던 패션의 높은 벽을 허물고 대중화를 이룬 그의 업적은 평가할 만하다.

그의 패션쇼에 출연했던 윤복희, 패티김, 펄시스터즈, 김세환 등은 젊은 시절부터 멋쟁이로 소문난 가수들이다. 김추자 또한 무대에서 노래할 때마다 섹시한 의상과 탁월한 감각의 소품으로 코디를 해 대중적 관심을 한껏 이끌어냈던 가수다.

대중가요는 어느 시대건 대중의 정서와 관심을 담아내는 것은 기본이고 유행까지도 선도하는 막강한 파급력을 발휘해 왔다.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운명을 지닌 대중가수들이나 그들을 봐야 하는 대중에게 패션이나 의상은 공히 중요 관심사다.

사실 개체수가 엄청날 것 같은 패션이나 의상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사랑이나 이별을 소재한 노래에 비하면 그 숫자가 미미할 정도다. 하지만 시대마다 유행을 주도하며 주목받았던 노래들은 제법 된다.

우선 1961년 발표된 한명숙의 '노란 싸스의 사나이'는 전쟁으로 칙칙했던 당대 사회를 노란색으로 화사하게 채색하며 당대 남성들에게 노란 싸스 입기 유행을 이끌어냈다. 노란색으로 탄력을 받은 60년대 대중가요계는 이어 남일해의 '빨간 구두 아가씨'로 색채 열기를 더했다. 이번엔 모든 여성들이 경쟁적으로 빨간 구두를 착용하는 유행이 당대 사회를 뜨겁게 달궜다.

그리고 1966년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윤복희는 당대는 물론이고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미8군 가수를 거쳐 오랜 해외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그녀는 1집 음반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진을 재킷으로 사용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명동에서는 국내 최초로 미니스커트 패션쇼가 열렸고, 젊은 여성들은 경쟁하듯 치마 길이를 짧게 했다. 1968년 윤복희를 주연배우로 등장시킨 <미니 아가씨>란 영화까지 제작되었을 정도다.

7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는 체제 유지를 위해 통제가 심했다. 60년대에 각광받았던 미니스커트, 장발 등은 더 이상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유행이 아닌 퇴폐문화의 원흉으로 낙인 찍혔다. 그 결과, 길거리에서는 장발을 한 남성과 여성들의 치마길이를 자로 재며 단속하는 황당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70~80년대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 청바지가 대유행했고 지금도 젊음을 상징하는 의상으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세대 문화로 대변되는 90년대에도 대중가수들은 여전히 유행을 주도했다. 모자나 의상의 상표를 떼지 않고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말이 필요 없는 대표 주자였다.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나미도 인디언 헤어스타일을 대유행시켰다. 7살의 어린 나이에 미8군 무대를 통해 가수활동을 시작했던 나미는 매력적인 허스키 보컬의 가창력은 기본이고 곡마다 컨셉을 달리하는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춤, 그리고 독특한 무대 스테이지라는 토털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던 선구적인 여성 뮤지션이다. 여가수로는 최초로 랩과 디스코를 리믹스해 공전의 히트를 터트린 '인디언 인형처럼'은 사실 1989년에 발표한 그녀의 6집에 수록된 평범한 노래에 불과했다.

하지만 발표 후 홍보조차 하지 않은 이 노래에 조금씩 심상치 않은 반응이 감지되었다. 이에 평범한 노래를 DJ 붐붐형제와 함께 독특한 춤과 더불어 랩을 도입한 리믹스 댄스 스타일로 다시 편곡해 1년 뒤 재취입을 시도했다. 폭풍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특히 나미의 헤어스타일은 새로운 유행의 첨단을 선도했다.

서울시내 미용실에는 나미의 '인디언 추장머리 스타일'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줄을 섰고 인형가게에선 벌거벗은 모습으로 춤을 추는 검은 인디언 인형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청소년층에는 '나미 신드롬'까지 생성되었다. 당시 2주 연속 KBS 2TV 가요톱10 정상에 등극한 이 곡은 그해 최대 히트곡으로 등극하며 그녀를 최고의 여성 슈퍼스타로 군림시켰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