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 '쎄시봉 시대' 출간통기타 1세대 탄생 배경 등 전설의 '문화특구' 이야기 풀어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와 포크송. 지나간 7080문화는 최근 몇 년째 상한가를 기록하는 중이다. 1960년대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은 이제 70년대 대학문화의 대명사가 됐고 쎄시봉 멤버들의 콘서트는 연일 성황을 이룬다.

쎄시봉과 쎄시봉 멤버들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는 찰나, 그 맏형 격인 조영남 씨가 그 시절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냈다. 이름하며 <쎄시봉 시대>.

그 시절 낭만에 대하여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등 몇 권을 책을 낸 베스트셀러 저자인 조영남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는다.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김민기 등 쎄시봉이 배출한 가수들이 모이게 된 과정과 함께 이들이 함께 한 40년의 세월을 말이다.

당시 쎄시봉은 단순한 음악 감상실이 아니라 청춘들의 놀이터이자 공연장을 겸한 '문화특구'였다. '대학생의 밤', '신인가수 선발대회', '시인만세'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쎄시봉 군단이 탄생하고, 이들은 술과 밥과 노래를 나누며 우정을 쌓아간다.

수많은 LP레코드, 인기 DJ와 아마추어 가수들의 노래가 가득했던 음악다방들, 통기타 1세대 탄생 배경, 미8군 쇼단 이야기까지, 억압된 정치상황과는 대비되는 그 시절 대중음악사, 문화사가 펼쳐진다.

"쎄시봉 인기의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란 질문에 조영남 씨는 "디지털 시대가 잊어버렸던 아날로그 시대의 정서를 다시 회생시킨 결과가 아니겠나"라고 대답했다. 간담회 응원차 함께 온 윤형주 씨는 "형은 꼭 물가에 내 놓은 아이 같아 불안하다"며 대답을 거들었다.

"개인주의적이고 이해관계가 예민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저들(쎄시봉 멤버들)은 저렇게 나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충격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금 세대가 닮고 싶은 우정일겁니다."

당시 쎄시봉을 중심으로 한 음악문화가 오늘날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쎄시봉 음악의 가치를 논하려면 좋든 싫든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대중음악은 비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서양 음악을 먼저 노래했다는 점에서는 부끄러운 생각도 있다. 그러나 팝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쎄시봉 음악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 팝 음악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영어 가사를 그대로 부를 수 없어서 번안해서 불렀다. 그런 팝을 기초로 쎄시봉 멤버들이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한국의 비틀즈였다. 다를 바가 없다."

'세시봉 시대'낸 가수 조영남씨. 쎄시봉 멤버 윤형주(좌)씨와 김세환 씨(우)가 응원차 간담회에 왔다.
쎄시봉 때문에 요즘 통기타가 유행하고 있다.

"기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우리 딸이 기타 학원을 다닌다. 이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리 의욕 있는 친구가 아닌데 기타를 배운다고 메고 다닌다."

책에 조영남(6장), 이장희(7장), 윤형주(8장) 등 쎄시봉 멤버들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되어 있다. 그중 배우 윤여정(12장)에 대한 내용도 있다. 방송에서 윤여정 씨를 언급하는 것과 책에서 언급하는 것이 의미가 다를 것 같다. 현재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책을 쓰면서 제일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윤여정이었다. 윤여정을 처음 만난 장소가 쎄시봉이다. 윤여정이 여자로서 쎄시봉 남자 멤버들 사이에 맹활약한 친구였는데 나하고 제일 가깝게 지낸 시간을 책에 넣지 않으면 쎄시봉 이야기가 성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이었다. 그런데 외려 주위에선 윤여정 사진을 넣지 그랬냐고도 했다. 미리 겁먹고 사진을 안 넣었는데 재판 때는 넣을까 고민이다.(웃음) 그 친구(윤여정)가 먼저 <무릎팍도사>와 영화 <여배우들>에서 내 얘기를 한 걸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젠 이 얘기를 언급해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그건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쎄시봉의 다른 여자 멤버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있다면 들어보고 싶고 없었다면 왜 없었는지 궁금하다.

"여자 멤버는 윤여정한테 물어보면 잘 알 것 같은데…. 몇 명 더 있었다. 근데 윤여정만 남았다. 최영희(가명)라고 당대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둘이 균형을 잘 맞췄다."

레전드의 소환, 그들이 왔다

책의 말미에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쎄시봉 시대의 음악적 가치와 현재 열풍의 의미를 해석한 글을 덧붙였다. 그는 이 열풍을 '레전드의 소환'에 비유한다. 비틀스, 아바, 존 레논, 퀸이 새천년에 새롭게 부활해 새로운 세대와 교감했듯 우리의 레전드가 바로 이 쎄시봉의 멤버들이라고 말이다.

당시 쎄시봉 멤버들은 팝음악을 포크로 전향해서 불렀다. 당시에는 왜 모두가 포크 음악에만 꽂혔었나?

"나는 그때 음대 성악과 2학년 정도 됐고, 윤형주는 경희대 음대에 다녔다. 세환이도 대학생이었고. 다들 젊었기에 포크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중음악은 포크와 트로트 두 가지였다. 우리는 트로트하고 차별을 두자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청바지 문화의 산실이었고 이 문화가 포크 음악과 함께 청년문화를 대표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크음악에 매료되었다."

요즘 대중 음악계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나는 메시지 같은 걸 던질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얘기하자면 재수, 즉 운이 좋아야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우리는 재수가 좋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재수를 잘 타야 하고 있을 때를 기다려라. 조급해하지 마라."

독자에게 책을 통해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은가?

"쎄시봉을 드나든 이들이 음악만 한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걸러져서 나오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이 다양하고 여유가 있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 우리 역시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을 메시지로 전하고 싶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