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의 그린키퍼나집안 잔디를 관리하는 시골 어머니나 하는 일은 똑같다그들은 마당 뿐 아니라 밭 관리도 해야 한다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잔디 관리다. 잔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골프장의 격이 달라지기도 한다. 매년 '명인열전'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의 오거스타내셔널은 전세계 골프장 중 가장 잔디를 잘 관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골프장은 대회가 열리기 전 손님을 아예 받지 않고 코스 관리에만 열중한다. 주변 골프장에서 일하는 그린 키퍼들에게는 오거스타내셔널에서 잔디를 깎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다.

그린 키퍼는 골프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시골에도 수많은 그린 키퍼들이 있다. 시골에는 대부분 마당이 있고, 잔디를 깔아 놓은 곳이 많다. 우리 집 마당에도 몇 년 전 잔디를 깔았다. 일반적으로 골프장 페어웨이에 까는 한국형 잔디가 아닌 그보다 잎이 가늘고 고운 금잔디를 선택했다.

귀농을 하기 전에 시골집을 찾는 건 명절과 부모님 생신, 휴가 등 일 년에 불과 몇 차례에 불과했다. 그 때는 마당의 잔디는 그냥 저절로 자라는 줄 알고 있었다.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잔디가 촘촘히 자리를 잡으면 잡초를 따로 제거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관리라고 해봐야 고작 여름에 길게 자란 잔디를 한두 번 깎아주면 그만일 줄 착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골로 내려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머니는 일하는 틈틈이 잔디 사이에 자란 잡초를 뽑아주는 등 나름대로 관리하고 계셨다. 마당의 잔디는 그저 심으면 제 스스로 자라는 줄 알았지만 실은 골프장 못지않게 보살펴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안 것이다. 골프장 그린 키퍼나 집안 잔디를 관리하는 시골 어머니나 하는 일은 똑같다. 시골의 그린 키퍼들은 마당만이 아니라 밭 관리도 해야 한다.

요즘은 특히 풀이 왕성하게 자라는 시기다. 비라도 한 번 온 후에는 풀이 하루가 다르게 왕성하게 자란다. 잡초와의 전쟁인 셈이다. 예부터 농사를 잘 짓는 상농(上農)은 풀을 보지 않고 김을 매며, 중농(中農)은 풀을 보고 비로소 김매기를 하고, 농사를 대충 짓는 하농(下農)은 풀을 보고도 김매기를 하지 않는다 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아시던 분의 얘기가 문득 생각난다. 주말에 친구들과 라운드를 갔는데 그곳에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어머니는 골프를 즐기러 골프장을 찾은 게 아니라 잡초를 뽑고 계셨다. 당황해 하는 아들과 친구들을 향해 어머니는 "얼른 골프나 쳐라"고 했단다.

골프장도 제때 잔디를 깎아주고 잡초를 제거해야 골퍼들이 플레이를 제대로 할 수 있다. 골프장 그린 키퍼가 하는 일이다. 시골의 그린 키퍼에게는 잔디 깔린 마당과 농작물이 자라는 밭이 그린인 셈이다. 그들 모두는 오늘도 어디에선가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김세영 귀농한 전직 골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