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목을 초대전 '웃어요!''웃음' 통해 다양한 인간사 표현… "혹독한 시련, 하늘이 준 보약"관객에 희망의 메시지 전달… 14일까지 장은선갤러리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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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인사동 장은선갤러리에서 만난 이목을(53) 작가는 진한 선글라스에 예의 인상좋은 미소를 지었다.

늦은 오후인데다 실내여서 그의 선글라스는 독특한 취향으로 여겨졌다. 대화 내내 그는 선글라스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잃어가는 시력 때문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헤어질 무렵 그는 명함을 두고 왔다면서 대신 작은 손바닥 크기의 흰종이에 붓펜으로 무언가 그려 '이목일'이란 이름을 넣어 건넸다.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한 웃는 모습(스마일)은 저절로 미소를 띠게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쯤 전시를 하려고 해요. 웃는 얼굴들로."

두달여만인 4일 장은선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연 는 이전보다 더 밝아 보였다. '웃어요!'라는 전시 타이틀에 걸맞게 작품도, 작가도 한가득 '웃음'이 만발했다. 갤러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갔다.

이목을 작가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의 웃음은 그 이면의 극한 고통과 아픔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작가는 심각한 시력상실증을 앓고 있다. 중학교 때 한 쪽 눈이 실명됐고, 그후 나머지 눈마저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화가에게 눈은 생명이다. 눈의 직관에 따라, 이미지가 떠오르고 심상이 형성되고 작품으로 완성된다. 눈은 작가가 세상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출발점이다. 그런 눈이 생래적 기능을 잃어가는 것은 작가의 수명을 다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 작가는 세상에, 그가 처한 현실에 너그럽고 관조적이다. 그는 '씩씩하게 털털하게 세상 속으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활짝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한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은 오롯이 작품에 담겨 있다.

그의 삶을 엮어낸 '스마일'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을 대하는 데 동행하게 한다. 시력을 잃어가는 고통과 방황을 이겨낸 작품들은 관객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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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스마일'은 보편적인 우리의 삶을 '만인의 얼굴'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영락없는 우리들 삶의 다양한 모습이다.

일찍이 작가는 극사실주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의 인간사를 그림 속에 반영했다. 목판 위 대추, 사과 등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은 '이목을'이란 작가를 세상에 알렸고, 그만의 독창성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대추와 사과는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의 과일이기 전에 고유한 형태와 물성을 지닌 물상이다. 작가는 그 형태를 재현하는 사실주의 조형개념에서 벗어나 형태 속에 담긴 물질로서의 속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온전한 형태만이 아닌 비뚤어지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썩은 상태일지라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이를 "무상한 존재로서의 유기물이 지닌 한시성을 주목해 다양한 모습의 인간사를 그림 속에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따르면 과일 하나하나는 그 고유의 형태와 함께 의인화된 셈이다. 그러한 과일은 작가의 인생관과 삶의 철학을 은유하는 존재다.

작가는 극사실주의의 심연에서 시력상실을 겪으면서 '스마일' 이란 새로운 조형세계를 열었다. 그는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하늘이 준 보약"이라 여기고 "그냥 웃어 버리자"며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씩씩하고 털털한 그의 삶에 대한 자세는 세상과 소통하는 원천이다.

'만인의 웃음'을 표현한 이번 '스마일'전은 인생을 긍정하며 세상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려는 작가의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삶의 여유와 웃음까지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웃음의 미학을 전해줄 신작 100여점은 9월 14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02)730-3533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