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 연기한 후 '떡 실신' 감정의 끝을 보여준 새로운 도전'연기 9단' 김갑수 선배와 호흡… 섬세함과 폭발력 대단 감정 몰입에 큰 도움돼
하지만 이는 숲은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격이다. 손예진은 충무로에서 가장 연기 잘하는 여배우로 정평 나 있다. 그의 외모에 기댄 작품은 교복을 입고 등장했던 2003년작 '클래식'이 끝이었다. 이후에는 스릴러, 코믹, 호러, 격정 멜로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외모가 아닌 연기로 승부했다. 개봉을 앞둔 영화 '공범'(감독 국동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아빠가 유괴살인사건 용의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는 주인공 다은 역을 맡은 손예진은 오열과 실신을 거듭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배우는 연기를 잘 할 때 가장 멋지고 예뻐 보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손예진은 절세가인이다.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촬영 초반에 특히 심했다. 잠도 안 오고 우울해서 밥도 안 먹히더라.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 보니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괜히 이 영화를 선택했나 싶기도 했다. 너무 몰입하며 힘들어하니까 감독님이 '대본을 보지 말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오열 연기를 한 후 실신했다고.
▲감정의 끝을 보여준다는 것은 여배우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못생기게 보일 테니, 하하. 촬영 장면을 모니터하면서 '저런 표정은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 괜찮다. 개인적으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내는 작업이 즐겁다. 난 항상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편이다.
▲딸이 아빠를 이렇게 처절하게 의심할 수 있을까.
=어릴 적부터 엄마 없이 둘이 살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더욱 각별한 부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의심이 더욱 가혹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잔인한 의심이다. 극 중 다은이가 기자 지망생으로 설정된 것도 사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그의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적절한 장치가 됐다.
▲김갑수라는 '연기 9단'과의 연기 맞대결이 부담스럽진 않았나.
=김갑수 선배님은 촬영장에서 편하게 있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면 180도 달라진다. 그야말로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감정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선배님과는 과거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부녀로 나온 적이 있다. 당시에는 행복한 부녀여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범'에서는 다은의 감정을 잡기 위해 평소에도 선배님에게 다가가지 않게 되더라.
▲두 사람의 연기를 비교해달라.
=사실 난 1차원적인 연기였다. 계속 의심을 하는 캐릭터니까. 하지만 김갑수 선배님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실제 범인일지 아닐지 분간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연기의 섬세함과 폭발력을 동시에 요했다. 손동작과 작은 눈빛 하나까지 철저한 계산에 의해 연기하시더라. 촬영장에서 존재 만으로도 김갑수 선배님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사실 손예진 역시 메소드 연기의 대가 아닌가.
=나는 결코 다은이 될 수 없었다. 살인 용의자인 아빠를 의심하는 다은의 감정은 결국 실제로 경험해볼 수도 없는 것이고, 너무 세서 메소드 연기로 체득할 수 없었다. 다은이 되기보다는 다은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연기했다.
▲'톱스타' '배우는 배우다' 등 한국 영화와 개봉 시기가 맞물렸다. 흥행에 대한 기대는 어떤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사실 흥행은 관객의 몫이다. 이미 내 손을 벗어난 거 아닌가. 대진운도 중요하지만 영화 자체가 좋으면 관객들이 충분히 선택해줄 거라 믿는다. 그만큼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차기작은 해적의 이야기를 한다고.
=지금 촬영 중이다.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서 해적 여월 역을 맡았다.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이라고 할까?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욕심나는 캐릭터였다. 그 동안 심리적으로 힘든 연기를 많이 해왔는데 액션 연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와이어를 타고 12번 정도 재촬영을 하니 힘이 쪽 빠졌다. 역시 쉬운 연기는 없다.(웃음)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