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pop 10년10년 전 대한해협 건넌 동방신기 일본서 '한류 시장' 개척소녀시대·빅뱅·슈퍼주니어·카라 등 K-pop 세계로 뻗어나가싸이 '강남스타일' 지구촌 열광…수조원 한류 경제 효과

동방신기
벌써 10년이다. 2003년 SBS '보아&브리트니 스페셜'에 처음 얼굴을 비쳤던 가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라 감미롭게 노래하던 풋풋한 소년들은 이제 건장한 청년이 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로서 또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가는 곳이 곧 한류였고 K-팝은 와 함께 흥망성쇠를 거쳐 지금까지 왔다.

최근 K-팝의 흐름은 어느 한 팀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가 개척한 한류 시장에 , , , 카라, 비스트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활약하며 꽃을 피우고 있다. 이른바 한류 르네상스가 문을 연 가운데 10년 간 이어진 의 발자취는 K-팝 성장에 크게 일조했다. 이들이 걸었던 길을 신인 그룹인 엑소와 위너가 걷는다. K-팝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K-팝, 싹트다 / 잠복기

한류의 시초는 드라마다. KBS2 드라마 '겨울연가'(2002)는 2004년 일본서 방송되며 신드롬을 낳았다. 이후 MBC '대장금', SBS '천국의 계단' 등이 사랑받았고 주연배우 배용준 최지우 이영애 권상우 등은 일본서 톱스타로 떠올랐다. 한류가 조금씩 꿈틀거리는 가운데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일본 시장에 도전했던 보아 역시 주목 받기 시작했다. 는 선배 가수인 보아의 성공사례를 참고 했고 철저한 현지화를 콘셉트로 삼았다. 2005년 는 한국의 스타가 아닌 신인가수로서 일본 음악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만 해도 K-팝에 대한 인지도는 낮았다. 보아의 활약이 이어지고 한류스타들이 대규모 팬미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국내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별개였다. 대한해협을 건넌 는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한국에서 받았던 팬들의 열광은 사라졌고 신인가수로서 다시 훈련 받아야 했다. 의 일본 진출에 대해 국내 반응 역시 미지근했다. "한국서 이제 갓 피어난 아이돌 그룹을 무리해서 일본에 데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만큼 활동 초기 거둔 수확은 적었다. 일본 데뷔 쇼케이스 역시 성공적이었던 국내와 비교하면 초라했다.

소녀시대
▲ 인정 받은 가능성 / 성장기

2007년은 와신상담하던 K-팝이 가능성을 확인한 해였다. 는 일본서 성공한 가수의 척도라 불리는 부도칸에 처음으로 올랐다. 일본서도 웬만한 가수들은 오르지 못하는 꿈의 무대에 불과 2년 만에 섰다. 탄력 받은 인기는 멈추지 않았고 같은 해 8월 발매된 일본 12번째 싱글 '썸머드림'은 발매 당일 오리콘 데일리 싱글 차트 1위에 등극했다. 의 오리콘 첫 정상이었다. 이어 2008년과 2009년 일본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홍백가합전'에 연이어 출연했다. 한국 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쿄돔 무대에도 올랐다.

한국가수가 도쿄돔에 성공적으로 오르자 K-팝에 대한 일본 현지인식이 달라졌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수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돌 가수의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 , 샤이니, , 2PM 등이 각광받은 것도 이때. 한국 드라마는 여전히 일본서 인기 있었고 K-팝이 바람을 더했다. 한류가 열도를 뒤덮기 시작했고 한인들이 모여 사는 도쿄 신오쿠보에는 한국 문화를 접하기 위한 일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국 음반시장 역시 변화를 맞았다. 기존 아날로그 음반 대신 디지털 음원이 각광받았다. 불법 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리고 가요계에 불황이 불어 닥쳤지만 아이돌 가수라는 새로운 활력소를 찾았다. 또 한국과 할리우드 등을 오가며 활동한 가수 비(본명 정지훈)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중 한사람으로 선정되는 희소식도 건너왔다. 가수들의 연 변신이 급물살을 맞기 시작하며 복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위기를 기회로 / 도약기

빅뱅
2009년 7월 31일, 한국 가요계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난다. 멤버 김재중, 박유천, 김준수(이하JYJ)가 원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한 것. 같은 해 10월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그룹은 둘로 쪼개졌다. 둘 사이의 갈등은 2012년 11월, SM엔터테인먼트와 JYJ가 합의 형식으로 소송을 종결할 때까지 이어졌다. 전무후무한 이 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역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가 양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SM과 JYJ의 법정공방은 양쪽에게 상처를 줬지만 긍정적 효과도 있다. 그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인권이 부각되고 2011년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인 표준전속계약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소속사와 아이돌 가수 간에 합리적인 시스템이 완성됐고 한류는 두 번째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가 잠시 주춤한 가운데 한국 아이돌 그룹들은 일본 진출을 서둘렀다. "한국가수도 일본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 된 만큼 주저할 것이 없었다. SM, YG, JYP, DSP 등 대형 기획사들을 중심으로한 K-팝은 를 롤모델로 속속 일본서 데뷔했다.

남성 아이돌로는 와 의 활약이 빛났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규현, 이특, 희철, 한경, 예성, 강인, 신동, 성민, 은혁, 동해, 시원, 려욱, 기범)는 2005년 중국인 멤버를 포함해 범아시아권 석권을 목표로 데뷔했다. 이후 2009년 발표한 정규 3집 '쏘리 쏘리'가 인기를 끌며 새로운 대세로 떠올랐다.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아이콘인 (지드래곤, 탑, 태양, 대성, 승리)도 일본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들은 2009년 일본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증명했다.

K-팝은 파이를 키워나갔고 남성 아이돌뿐만 아니라 카라, 등 여성 아이돌도 주목 받았다. 2010년 홍백가합전에 를 비롯해 , 카라가 출연한 것은 다양한 아티스트가 일본서 사랑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카라는 '미스터'의 핵심 안무인 엉덩이 춤이 한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며 대표 한류 여성 아이돌로 등극했다.

슈퍼주니어
▲ K-팝, 경제효과는? / 중흥기

한류를 통한 경제효과에 대한 연구도 속속 진행됐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측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2010년 들어 한류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가 전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으며 생산유발 효과 1조 9,192억 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한류의 취업유발 효과는 5만 1,545명에 달한다. 문체부는 "K-팝이 동력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또 삼성경제연구소는 2011년 10대 히트상품 중 하나로 K-팝을 꼽았다.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에 국한 됐던 영향력이 아시아 전역, 그리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K-팝 스타들과 손잡았고, 이는 제품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올 7월, "한류스타들의 활약으로 유럽 내 한류 경제효과가 6,656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유럽의 자유무역협정(FTA)의 3,921억 원보다 두 배 가량 많다. 브랜드 가치는 4.4%나 상승했다.

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문체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2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2008년 689만 명과 비교해 75%나 증가한 수치다. 관광수입 역시 97억 불(08)에서 42% 늘어난 138억 불을 기록할 전망이다.

▲ 아시아 넘어 세계로 / 제2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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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과 2013년은 한류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한국에서 출발한 K-팝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뿌리를 내렸다. 가수 의 '강남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유튜브를 통해 시작된 인기는 곧 신드롬으로 발전했다. 전 세계인들이 그의 말춤을 따라 했다. 2013년 새해 타임스퀘어 광장에 가 등장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유튜브와 SNS 등 발달된 인터넷이 확산을 도왔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현재 18억 뷰를 넘어섰다. 사상 처음으로 10억 뷰를 넘어섰던 이 곡은 현재도 꾸준한 인기몰이 중이다. SNS에는 한국 아이돌 스타들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가며 K-팝의 글로벌화를 견인했다.

한국 가수들은 세계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는 'I Got A Boy'로 미국서 진행된 유튜브 뮤직어워드 올해의 뮤직비디오 상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의 미국 시장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 등이 소속된 YG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은 미국 힙합가수 스눕독, 블랙아이드피스의 윌 아이엠, 저스틴 비버 등과 교류하며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키웠다. 또 보이프렌드, B1A4 등 신인 가수들도 일본서 주목 받았다.

원조 한류스타인 의 행보도 멈추지 않았다. 는 2012년 9월 정규 6집 '캐치미'를 발매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2013년 8월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 스타디움서 K-팝 사상 최고 스케일의 콘서트를 열며 최고임을 입증했다. JYJ 역시 활동 기지개를 켰다. 남미 투어를 통해 글로벌스타로서 위상을 높이고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등 활동 다각화를 노렸다. 2013년 4월에는 3년 만에 다시 도쿄돔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4년은 앞으로 10년 간 K-팝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남스타일' '젠틀맨'을 연달아 히트시킨 는 신보 제작에 들어갔고 가장 먼저 월드스타 대열에 선 비는 군복무를 끝내고 컴백했다. 가장 큰 시장인 북미에서 성공가능성을 엿봤던 역시 돌아온다. 최근 정치적인 이유로 K-팝 열풍이 한풀 꺾였다 하나 영향력은 절대적이며 중국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2NE1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도 K-팝의 미래를 밝게 한다. 2013년 가장 핫한 그룹이었던 SM 엔터테인먼트의 엑소와 YG의 위너는 앞으로의 10년을 책임질 자산들이다. 박진영 사단인 JYP 역시 새로운 아이돌 그룹 탄생을 예고했다.


싸이

이정현기자 seiji@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