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사·방송사 책임, 출연료 등 얽혀

KBS 2TV 수목미니시리즈 '감격시대'(극본 박계옥ㆍ연출 김정규)가 출연료-제작비 미지급 문제로 시끄럽다. 보조 출연자들이 출연료를 제 때 받지 못해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촬영 조명 음향 스태프마저 같은 이유로 들고 일어나 17일 잠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비단 '감격시대'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가 각 회원사로 보낸 드라마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된 자료에 따르면 총 체납금은 29억 7,662만 원이었다. 방송사 별로 보면 KBS는 '그들이 사는 세상'(6억 7,927만원) '도망자 플랜비'(4억6,130만원) 등 7편이었고 MBC는 '돌아온 일지매'(2억 7,320만원)을 비롯해 '7급 공무원' '불의 여신 정이' 등 14편이었다. SBS 역시 지난해 김종학 PD의 자살 사건으로 이어진 '신의'의 미지급액이 6억원이 넘었고 이 외에도 '대풍수' '장옥정' 등의 출연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다.

▲ 누구의 잘못인가?

출연료를 제 때 주지 못하는 1차적인 잘못은 외주 제작사에 있다. 방송사의 편성을 받는 외주 제작사가 각 배우들이 속한 매니지먼트사와 직접 계약을 맺기 때문에 지급 책임을 진다. 출연료는 통상 계약시 일부를 지급하고, 방송 중 중도금을 주며 종방된 후 나머지 차액을 지급한다. 물론 계약 조건에 따라 지급 방식 역시 달라지지만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하기 위해 드라마 종방까지 전액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는 드라마가 적자를 보면서 발생한다. 기획 단계에서는 매출 구조를 맞추고 시작하지만 제작비가 오버되고 제작지원 및 간접광고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제작사가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감격시대'의 경우 미지급 사태가 불거지자 "배우들에게 선지급을 한 금액이 있다"고 말했다. 몇몇 주연 배우들이 50%의 출연료를 미리 받는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격시대'는 이미 중반을 넘어섰고, 제작비 수급이 원활하지 않자 미지급 사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방송사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막기 위해 재정이 탄탄한 외주사에 제작을 맡기는 것은 방송사의 의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방송사가 "제 때 약속된 제작비를 지급했다"고 말하지만 드라마 편당 제작비 중 방송사가 부담하는 비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주사는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하게 간접광고를 끌어오고 해외 판매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한 외주사 대표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낮으면 간접광고나 제작지원이 뚝 끊긴다. 연기력이 부족하지만 아이돌 출신 한류스타를 기용하는 것 역시 해외 판권 때문이다. 스타들의 개런티는 천정부지 솟고 있는데 방송사가 주는 제작비는 한계가 있다. 이러니 중간에 낀 외주 제작사들만 죽을 맛이다"고 토로했다.

▲ 촬영 중단,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KBS는 '감격시대' 이전에 2012년 12월에도 출연료 미지급 논란으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과 갈등을 겪었고, 당시 인기리에 방송 중이던 '내 딸 서영이' 측이 한 차례 촬영이 중단됐다. 이 외에도 MBC '이산', SBS '대풍수' 등이 촬영 중단 논란을 겪었다.

촬영을 멈추면 방송사의 발등에도 불똥이 떨어진다. 생방송 수준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현 세태 속에 '촬영 중단=방송 펑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출연진의 책임을 운운하며 촬영 중단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속좁은 생각이다.

출연료는 회사원으로 따지자면 월급이다. 월급이 체납되고 있는데 멀쩡히 일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몇몇 대중은 '스타들이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수의 스타를 제외하고 드라마 촬영 현장에 있는 배우와 스태프는 생계를 위해 연기하고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이다.

또 다른 외주사 관계자는 "스타들의 경우 힘이 센 매니지먼트사가 문제를 제기하며 출연료를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조ㆍ단역을 비롯해 보조 출연자들은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이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정당한 품삯을 달라고 주장하고, 어쩔 수 없이 촬영을 거부하는데 책임부터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고"고 말했다.

▲ 미지급 사태 해결, 방법은 없나?

현재 방송 중인 지상파 주중 미니시리즈의 편당 제작비는 4억 원 안팎이다. 이 중 몇몇 배우와 스타 작가의 개런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 때 연출료 상한가 제도를 마련해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지금도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회당 1억 원 안팎의 개런티를 챙긴다. 여기에 작가료와 몇몇 주연배우들의 출연료를 더하면 회당 출연료의 절반 이상을 소진한다. 나머지 금액으로 빠듯하게 드라마를 만드니 퀄리티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시청률은 바닥을 긴다. 스타가 출연함에도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신생 드라마 제작사는 난립하고 있다. 인기를 끌면 '한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다. 제작 능력이나 자금이 부족함에도 친분이나 스타 마케팅을 통해 일단 방송사 편성을 따낸 후 무리하게 제작을 추진하다 미지급 사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SBS 드라마국 관계자는 "방송사가 일일이 제작사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긴 어렵다. 때문에 건실한 곳이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도록 현재의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방송사 내부적으로도 제작사를 관리하는 보다 명확한 시스템 구축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안진용기자 realy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