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아버지에 벗어나고자 영화계로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배우 1918년 7월 14일 스웨덴 , 웁살라 태생 2007년 7월 30일 스웨덴 고트랜드 이안 파로 사망. 향년 89세

10대 시절부터 연극,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로부터 가해졌던 혹독한 벌칙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욕망이 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어린 시절 집안의 규칙을 어겼을 경우 부모로부터 엄한 체벌을 받거나 붉은 스커트를 입어야 하는 징계를 받았다고. 19살 때 부친과 서로 주먹다짐을 벌인 뒤 앙숙 관계로 지내다 1966년 모친이 사망한 이후에야 극적 화해를 이뤘다고 한다. 변호사 프레드릭. 세대 차이 나는 어린 아내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가치관 차이로 갈등을 일으킬 때마다 과거 연인 데지레를 찾는다. 데지레 집에서 그녀의 연인 말콤 백작과 어색한 만남을 가진 이후 사랑의 쟁취를 위해 룰렛 게임을 시도한다는 <한 여름 밤의 미소>(1955)가 칸 황금종려상 후보에 지명받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흑사병이 유럽을 초토화시키던 14세기. 신의 존재와 구원의 의미를 찾겠다는 기사의 여정을 다룬 <7의 봉인>(1957), 50여년 동안 의사 생활을 해온 이삭 보리 교수가 명예 학위를 받기로 한 날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꿈을 꾼다. 이후 교수는 꿈과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는 <산딸기>(1957) 등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예술 감독으로 부각된다. 1960-70년대 들어 발표된 <페르소나>(1966), <외침과 속삭임>(1972), <결혼의 풍경>(1973) 등은 관객들로부터는 난해하다는 거부 반응을 받았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호평을 받는다.

19세기 남성 주도의 유럽 사회적 구조 풍조에 따라 여성들이 온갖 희생을 강요당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4명의 여성 사연을 펼쳐주고 있는 <외침과 속삭임>.

1976년 탈세 혐의를 받아 정부 당국과 마찰을 야기한 이후 독일 뮌헨으로 이주해 거주한다. 1982년 목사 가족에게 핍박당하는 화니와 알렉산더의 일화를 다룬 <화니와 알렉산더>를 발표하면서 고국 활동을 재개한다. 촬영 현장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스태프 및 연기자들을 향해 의자를 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다반사로 자행해 악명을 떨친다. <페르소나>(1966), <외침과 속삭임>(1972), <결혼의 풍경>(1973), <가을 소나타>(1978), <결혼의 풍경>(1973), <사라방드>(2003) 등에 캐스팅되면서 감독의 뮤즈로 각광받았던 노르웨이 출신 여배우 리브 울만은 동거 생활 중 분노 조절장애를 갖고 있던 감독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폭력적 위협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동거 상태였던 리브 울만을 제외하고 합법적인 결혼 생활을 했던 여인은 무려 5명. 감독은 ‘난 너와 결혼할 생각은 없어 단지 섹스만 하고 싶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그와 흔쾌히 성적 노예의 대상을 자처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발정난 개’라는 쑤군거림을 보낸다.

이런 돌출 행동과 성인이 되어 변태 섹스에 탐닉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영상을 만들어 내는 원인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혹독한 체벌에 대한 정신적 후유증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또, 10살 때 병원 영안실에 갇혀 시신들의 상태를 목격한다. 이같은 기행적 경험은 그가 영화 속에서 ‘죽음’ ‘유령’ 등 음울하고 어두운 존재를 자주 묘사하는 근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베르히만의 영화에는 얼굴 부분 및 시계 추를 클로즈업 하거나 긴박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장면이 자주 보이며 ‘종교적 주제‘, 90분 내외의 러닝 타임, ‘야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등장 인물 등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고독, 종교적 억압, 혼령, 죽음 등을 단골로 설정한 영화 스타일은 비평가들로부터 ‘베르히만네스’라고 명명된다. <처녀의 샘>(1960), <어두운 유리를 통해>(1961), <화니와 알렉산더>(1982) 등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여받는다. 1938년 독일에 교환 학생으로 잠시 체류하면서 히틀러의 정치적 신념에 푹빠져 열성적 나치당원으로 활동한 전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유대인혐오증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다녔다. 형 다그도 스웨덴 나치당 창립 당원 중 한명이었다.

리브 울만과 사이에 출생한 사생아 린 울만은 1999년 <그녀가 잠들기 전에>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한 뒤 비평가로도 명성을 얻는다. 아들 다니엘 베르히만도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맷 베르히만은 스웨덴 로열 극단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이경기(영화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감독 명언^명대사

연극이 충직한 아내라면 영화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자극을 던져 주는 정부(情婦)와 같다.

대본(시나리오)을 쓰는 것은 이미지에 힘줄을 새기는 동시에 해골에 신선한 육체를 붙여 놓는 과정이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