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모든 이가 바라는 ‘진정한 선배’의 아우라가 물씬 느껴졌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제작 ㈜영화사 심플렉스)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따뜻하면서 유머가 넘쳤고 소탈하면서 연기파 배우다운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존경할 만한 선배의 모습이었다.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은 역사 속에 실존하는 세조를 둘러싼 미담을 소재로 여기에 발칙한 상상력을 더해 만든 팩션 코미디. 조선 시대 미디어의 역할을 담당했던 광대들이 권력의 실세 한명회에 발탁되어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에 대한 미담을 만들어내면서 벌어지는 소동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는 광대들을 고용해 역사를 바꾸려는 한명회 역을 맡아 특유의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에 이어 최근 방송 중인 드라마 ‘저스티스’에서도 악역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선한 이미지로의 복귀를 강력히 피력했다.

“선한 역할을 주로 할 때는 연기자로서 변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나 악역 연기를 잇달아 하다 보니 선한 역할이 얼마나 마음이 편한 건지 알겠어요. 악역은 처음에는 배우로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지치네요. 특히 요즘 촬영하는 ‘저스티스’는 대본이 진짜 재미있지만 수위가 갈수록 세지니 벅차더라고요. 다음 작품은 정말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웃음)” 가 ‘광대들: 풍문조작단’을 선택한 건 한명회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한명회는 대중들에게 칠삭둥이로 태어난 간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 캐스팅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해석한다. 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연기한 한명회 캐릭터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고 한명회 역할이 정말 욕심이 났어요. 한명회는 공부를 할수록 흥미가 더 생기는 캐릭터더라고요. 칠삭둥이 이미지가 컸는데 체구가 거구였고 사람을 아주 좋아하는 호방한 남자였어요. 간신이었다기보다 최고의 전략가였고 조력자였어요. 한명회의 내면을 좀더 탐구하는 영화가 나와도 재미있을 듯해요. 나를 시켜주지는 않겠지만.(폭소) 지난 해 여름 정말 더웠는데 한명회가 거구인 설정이어서 체구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옷을 더 입었어야 했어요. 또한 수염 때문에 매일 새벽에 나와 3시간 동안 분장을 받아야 했죠. 정말 더워 죽는 줄 알았어요.”

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후배들 덕분이다. 자유분방하면서 에너지가 넘치는 영화에 맞게 촬영 현장 분위기는 늘 뜨겁고 화기애애했다. 광대패의 우두머리 덕호 역을 연기한 조진웅은 10년 전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만나 친분을 유지하는 가장 아끼는 후배다. 조진웅에 대한 질문을 꺼내자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전 조진웅이란 배우의 연기가 참 좋아요. 남자다우면서도 깊이도 있고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 주연하는 영화 ‘사냥’과 드라마 ‘시그널’에 한두 장면 우정 출연했는데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우정도 깊어지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번 영화 촬영장에서는 제 밑으로 공신파, 조진웅 밑으로 광대파로 자연스럽게 나눠지게 되더라고요. 조진웅 밑으로는 일사불란하게 잘 뭉쳤는데 제 밑으로는 말을 도무지 잘 안 듣더라고요. 대선배 대우요? 없어요. 늘 술자리 안주 준비 제대로 안 해놨다고 야단맞았죠. 내가 몇 번 사면 자기네가 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가 그랬느냐면 박 모 배우라고 꼭 써주세요. (웃음) 촬영 끝나고 후배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고요.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어요.”

늘 열려 있고 모두에게 관대한 선배이지만 가 후배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원칙이 있다. 그건 ‘시간 약속 엄수’다. 약속을 늦는 걸 제일 싫어하는 그는 촬영이나 홍보활동이 있을 때는 현장 인근에 숙소를 잡고 제 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다. “시간은 곧 돈이에요. 52시간 촬영이 뿌리내리면서 시간 약속을 안 지키면 모두에게 엄청난 민폐가 되죠. 후배들과 연습할 때 시간 약속은 꼭 지켜달라고 당부해요. 저도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요. 요즘 촬영장에서 촬영 분위기가 무르익고 배우들의 감정이 극에 올라갔는데 약속된 시간이 지나면 모든 촬영을 접을 수밖에 없어요. 예전 제가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죠. 그러나 전 이런 추세가 맞는 일인 것 같아요.”

21일 개봉된 ‘광대들: 풍문조작단’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호불호가 나뉘고 있다. 참신한 소재와 아이디어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는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입체적인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낸 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전 만족스러워요. 영화를 두세번 봤는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시나리오가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는데 과한 것도 있지만 재미있게 그려졌더라고요. 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아주 기막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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