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미세먼지 하나 없는 까만 밤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연상됐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 제작 무비락, 정지우필름, 필름봉옥) 개봉 직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은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영화 속 음지에 살았던 외로운 소년 현우(정해인)에게 마음에 등불이 돼준 미수가 스크린 밖으로 외출을 나온 느낌이었다. 미수처럼 발랄하면서 소탈했고 진지하면서 유연했다.

알콩달콩하면서 애틋한 사랑을 연기한 덕분일까? 은 “원래 이렇게 예뻤나?”는 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미모가 절정에 올라 있었다. 예뻐진 비결을 묻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젖살이 빠졌어요”라고 쑥스러워하던 은 만연체의 찬사가 이어지자 민망한지 “눈살까지 빠졌다”고 농담을 건네며 어색한 상황을 수습했다. 유머감각도 넘쳤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이 방송을 시작한 첫날 우연히 만난 미수()와 현우(정해인)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사랑의 주파수를 맞춰 나가는 과정을 담은 정통 멜로물. 은 이번 영화에서 출세작이자 데뷔작 ‘은교’로 자신을 배우로 만들어준 정지우 감독과 7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감독님과 ‘은교’ 이후 주기적으로 만나고 연락을 하며 가깝게 지냈어요. 어느 날 시나리오를 하나 건네주셨는데 전 그냥 평소처럼 그냥 모니터해 달라는 건지 알았어요. 근데 책이 정말 좋았어요. 감독님과 만나 시나리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감독님이 직접 연출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더군다나 내가 출연해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지금 제 나이의 기운을 스크린에 담아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저도 그래서 이 역할을 정말 잘 그려내 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죠. ‘은교’ 때와 촬영장에서 달랐던 점은 제가 성장했다는 거예요. ‘은교’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감독님이 지도하는 대로 따라가기 급급했죠. 그러나 이번에는 제가 경험이 생겼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에 편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드라마 ‘도깨비’에서 잠깐 호흡을 맞춘 과 정해인은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요즘 말로 ‘꿀 케미’를 선보인다. 미수와 현우가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며 감정을 쌓아가고 꽁냥꽁냥 애정을 나누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행복감을 선사한다. 도 자신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했다. “전 미수가 실제 저보다 더 용감하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먼저 나서 감정을 표현하잖아요. 요즘 세대라고 모두 적극적이고 화끈하지는 않아요. 남녀가 감정을 나누기 시작하는 건 시대가 변해도 조심스러워요.(웃음) 두 사람의 첫 뽀뽀 장면을 연기할 때는 제 추억을 떠올렸어요. 사람의 입술이 제 입술에 처음 닿았던 그때 감정을 되살리려 노력했어요. 해인 오빠 덕분에 미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수월했어요. 오빠와 드라마 ‘도깨비’가 끝난 후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어요. 오빠가 수많은 작품을 하며 한 계단식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현우 역에 오빠가 캐스팅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유열의 음악앨범’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의 달콤쌉쌀한 연애에 대한 성별, 연령별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 눈길을 끈다. “연기를 하면서 미수가 현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적이 많아요. 첫 뽀뽀 때도 어쩌면 현우는 그냥 안아줄 생각만 했을 수도 있어요. 미수가 눈을 감아버리니 뽀뽀하게 된 거죠. 또 여자가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내니. 속상하더라고요.”(웃음)

마지막에도 뛰어서 자동차를 쫓아 온 현우에게 모진 말도 못하잖아요. 넘어질까 봐.(안타까운 한숨)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어떤 논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결말부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은데 미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연 적이 없어요. 현우가 가슴 밑바닥부터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들일 공간이 없죠. 우여곡절을 겪고 미수와 현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 전 좋았어요.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했으니 두 사람 이제 아주 잘 될 것 같아요.” 은 내년에 서른이 된다. 그러나 그에게 아홉수라는 건 없는 듯하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호평을 받으며 흥행에 청신호 켜져 있고 홍보활동이 끝난 후에는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대작 ‘영웅’과 김은숙 작가와 재회하는 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자’ 촬영이 기다리고 있다. 또래의 배우들이 부러워할 만한 행보다. “서른이 된다는 것 전혀 실감이 안 나요. 그래서 부담도 안 돼요. 9월부터 ‘영웅’ 촬영이 들어가는데 정말 큰 일 났어요. 노래가 난이도가 이제까지 방송에서 불렀던 수준이 아니에요. 또한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굉장히 능숙하게 해야 해요. ‘더 킹: 영원한 군주’는 ‘영웅’부터 잘 끝내놓고 생각할래요. 힘들지 않냐고요? 제 인생 모토는 후회하지 말자예요. 힘들면 어쩔 거예요? 내가 맡은 일이니 잘 해내야죠. (웃음)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전 다작을 하고 싶어요. 작품마다 조금씩 성장해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 제공=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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