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옥자연

눈에 확 띄는 새 얼굴이지만 오랜 경력을 지닌 베테랑만큼 안정감이 든다. 영화 ‘속물들’(감독 신아가, 이상철, 제공 ㈜주피터필름, 제작 영화사 고래) 개봉 직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포츠한국> 편집국을 방문한 은 우월한 기럭지와 시원시원 이목구비에 명문대 출신다운 지성미가 빚어내는 아우라가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녀’였다. 여기에 탄탄한 연기력까지 갖춰 화제작에 잇달아 캐스팅되는 걸 보면 곧 ‘옥자연의 전성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감케 했다.

영화 ‘속물들’은 동료작가의 작품을 베끼다시피 한 작품을 ‘차용미술’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팔아먹는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을 중심으로 각자의 속마음을 숨긴, 뻔뻔하고 이기적인 네 남녀의 속물 같은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 옥자연은 고교 동창 선우정의 삶에 갑자기 끼어들어 분란을 일으키는 베일에 싸인 인물 탁소영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안하무인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처가 많은 탁소영의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옥자연은 탁소영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들려주었다. “제가 주연한 단편 영화를 본 감독님이 연락을 주셔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게 됐어요. 전 처음부터 소영의 가슴 속 상처가 느껴져 안쓰럽고 연민이 가더라고요. 감독님과 첫 미팅 때 일부러 머리를 사자 머리로 하고 갔어요. 제가 생각한 소영은 그런 헤어스타일을 할 것만 같았어요. 소영은 속물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때문에 자신을 망가뜨려가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죠. 재능은 다방면으로 많은데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런 자괴감에 술 마시고 약을 하며 자신을 파괴해가는 모습이 마음이 아팠어요.”

옥자연이 연기한 탁소영은 주위에서 아무리 욕을 먹어도 늘 당당하던 ‘강심장’ 선우정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인물. 서로 친구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절대 아닌 것 같은 탁소영과 선우정의 기묘한 우정은 궁금증을 계속 고조시키면서 긴장감을 배가한다. 옥자연은 유다인과 폭발적인 케미스트리를 발산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킨다. “언니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어요. 언니랑 전 연기의 결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저예산 영화여서 촬영이 정신 없이 진행돼 누구를 배려할 여유가 없는 현장이었어요. 언니는 정말 모든 장면에 등장해 저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언니가 힘든 내색 전혀 하지 않고 옆에서 우뚝 서서 저를 이끌어주니 제가 마음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전 소영이 우정을 친구로서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약간 깔보면서 좋아하니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소영의 비애죠. 소영의 그런 면을 연기하면서 담고 싶었는데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은 듯해 아쉬워요.”

탁소영은 지극히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 아무런 필터링이 없이 생각이 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아무리 친구의 애인이어도 흥미가 느껴지면 유혹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옥자연은 본인의 성격과 정반대인 탁소영을 연기하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제 성격은 사실 차분하고 정적인 편이에요. 저와 정말 많이 달라서 소영 역을 더 맡고 싶었어요. 술 먹다가 남자들과 싸우는 장면은 왠지 대리만족감이 느껴지면서 통쾌하더라고요.(웃음) 연기가 아니면 절대 못해 보는 일들이어서 후련한 감정이 느껴졌어요. 영화를 보시고 제 실제 성격을 많이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감성적인 면이 늘어나더라고요. 이젠 이성 반, 감성 반 정도인 듯해요.”

옥자연은 19일 개봉된 블록버스터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 제작 덱스터픽쳐스)에도 하정우가 연기한 조인창 대위의 부하 민 중사 역으로 등장해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다. ‘속물들’의 탁소영과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 넘치는 여전사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낸다. 옥자연은 하정우, 이병헌 등 대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했다고. “매일 촬영장에 가는 아침마다 가슴이 설레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인 선배님들의 연기를 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게 짜릿한 흥분을 주더라고요. 제가 연기한 민 중사는 맡은 일은 어떻게든 끝까지 수행하는 진정한 군인이죠. 그런 사명감이 정말 멋지게 느껴졌어요. 함께 출연한 오빠들은 총소리가 너무 커 총 쏘는 연기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전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체질인가 봐요.”(웃음)

옥자연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후 스물여섯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연극무대에서 4년간 실력을 쌓은 후 스물아홉부터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현재 김은숙 작가의 신작 ‘더 킹: 영원한 군주’에 주요 캐릭터로 캐스팅돼 촬영 중이고 여러 작품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연극무대에 곧장 뛰어들었어요. 빨리 실전에 뛰어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길거리 벽보를 붙이고 무대 뒤에서 조연출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다행히 좋은 기회들이 많아 4년 동안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를 수 있었어요. 29살 때 처음 매체 연기를 시작했는데 작은 역할들이지만 좋은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밀정’에서 송강호 선배님과 반나절 함께 촬영했지만 그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어요.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선배님과 제대로 오래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최재욱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이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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