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ㆍ악역 없는 따뜻한 이야기에 매료

‘슬기로운 의사생활’.

막장 없이도 인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따뜻한 정서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첫 방송된 tvN 2020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연출 신원호, 극본 이우정, 기획 tvN, 제작 에그이즈커밍)이 첫 방송부터 5회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 5회 만에 평균 시청률 11.3%, 최고 12.8%까지 오르며 두 자릿수를 돌파,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하 유료플랫폼 전국기준/닐슨코리아 기준) 이는 신원호PD의 전작인 ‘슬기로운 감빵생활’ 자체 최고 시청률인 11.2%를 넘어선 수치이자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 기록이다. 여기에 tvN 주요 타깃인 남녀 2049 시청률은 첫 방송부터 매주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또한 지난 5회 시청률은 남녀 1050 전 연령층에서도 지상파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코어 타깃인 40대 여성 시청률은 평균 17.4%, 최고 19.6%까지 치솟으며 인기를 증명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떻게 안방극장을 사로잡았을까.

호감형 배우들, 신선한 캐스팅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흥행은 배우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매 작품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했던 신원호PD는 이번에도 남다른 안목으로 신선한 조합을 꾸렸다. 주인공 의대 동기 5인방을 맡은 배우 조정석(이익준), 정경호(김준완), 유연석(안정원), 김대명(양석형), 전미도(채송화)는 참신한 에너지로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채송화 역을 맡은 배우 전미도의 활약이 눈에 띈다. 아직 대중들에겐 낯선 얼굴이지만, 알고보면 14년째 다양한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온 공연계 스타다. 전미도는 첫 드라마 주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훌륭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이 밖에도 조정석과 정경호, 유연석, 김대명 역시 프로페셔널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탄탄한 연기력으로 담아내며 시청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빛나는 건, 5인방을 둘러싼 인물들과의 멋진 조화 덕분이기도 하다. 신현빈(장겨울), 안은진(추민하), 곽선영(이익순) 등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5인방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

신원호PD, 주 1회 편성도 통했다

배우들의 열연이 빛날 수 있었던 것도, 캐릭터들의 조화도 훌륭한 연출과 대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가 다섯 번째로 함께 하는 드라마다. 이번에도 자극적인 설정 없이 순한 캐릭터, 착한 이야기로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자체를 전한다. 이혼, 싱글대디, 의사로서의 직업적 고민 등 무거운 소재들도 가벼운 코드로 풀어내며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여기에 주 1회 방송이라는 파격적인 편성은 드라마의 인기를 더한 요인이 됐다. 자칫 늘어진 전개로 이어질 수도 있었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탄탄한 구성과 매회 궁금증을 자극하는 반전 엔딩으로 관심도를 끌어올렸다. 일각에서는 주 1회 편성이 아쉽다는 반응도 터져 나오고 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에게는 비교적 넉넉한 시간적 여유 속에서 안정적으로 촬영하며 완성도를 높인 기회가 됐다.

악역 없는 따뜻한 이야기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상, 세트 등 시각적인 부분은 최대한 실제 병원과 비슷하게 설정하면서도, 기존 정통 의학드라마와 다른 전개 방향을 택했다. 배경이 병원인 만큼 극적인 상황들이 반드시 등장하지만, 이내 의대 5인방의 우정을 중심으로 소소한 이야기들이 작은 에피소드들과 입체적으로 뭉쳐 집중도를 높여주고 있다. 여기에 달달한 러브라인이 양념으로 가미돼 흥미를 더하고 있다. 물론 밋밋하다는 지적도 있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무게감 없는 에피소드, 실제 병원 실정과 다소 동떨어진 상황이 흥미를 반감시킨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막장드라마에 비해 성숙하고 순수한 시선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악역이 없는 드라마’라는 승부수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말초적인 자극 없이 편안한 전개가 거부감 없이 스며든 것으로 보인다.

신원호PD는 지난달 10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의료 행위 자체가 목적인 드라마는 아니다. ‘응답하라1994’의 신촌 하숙과 ‘응답하라1988’의 쌍문동 골목길, 그리고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감옥처럼 병원이 배경일 뿐 다섯 친구들의 지극히 소소한 이야기”라며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40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됐다. 직업인으로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친구들과 있을 때, 환자와 있을 때의 차이가 잘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 같은 느낌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신원호PD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시즌제 드라마로 확장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그는 “이우정 작가와 제가 머리를 맞댄 지 15년이 되다 보니 매 회의에 나오는 게 똑같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만드는 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놓이도록 드라마 형식을 바꿔봤다. 이야기의 끝을 열어두니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오더라”며 “국내 드라마들은 주 2회 편성이 대부분이고 그 방식이 예전엔 유효했다. 하지만 최근 치솟는 제작비, 바뀌어가는 노동환경을 고려해 주 1회 편성에 도전했다. 드라마가 잘 돼서 방송계에 새로운 모델로 제시되고 제작환경과 시청 형태도 바뀌면 어떨까 한다”고 설명했다.

조은애 스포츠한국 기자 사진=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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