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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백운산 어치계곡, 옛 선비 발자취 따르며 가을을 노래하노라

백학동이 숨긴 20리 유곡으로 들어서다
청학동이 도교적 색채가 강한 비현실적인 이상향이라면, 백학동은 유교적 성향의 현실적인 이상향을 뜻한다. 지리산 기슭의 하동 청학동이 유명하지만 그것은 어느 언론이 엉터리 추측으로 갖다 붙인 이름일 뿐이고, 본디 지명은 학동이다. 진정한 의미의 청학동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발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에 백학동은 실재한다. 광양 백운산 억불봉 자락에 흩어진 비평리, 황죽리, 어치리의 12개 마을을 통틀어 백학동이라고 일컫는다. 백학동은 예로부터 고로쇠 약수, 약초와 산나물, 단감과 밤 등이 풍성해 살기 좋은 고을로 꼽혀왔다.

백학동을 관통하며 북에서 남으로 내리 뻗다가 수어지로 흘러드는 20리 유곡이 어치계곡이다. 전북 장수 장안산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진 금남호남정맥이 장수 주화산에서 다시 가지 친 호남정맥의 대미를 웅장하게 장식하는 광양 백운산(1,218m)은 동천계곡, 성불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 등 4대 골짜기를 뻗어 내리는데 그 가운데서도 어치계곡이 첫손 꼽히는 비경이다.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치는 맑고 시원한 물,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못,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암벽들, 울창한 숲 그늘 등이 어우러진 멋진 계곡이 탄성을 자아낸다. 어치계곡 중에서도 내회 상류에서 외회에 이르는 4㎞ 구간의 경관이 단연 빼어나다.

정월 대보름마다 천마가 물마시며 쉬었다는데

내회(內回)와 외회(外回)로 나뉜 어치리 회두(回頭) 마을의 본디 이름은 왼데미였다. 옛날에 있었던 황룡사의 승려들이 백운산을 타고 다압으로 넘어가려면 이 마을을 지나야 했는데, 마을이 길 왼쪽에 있어 왼데미라고 부른 것이다. 또 상류의 내회는 안왼데미, 하류 쪽의 외회는 밖왼데미라고 일컬었다.

안왼데미 상류 골짜기는 '자연 생태계 보호구역'이어서 수십 년간 원칙적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을 바로 위에 있는 구시폭포도 제한 구역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규제에서 풀려나 빗장을 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만 생태계를 온전히 보존하는 지름길이리라. 어치계곡 으뜸의 절경인 구시폭포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 하느님이 천마(天馬)를 타고 두루두루 세상을 둘러보았다. 제아무리 천마라도 오랫동안 하늘을 날다 보면 지키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 해에 한번은 지상의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푹 쉬면서 원기를 회복했다는데, 그곳이 바로 구시폭포요 그 날이 바로 음력 정월 대보름이었다고 전한다.

신비로운 물줄기 구시폭포에 가을빛이 스며드네

구시폭포와 만나면 이러한 전설이 진실처럼 다가온다. 험상궂은 기암절벽을 호위하듯 늘어진 산나리 숲 그늘 아래로 쏟아지는 높이 15미터의 세찬 물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폭포의 힘찬 물살을 가득 담은 웅덩이는 구시(구유의 사투리)를 빼어 닮아 한결 신비롭다. 그래서 못 이름이 구시소, 폭포 이름이 구시폭포라던가.

천마가 이곳 물을 마셨다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 새벽이면 구시소의 물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 또한 잦다니 더욱 기이하다. 금방이라도 천마가 내려와 구유에 담긴 맑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실 것만 같다.

구시폭포 일원은 한여름 피서를 즐기기에 그만이지만 늦가을 단풍 빛도 퍽이나 곱다. 구시폭포를 지나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을 더듬으며 산책을 즐긴다. 10월말로 접어들면서 가을빛이 스며드는 이곳은 11월 초순부터 중순을 전후하여 단풍이 절정에 다다른다.

구시폭포 상류에는 선녀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선녀탕이 있고, 그 위로는 용이 살다 승천했다는 용소가 있다. '지추(地湫)' 또는 '지살고지'라고도 불리는 용소는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이 주변에는 천연 절구통 같은 바위에 물이 고인 돌구시(구유)가 있는데 주민들은 이를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발자국이라고 믿는다.

용소 위로는 오로대라는 울퉁불퉁한 바위지대가 펼쳐진다. 암반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담하고 맵시 있는 물줄기 아래로 너르고 푸르른 웅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다.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다가, 한여름 대낮에도 이슬이 맺힐 만큼 시원하다면서 '午露臺'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는 곳이다. 옛 선비 발자취 따라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읊고 노래하며 심신을 갈고 닦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

▲찾아가는 길=진월 나들목에서 남해(10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하동 방면 2번 국도-진상-동진주유소(좌회전)-수어지-어치-내회를 잇는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 서울남부터미널, 부산, 대구, 여수, 순천, 광주 등지에서 광양으로 가는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 운행. 광양에서 진상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 다음, 어치리(회두) 방면 버스로 갈아탄다.

▲맛있는 집=우리나라에서 가장 맛난 한우 구이 가운데 하나로 광양 숯불고기가 꼽힌다. 얇게 저민 한우를 즉석에서 양념해 구리 석쇠에 올리고 참숯불로 굽는 것이 특징이다. 부드럽고 고소하면서 담백한 맛이 천하일품이며 밥과 함께 후식으로 먹는 김칫국도 개운하니 입맛을 돋운다. 광양의 많은 집 가운데 시내식당(061-763-0360), 대중식당(061-762-5670), 대한식당(061-763-0095), 장원회관(061-761-6006), 삼대광양불고기(061-762-9250)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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