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사는 827년(신라 흥덕왕 2년) 도성이 창건한 이래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수도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1682년(숙종 8년) 대웅전을 보수한 이후 여러 차례 중건했다가 1976년부터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2011년에는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기의 돌탑을 세워 눈길을 끈다.
소재사는 신라 고찰로 전해지며 그 후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건했다. 지금의 대웅전은 1978년에 보수했다. 절 뒤편에 있는 달성용봉동석불입상은 화강암에 조각한 불상으로 높이 2.8미터에 이르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조각 수법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작품으로 보인다.
대구 일원의 산악인들에게 사랑받는 비슬산은 행락객들도 즐겨 찾는다. 유가사 일원의 숲과 계곡이 짙은 운치를 선사하는데다, 1996년 남쪽 기슭의 소재사 부근에 자연휴양림까지 들어선 까닭이다. 그래서 주말과 휴일이면 수많은 인파와 차량이 몰려든다.
가을 억새밭과 봄철 진달래가 일품
2015년 2월 28일 반딧불이 전기차와 셔틀버스가 굽이굽이 임도 따라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해발 1,035미터의 대견사 입구 주차장까지 누구나 손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참꽃이 피는 시기에는 평일에도 두세 시간 넘게 기다려야 탈 수 있다. 그러므로 노약자가 아니라면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헤쳐 대견사로 오르는 게 낫다. 주차장에서 소재사와 자연휴양림을 거쳐 대견사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
서쪽으로 굽어본 낙동강 낙조가 일품으로 꼽히는 대견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당나라의 한 황제가 좋은 절터를 찾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세숫물에 명당자리가 비쳤고, 이를 수소문해 찾은 곳이 중국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었다는 것이다.
대견사는 신라 흥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되었으며 1227년(고려 고종 4년) 주지로 부임한 일연선사가 22년 동안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이어서 소중하다. 고려 후기 몽골 침입으로 전소되었다가 조선 초기에 중건했으며 태종과 세종 때 규모가 커지면서 대견사로 이름을 고쳤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탄 것을 광해군과 인조 때 중건했다. 1917년 일제는 들쥐가 많아 전염병 우려가 크다며 강제 폐사시켰으나, 실제 속내는 대견사가 일본 대마도의 기를 누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선홍빛 참꽃이 흐드러진 천상의 화원
대견사 앞 절벽 위에는 고려 때 작품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우뚝 서서 산자락을 굽어보고 있다. 천연 바위를 바닥 돌로 삼고 그 위에 2층 기단을 만든 뒤에 삼층 탑신을 올렸는데 원래는 구층탑이었다고 전해진다.
대견사 뒤로 올라서면 드넓은 참꽃 군락지가 펼쳐진다. 비슬산 최고봉인 천왕봉과 월광봉, 조화봉, 대견봉이 빙 두른 가운데 30만 평에 이르는 평원이 온통 진달래 꽃밭이다. 꽃밭 사이로는 데크 길이 드리워 군락지 보호 및 산책에 도움을 주고 곳곳에 쉼터와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해마다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 사이에 선홍빛 진달래가 황홀한 신비경을 펼치는 고원지대가 가슴을 울린다. 그 천상의 화원 같은 꽃밭으로 들어서면 붉은 비단옷을 걸친 선녀가 신선이 타는 비파소리에 맞추어 춤추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것만 같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현풍 나들목에서 중부내륙(45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비슬산 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른다.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 대구서부정류장, 부산 등지에서 현풍으로 가는 버스 이용. 대구지하철 대곡역에서 현풍을 거쳐 유가사로 가는 시내버스 운행. 자연휴양림 주차장으로는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만 시내버스 운행.
▲맛있는 집=현풍면에 있는 현풍닭칼국수(053-611-8889)는 20여 년 전통의 닭칼국수로 명성이 자자하다. 천연 발효시킨 후에 저온 숙성한 면을 사용하여 소화가 잘되고 영양이 풍부하면서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고명으로는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닭가슴살이 푸짐하게 올라가며 들깨가루와 김가루도 뿌려 나온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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