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하면 재발하는 슬개건염

공포영화 그 중에서도 좀비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병명 하나가 떠오른 건 정형외과 무릎전문의의 직업병일까? 영화 속에서 좀비는 사람들을 크게 공포스럽게 하지는 않으면서도 잊을만하면 나타나 사람들을 다시 놀라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무릎에서도 치료하고 또 치료해도 다시 재발함으로써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좀비같은 무릎병이 있다. 바로 슬개건염이다.

필자가 의대 학생이었을 당시, 정형외과를 처음 공부할 때는 슬개건염이 사람을 무척 괴롭히는 병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정형외과 교과서에도 정말 짤막하고 큰 비중 없이 설명되어 있기 때문. 그러나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무릎 관절만을 치료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땐 슬개건염은 무척이나 골치 아픈 무릎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치료해도 완전히 낫지도 않고 시간을 두고 이따금씩 나타나 환자와 의사를 동시에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슬개건은 뭘까? 슬개건은 무릎 앞쪽에 있는 동그란 슬개골이라는 뼈 아래에 위치한 단단한 힘줄이다. 슬개건염은 이 슬개건에 염증이 생긴 것을 말한다. 슬개건은 우리 몸의 많은 힘줄 중 가장 크고 많은 일을 하는 힘줄 중 하나. 그래서 나이가 어느 정도 들 때까지는 잘 회복되고 잘 버틴다. 하지만 안타깝게 힘줄이라는 조직 자체가 가진 특징으로 인해 근육이나 뼈 같은 조직에 비해 혈관 공급이 많지는 않다. 다시 말해 손상이 일어났을 때 다시 치유시켜주는 피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상 계속 쓰고 스트레스를 주면 힘줄을 구성하는 섬유가닥들이 점차 파열되고 갈라진다. 그리고 예전처럼 다시 치유되지 않고 혹시 치유되더라도 탄력을 잃어버린 기능부족의 힘줄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슬개건이 이렇게 파열되거나 약화되는 슬개건염은 40대 이후가 되면 점점 위험도가 높아지고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빈도가 높아진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40대 여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선다. 아픈 곳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머뭇거리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크게 아프진 않아요. 어느 날 에어컨 바람을 쐬는데 갑자기 무릎 앞쪽에 시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계단을 오를 때는 좀 괜찮지만 내려올 땐 이상하게 뭔가 불편해요. 병원에 올까말까 망설이다가 걱정이 돼서 한 번 와봤어요.” 필자가 되물었다. “평소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무릎 관리는 평소에 좀 하는 편이신가요?” 필자의 질문에 그 여자환자는 이전에도 가끔씩은 무릎 앞쪽이 불편했다고 대답하며 무릎에 좋은 운동을 특별히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최근에 TV건강프로그램을 보고나서 계단오르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신체검진을 했다. 무릎 앞쪽 특히 아래쪽의 염증반응이 나타났다. 슬개건이라고 부르는 무릎 앞쪽 힘줄 주변에 염증이 심했다. X-ray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특별한 관절염 소견은 드러나지 않았다. 필자가 말했다. “환자분의 병은 슬개건염으로 생각됩니다. 이 병은 슬개골 주변에 연결되어 있는 여러 힘줄 중에서 슬개건이라는 아래쪽 힘줄에 많은 스트레스가 가해지면서 점차적으로 염증이 심해지는 병입니다.” 그러자 환자가 놀라며 물으셨다. “염증이라구요?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심하게 붓는 것도 아닌데 무슨 염증이요?”

다시 한 번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는 상황.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일을 많이 하면 손목이나 허리 같은 관절이 시큰거리거나 갑자기 결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이게 바로 그 관절을 싸고 있는 인대나 근육, 관절막 등이 살짝 갈라지거나 조금 파열되면서 그 주변 속으로 염증물질들이 생겨 아파지는 겁니다. 이것은 세균 때문에 곪으면서 열도 나고 붓는 염증하고는 좀 다르지요. 세균 때문에 생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힘줄 염증이 더 많습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은 이해했지만 또 다른 걱정이 생긴 눈치. “혹시 MRI같은 정밀검사를 더 해야 하나요? 수술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요.”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급선무. “이 병을 잘 이해만 하고 조심하시면 수술까지는 필요 없이 보존적 치료로 좋아지실 겁니다. 대신에 앞으로 설명드릴 내용을 충실히 실천하는 노력이 이 병을 50% 이상 낫게 하니까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필자가 덧붙였다. “ 이번에 갑자기 무릎 통증이 심해진 이유는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을 심하게 한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슬개건염의 치료는 크게 환자가 조심하고 신경 쓸 부분과 의사가 치료할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두 가지의 비중이 50대 50이다. 먼저 환자는 일상생활 중 경사진 곳을 걷는 등산 같은 활동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활동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는 동작을 가급적 피해야만 한다. 요즘 계단 오르기 운동이 상당히 비중있게 언론에서 다루어지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자신의 무릎 인대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무리하고 갑작스러운 계단오르내리기운동은 새로운 병을 만드는 경우가 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또 하루 10-15분 정도의 온찜질을 무릎 앞쪽 힘줄 주변에 꼭 해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릎 관절 주변 근육 강화에 도움을 크게 주는 실내 자전거 타기를 꼭 시작해야 한다. 실내 자전거 타기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발목에 모래주머니나 하중을 조금 줄 수 있는 고무줄 같은 것을 매고 무릎을 굽히지 않은 상태로 땅에서 60cm 정도 다리를 들어주는 운동 정도를 꾸준히 해주면 좋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주기적으로 슬개건 주변의 염증을 확인해서 염증을 감소시키고 손상되고 약해진 인대를 강화시키는 여러 치료를 필요에 따라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소염제를 복용하거나 인대강화 주사를 맞을 수도 있고, 체외충격파를 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주사는 치료기간을 조금 당기고 효과를 빨리 내고자 하는 경우에 많이 쓰이기 때문에 필자는 전문 운동선수에게 많이 치료하는 편이다. 체외충격파는 1주 간격으로 3-5회 정도 시행하면서 점진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일반 환자에게 많이 권하고 있다. 체외충격파는 확실히 힘줄병에는 효과가 좋은 것이 입증되어 많은 의사 들이 애용하고 있는 치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 고가의 MRI 검사는 필요 없고, 수술적인 치료 또한 거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잘 치료가 되었다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슬개건 힘줄을 도와주는 무릎 주변 근육 강화를 필수적으로 시행해야한다. 그렇지 않고 힘줄에 무리를 주는 활동량만 늘어나면 언제든지 슬개건염은 다시 찾아오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수술까지 필요하지 않은 병이라고 무시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릎 건강을 챙겨주는 것이 슬개건염을 이겨내는 방법일 뿐 아니라 퇴행성 관절염도 예방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달려라병원 손보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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