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너머, 소도시의 골목과 유적

두 칸짜리 간이열차, 풍경 소리 아득한 도예촌... 일본 규슈 사가현의 소도시에서 만나는 애틋한 단상들이다. 규슈 서북쪽에 자리한 사가현은 현해탄 건너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땅이다. 사가의 소도시를 거닐면 따뜻한 녹차 향이 스미듯 정겨움이 묻어난다.

소도시 여행은 살아보는 여행이다. 외딴 동네에 마당 깊은 집을 빌리고, 두 칸짜리 빛바랜 통근 열차에 몸을 싣는다. 다락방 있는 옛 일본 기와집을 지나 역까지 터덜터덜 오가는 일상의 여유로움이 소도시 여행의 참맛이다.

사가현은 옛부터 한반도와 다채로운 문화적 소통을 간직한 고장이다. 조선에서 건너간 도공과 자기들의 흔적은 아련하고, 사가시의 도심 유적 사이를 흐르는 수로는 낯설면서도 친근하다. 그 속에서 전해지는 사람향기가 도시의 오후를 따사롭게 감싼다.

도심 분위기는 사가현의 중심인 사가에서 가장 활발하다. 사가 역전의 선술집들은 해질 무렵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가는 풍요로운 농토와 도자기 산업으로 옛 부터 부를 축적했던 도시다. 나베시마 가문은 사가에서 약 260년간 11대에 이르는 번영을 누렸다. 나가사키로 유입된 서양문물이 사가를 거쳐 갔고 그 길과 가옥들은 문화재로 고스란히 남았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였던 이방자여사의 외가도 이곳 사가였다.

수로를 단장하는 전설 속 요정들

아기자기한 찻집과 성곽, 신사들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사가에는 평야지대에 위치한 성을 방어하기 위해 해자를 비롯해 강과 수로를 미로처럼 얽혀 놓았다. 그 물길이 여행자의 쉼터가 되고 산책로로 변신했다. 전설속 물의 요정 ‘갓파’ 동상은 수로 곳곳에 숨어 있다. 익살 맞게 웃으며 물고기와 낚시대를 든 풍요의 신 ‘에비스’도 시내 곳곳에 등장한다. 800개나 흩어져 있다는 에비스만 찾아내는 별도의 투어가 이곳에서는 인기다.

사가시 동쪽, 일본 최대의 선사시대 유적인 요시노가리는 700년간 야요이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옹관묘, 매장된 청동검, 생활 토기 등은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 출토된 것과 똑같은 모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을 쓴 유홍준 교수가 첫 방문지로 요시노가리를 택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매년 사가에서는 아시아 최대규모의 벌룬 축제도 열린다. 옛 유적 사이 너른 벌판에서 펼쳐지는 벌룬들의 이색 향연은 가을 창공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도공의 애틋함 서린 이마리 도예촌

사가지역에서 생산된 명품 자기들은 서쪽 이마리를 거쳐 유럽 각지로 비싼 값에 실려 갔다. 일본 근대화의 발판이 된 이마리 자기의 영광 뒤에는 조선에서 건너간 이들을 비롯, 도자기 굽는 일에 평생을 바친 도공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마리의 도예촌 오카와치야마는 17세기 후반부터 약 200여년간 나베시마 가문의 도자기를 만들던 숨겨진 동네다. 비법이 새나가지 않도록 기술을 보전했던 산골에는 지금도 30여개의 도자기 가문의 요가 들어서 있다. 깊은 산 속, 편린으로 곳곳이 장식된 오카와치야마에서는 자기로 만든 풍경 축제가 오붓하게 열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맑은 소리는 해질녘 작은 마을의 길목을 청아하게 채운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사가공항까지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사가행 저가항공의 요금은 편도 5만~1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다. 공항에서 JR사가역까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오간다.

▲음식=사가현의 쇠고기인 사가규가 유명하다. 품질 높은 사가규를 이용한 함박스테이크를 이마리, 사가시 등의 레스토랑에서 맛볼수 있다.

▲기타정보=사가시에서는 일본최대규모의 목조건물인 혼마루역사관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사가미술관이 인상적이다. 사가 지역은 대부분의 상점과 마트에서 카드 이용이 힘드니 현금을 환전해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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