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골, 문향이 깃들다

산과 계곡이 깊은 정선은 시 한수가 절로 흘러나오는 고장이다. 굽이굽이 단풍이 곱게 피어오르는 절경 자락에는 문향이 깃들어 있다.

정선 소금강으로 향하는 424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가을 향취는 완연하다. 소금강은 수려한 경치가 금강산에 뒤지지 않아 ‘작은 금강’의 의미가 담긴 곳이다.

소금강의 절경 끝자락, 몰운대는 아득한 벼랑과 그 속에 담긴 사연들로 벅차게 다가선다. 산길을 따라 걸으면 길이 끝나는 곳에 바위와 수백년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소금강의 몰운대에서 시인 황동규 등 시인들은 절벽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했다.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황동규의 <몰운대행>

싯구 녹아든 소금강의 절경

몰운대 옆. 벼랑 아래로는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어천이 흐르고 계곡 옆으로는 해질 무렵 밥 짓는 연기를 모락모락 피어 내는 마을이 들어섰다. 몰운대의 해질녘 풍경과 감회들은 하나하나 싯구에 담겼다. 시인 이인평은 '해거름에, 고요의 여운을 쓸어오는 물소리가/ 내 오랜 갈증의 혀를 적신다'고 했고, 시인 박정대는 '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라고 읊조렸다. 시인들의 시비는 몰운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운치를 더한다.

몰운대를 시작으로 화암 약수까지 이어지는 산책코스는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황동규의 '몰운대행'에는 화암약수터 여관 주인이 몰운대행을 권하는 구절도 나와 발걸음을 더욱 들썩이게 만든다.

'정선 8경'인 화암약수에서 톡 쏘는 약수 한 사발 들이킨 뒤 아리랑의 흔적이 담긴 아우라지로 발길을 옮긴다. 송천과 골지천이 어우러진 여량면 아우라지는 민요 정선 아리랑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우라지는 남한강 천리 물길을 따라 처음 뗏목이 출발하던 곳으로, 뗏목을 타고 떠나는 임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여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정선 아리랑의 배경인 아우라지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정선아리랑의 '애정편'에 아우라지가 등장하는데 여인의 애절함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는 아우라지 처녀상도 들어서 있다. 아우라지는 김원일의 소설 '아우라지 가는길'에서도 동경하는 고향으로 그려진다. 고향을 떠나 혼탁한 도시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했던 주인공은 아우라지로의 귀향을 늘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몰운대와 아우라지에서 문향을 음미했으면 정선 읍내를 둘러볼 차례다. 정선 구경에 꼭 들려야 할 곳이 정선 장터다.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 국수 등 정선의 별미가 가득한 먹자골목이 들어서 있으며 각종 산나물, 옥수수, 수리취떡 등도 맛 볼 수 있다.

정선읍 애산리의 아라리촌은 정선의 옛 주거 문화를 재현한 곳으로 굴피집, 너와집, 귀틀집들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서 하룻밤 묵는 체험도 가능하다. 정선읍내 병방치 전망대에서는 한반도 지형을 닮은 물돌이 마을이 넉넉하게 내려다 보인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남제천IC에 빠져나온 뒤 영월 등을 경유해 38번 국도 따라 정선에 닿는다. 청량리~민둥산~정선~아우라지를 오가는 정선아리랑 열차도 정선오일장날(매 끝자리 2,7일)에 맞춰 오간다.

▲음식, 숙소=곤드레나물밥은 화암약수터 내에 위치한 고향식당이 등산객들에게 맛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정선읍내에서는 동광식당이 메밀칼국수인 콧등치기 국수와 황기족발로 유명하다. 숙소는 하이원 리조트와 가리왕산 휴양림이 묵을만하다.

▲기타정보=정선 414번 지방도로 길을 잡으면 정암사, 함백산, 만항재로 이어지는데 이 길은 가을 단풍 감상에 좋다.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는 레일바이크 체험이 인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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