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리포터 양지혜, 김지아, 정민화려한 TV앞의 생활, 애환·자부심 뒤섞여

"5분을 위해 5시간을 기다리고 준비하죠"
방송리포터 양지혜, 김지아, 정민
화려한 TV앞의 생활, 애환·자부심 뒤섞여


“리포터는 얼굴만 예쁘면 된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방송 리포터는 젊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법한 인기 직업이지만, 심한 선입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작가가 쓴 원고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방송용 액세서리” “아나운서나 MC가 될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임시직” 등 전문성을 턱없이 깎아 내리는 소리가 곧잘 들려오기 때문이다. 예쁘게 꾸미고 카메라 앞에서 폼을 잡는 ‘화려한 생활’이 전부인 양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5분 방송을 위해 5시간을 기다리고, 들쭉날쭉한 방송 때문에 제 때 식사를 못해 위장병을 앓는 고충도 숨어 있다.

동아TV ‘아이러브 다이어트’ MC 겸 리포터로 활약하는 방송 3년차 양지혜(24)씨, 아리랑TV ‘컴퍼니 클로즈업’과 삼성전자 사내방송을 진행하는 경력 4년차 리포터 김지아(25)씨, KMTV ‘생방송 뮤직Q’의 리포터 경력 4년차 정민(24)씨로부터 TV 뒤에 숨어 있는 고민과 보람, 자부심 등 생생한 ‘JOB STORY’를 들어봤다.

다양한 삶 접할 수 있는 직업

- 젊은 여성들의 인기 직업인데 매력은 무엇인가?

양지혜= 밖에서 일한다는 것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상황을 불러온다. 그게 매력이다. 늘 신선한 자극을 받는다. 남들은 책을 통해 자신과 다른 삶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한다면 우리는 현장에서 배운다. 일에 대한 만족도를 표현하자면 100%, 아니 그 이상이다. 휴일보다 일할 때 생기가 돈다. 어쩌다 3~4일 쉬면 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다. 특히 “방송 보고 좋은 정보나 활력을 얻는다”는 시청자들의 이메일 등을 받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날아갈 듯 뿌듯하다.

김지아= 매일 새로운 사람과 제품을 만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대본을 그대로 읽는 것과는 다르다. GE의 잭 웰치, 삼성의 이건희 회장 등 존경하는 인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남다른 값진 소득이었다.

정민= 전적으로 공감한다. 정말 스튜디오를 벗어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게 강점이다. 연예인이라도 덜 꾸며진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 어떻게 리포터가 됐는지?

정민= 특별한 외모, 능력없이 방송을 하고 싶을 때 그 첫 발을 내딛는 게 이 분야다. 처음엔 막연히 방송인을 꿈꿨다. 그러다 바이올린을 전공(총신대 교회음악과)하던 대학 4학년 때 TV에서 MBC아카데미 VJ과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당시 강사의 눈에 띄어 SDN(여성채널) 최용준의 파워뮤직 VJ로 뽑히게 된 게 출발점이다.

김지아= 본래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데, 대학(UC Santa Barbara)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뉴스 프로듀서가 꿈이었다. 하지만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보다 카메라 앞에 있는 사람의 영어 실력이 더 중요하다”는 방송국(아리랑 TV)의 제안으로 리포터의 길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생각도 못했던 리포터를 어찌할까’ 많이 걱정 했는데, 방송국에선 덜컥 일을 맡겼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지만 일은 즐겁다.

양지혜= 음악인이 되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어기고 2002년 미국에서 대학(Mannes 음대 기악과)을 마치자마자 짐을 싸 귀국했다.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만약 실패하면 다시 돌아가겠다”고 설득했다. MBC아카데미를 거쳐 마침 3월 개국한 디지털방송국의 공채 MC 4명 중 1명으로 뽑혔다. 운이 좋았다. 음악인보다 대접은 못 받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좋다.

- 첫 방송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을텐데…

정민= SDN(여성채널) VJ로 정식 데뷔하기 전에 ‘와우스포츠’의 농구를 중계한 것이 첫 방송이었다. 날짜도 잊을 수 없다. 2000년 11월 4일 농구개막식 날이었다. 2점 슛과 3점 슛을 겨우 구별하는 수준이었는데, 농구 생방송을, 그것도 관객들 사이에 서서 진행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하도 진땀을 흘려 마스카라는 다 번지고, 화장은 떡이 됐다. 그때 알았다. 방송은 그저 하고 싶다는 욕심만 가지고 덤벼선 안 된다는 것을.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다시 재미있게 푸는 말솜씨도 익혀야 하고, 거기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안 돌리게 하는 ‘끼’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추어야 한다. 첫 방송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양지혜= ‘스카이라이프’에서 2개월 동안 연수 받은 뒤 ‘뮤직 쇼’ 첫 회를 진행했다. 그때 게스트가 요즘 뜨고 있는 MC몽과 하하. 난 방송 경험이 없는데, 게스트는 베테랑이니 기가 죽었다. 너무 긴장해 물도 안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자칫 실수할 뻔한 순간에도 MC몽과 하하는 애드립으로 위기를 잘 넘겨주고, 카메라 밖에서 조언도 많이 해줬다. 그 일로 평생 팬이 됐다. 하여튼 첫 방송 얘기를 꺼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당시의 나는 아마도 ‘인조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방송 테이프는 소장하고 있지만 다시 볼 자신이 없어 보지 않는다. 죽기 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싶다.

김지아= 2000년 가을 아리랑TV의 첫 방송에서 환경공기청정기 회사를 소개하는 일을 맡았다. 문제는 그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전철역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파가 몰리자 얼굴이 빨개져 제대로 진행이 안 됐다. 무려 30번 NG내고, 결국에는 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30분짜리 프로그램을) 하루종일 찍었다. 지금 보면 얼마나 웃기는지. 얼굴이 동그란 편인데 화면에선 더 통통해보여서 터질 것 같았고, 생전 처음 해본 메이크업에 머리, 의상은 각기 따로 놀았다.

◈ 참고 기다릴줄 알아야

- 방송 스트레스도 클텐데.

정민= 연예인을 주로 인터뷰하다 보니, 일보다는 ‘기다리다’ 지친다. 보통 4~5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6~7시간을 기다린 적도 허다하다. 고작 5분 인터뷰 하려고 말이다. 문제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 보면 (기다리게 하는) 연예인도 지치고 우리도 지쳐 방송이 맛깔스럽게 안 된다는 것이다. 분위기 ‘업’ 시키려 혼자 방방 뜨다가 머쓱해질 때도 많다. 또 불성실한 연예인도 왜 그리 많은지. 6~7시간을 기다려 겨우 만났더니 화장도 안 한데다 선글라스에 모자 쓰고 찍으란다. 힘은 힘대로 들고, PD는 우리만 뭐라고 하고…. 정말 스트레스 받는다.

양지혜= 육체적으로 힘든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오히려 ‘변태’라고 할 정도로 즐기는 면도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여러 방송을 하다 보면 스케줄이 겹칠 때가 있는데 이때가 정말 곤란하다. 1분이라도 지각하면 수십 명의 스태프를 기다리게 하는 결과가 된다. 방송 중 본의 아니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 걱정도 크다.

연예인 인터뷰로 인한 고생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인터뷰를 시도했던 여가수 L양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처음 약속을 잡고 찾아갔더니 머리 한다고 1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 다음에는 다른 방송 들어갔다고 2시간. 그것도 군소리 없이 참았는데 더 기막힌 것은 그 후였다. 피곤해서 낮잠 잔다고 인터뷰 취소한다는 거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줄 때 더 잘해야 하는 건데, 참 속상했다.

김지아= 주로 기업을 상대로 취재하니, 겪는 어려움도 다른 것 같다. ‘해외 전자 쇼’ 참가 등 삼성전자의 일 때문에 두 달에 한 번 꼴로 해외 출장을 간다. 이때 시차 적응이 특히 힘들다. 또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언어소통이 안돼 답답하다. 독일이나 중국, 터키 등의 길거리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30명 인터뷰 해서 1~2명 간신히 건질 만큼.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보편적으로 영어 꽤 잘하는 편이다.

방송이 뜻한 대로 진행이 안 될 때 받는 스트레스도 크다. 그런 경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만 집에서 될 때까지 연습해본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놓였을 때 능숙하게 넘길 수 있다.

- 리포터가 된 이후 생긴 버릇은 없는지.

정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과장’해서 말하다가 구박을 받는다. 보통 방송에서 어떤 연예인을 만나더라도 기분을 띄우기 위해 “너무 좋아해요” “너무 멋져요” 하며 추켜주곤 하는데, 친구들을 만나도 무의식 중에 이런 말을 남발한다. “어머, 너 너~무 이뻐졌다~아!” 하는 식으로. 폴짝 뛰거나 박수를 치는 등 동작까지 곁들여서. 그럴 때 친구들이 “방송용 말고 그냥 해” 하고 지적하면 멋쩍어진다.

양지혜=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음식을 배부르도록 먹어본 적이 없다. 밥을 조금만 많이 먹어도 트림이 나기 쉬워 조심한다. 제때 못 먹어 위장병도 생겼다.

김지아= 언어가 고급(?)화됐다. 대학 때 은어를 즐겨 쓰던 습관이 고쳐졌다. 표현 방식도 풍부해졌다.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두고 ‘아, 맛있다’ 한 마디면 끝나던 것이 요즘에는 ‘이 맛은 어찌어찌하여 좋다’는 설명조로 바뀌었다. 또 영어 자막 등에 오타가 쓰인 것을 그냥 보고 못 넘긴다. 우리 방송과 아무 상관이 없어도 가서 고쳐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24시간 대기상태, 수입은 높은 편

- 스케줄과 수입은?

정민= 우린 하루살이다. 내일 인터뷰가 오늘 밤 10시에 잡히는 식이다. 보름 전에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전주에 내려갔다가 갑자기 다음날 촬영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왔는데 다시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허탈해 한 적이 있다. 이런 형편이니 개인 약속을 잡기가 겁이 난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취소의 연속이다. 항상 대기 상태라고 할까.

대략 따져보면 한 달에 이틀 정도 쉰 것 같다. 출연료는 회당 15만~20만원선. 인터뷰 시간이나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데 최고 27만 5,000원까지 받아봤다. 통장은 잘 안보는 편이라 정확한 수입은 모르겠다.

양지혜= 현재 동아TV ‘아이러브 다이어트’, YTN ‘뷰티플라이프’를 비롯해 고정으로 진행하는 프로만 4개다. 같은 날에 겹칠 때가 많아 스케줄 조정이 어렵다. 우리가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통보 받기 때문이다. 대신 수입은 상당한 편이다. 가끔 행사 진행을 맡기도 하는데 한 두시간 사회 보고 200만원 이상을 받기도 한다. 프리랜서 신분이라 늘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나, 그걸(일이 없어질까) 극복할 만큼 인지도를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김지아= 영어 방송의 경우 아무래도 일반 방송보다 출연료가 높다. 1회 30~50만원선. 일은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보통 아침 8시에 시작해 저녁 6시 전에는 끝이 난다. 평일은 일하고 주말은 쉬는 것도 일반 회사원과 비슷하다. 처음엔 일 욕심이 나서 주말까지 일한 적이 있는데 보람이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일한 만큼 즐기자’는 주의다. 주말엔 가족과 오붓하게 정을 나누거나 친구들과 스노보드를 타고, 댄스학원 등에 다니며 활력을 재충전한다.

예정된 대담 시간을 넘기고도 일에 대한 자랑을 하느라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던 이들 리포터들은 대화를 마무리하며 한결같이 ‘전문지식을 쌓는 것이 리포터의 최고 미덕’이라고 강조했다. 리포터로서의 진출이 ‘TV로 가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하지만, 능력 있는 리포터로 인정 받는 길은 그리 간단치는 않은 것 같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3-24 22:08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