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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치레 문화를 거부한다" 노블레스 노마드族
다양한 경험축적에 투자, 정신적 풍요로 삶을 풍족하게

‘ 내 나이 올해 서른, 30대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30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훌쩍 가버린 20대. 그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 30대에는 후회 없이 누려 보고 싶다. 그래야 10년 후, 나의 40대를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3년 전, 꼭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썼던 일기 중 한 대목이다. 각 세대는 나름대로 특징이 있고, 그 시기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또 그 시절의 경험들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최근 ‘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 : 귀족적 유목민)족이 주목 받는 한 이유이다.

1990년대 들어 우리 사회는 경제 호황을 누리며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백화점 세일 때는 주변의 교통이 마비되었고, ‘ 과소비 풍조’, ‘ 쇼핑 중독증’이 언론에 심심찮게 나올 만큼, 소비자들은 불필요한 물건까지 대량으로 구입하고 외제 명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 집 안에 물건이 많아 봤자, 먼지만 쌓이고 이사갈 때 고생만 하지 뭐 좋은 게 있겠어요?”

미혼 시절, 친구들 따라 쇼핑하러 가면 신용 카드로 명품 가방과 옷 등을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김모씨. 주부가 된 김씨는 “ 지금은 이런 물건들이 짐이 되었다”고 말한다. 경제 호황 때, 마치 전리품처럼 끌어 모은 값비싼 물건들은 더 이상 자랑 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집안에 먼지 쌓인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 여행ㆍ레저 등으로 무형의 재산 수립



강남의 한 백화점 명품관을 찾은 여성. 노블레스 노마드족들은 물질적인 호사보다는 문화적 풍요를 선호하고 있다. /임재범 기자



명품, 골동품 등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여행, 레저, 공연 관람 등 무형의 경험을 수집하는 새로운 소비자층. 이름하여 ‘ 노블레스 노마드’족이다. 최근, 물건의 소유보다는,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경험’을 선호하는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세상은 풍부한 경험으로 삶을 풍족하게 만들려는 ‘노블레스 노마드’의 소비 양식에 새삼 주목한다. 이들은 비싼 물건으로 신분을 과시하는 겉치레 문화를 거부한다. 대신 자신이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경험적인 일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독일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는 저서 ‘ 잡 노마드 사회’(Job Nomaden)에서 현대인을 ‘ 유목민’(Nomad)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목민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짐이 되는 것은 기꺼이 버린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무릇 제 나이 대에 맞는 생활 양식이 있는 법이다. 20대의 배낭 여행과 50대의 여행은 분명 다르다. 따라서 노블레스 노마드들은 물건 수집에 돈을 소비하느니 해외 여행이나 레저, 외식, 영화, 공연 관람 등 자신의 경험을 풍족하게 해주는 활동에 지출을 늘린다. 즉, 자신이 버는 수입에서 하고 싶은 일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또한 이들은 인터넷이나 잡지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계획을 세우면서 차근차근 실천한다.

현재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모씨(28). 그는 이미 대학 재학 중, 어학 연수와 교환 학생으로 미국과 캐나다에 2년간 있으면서 근교와 유럽, 멕시코 등지로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특히 지난 해 멕시코의 휴양지에서 보낸 패키지 여행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호텔, 부페 식사, 근교 여행, 스포츠 댄스, 스쿠버 다이빙,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경험을 만끽한 그는 호텔 전용 해변 가에서 수영하고 파라솔 아래서 책도 읽고 웨이터들이 가져다 주는 맥주와 피나콜라다(파인애플 등이 들어간 칵테일)를 마시면서 꿈같은 휴양을 즐겼다. 여행 자금은 번역 아르바이트와 연구 보조비 등으로 마련했으며, 앞으로의 휴가를 위해서 열심히 저축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다양한 경험은,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문화와 전혀 다른 곳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어서 해외 여행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여행 후에는 능률도 오르고, 삶의 활력도 더 생기는 등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줍니다. 앞으로 남틘貧?タ?동남아시아도 가보고 싶고, 뮤지컬과 오페라 관람 등 문화 생활도 틈틈이 즐기면서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합니다.”

- “명품 브랜드에 관심없다”

“ 젊은 여성들이 선망하는 명품 브랜드에는 관심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 송모씨. “ 물건으로 나를 과시하는 것은 왠지 격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젊은 여성들 사이에 명품 가방 한두 개쯤은 갖고 있는 게 유행이라지만, 저는 가방 하나에 비싼 돈을 소비하느니 해외 여행과 문화 생활에 투자하는 편이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씨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이지만, 여름 휴가와 월차를 적절히 사용해 매년 한 번은 꼭 해외 여행을 떠난다. 재작년에는 휴가를 이용해 런던과 파리로 배낭여행을 했고 지난 가을에는 열흘 간 휴가를 얻어 터키에 다녀 왔다.

“ 여행을 준비하면서 같은 여정의 동반자를 찾다 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들 역시 소지품과 악세서리 등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여행, 관광, 레저 활동 등 체험적인 일에 아낌없이 투자하더군요.” 그녀는 또한 ‘ 오페라의 유령’, ‘ 캣츠’ 등 유명하다는 뮤지컬만을 선택해 보고, 틈틈이 영화 관람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다니는 등 경험적인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 물건이야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지만, 젊었을 때의 경험은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모든 일이 때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올해 ‘ 주 5일 근무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여행, 레포츠, 공연 관람 등 경험형 여가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내 인생의 주인인, 나 자신에 대한 투자야말로 가장 실속 있고 행복한 지출이라고 생각하는 21세기의 새로운 인간 유형, 노블레스 노마드족.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경험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만족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허주희 객원기자 cutyheo@hanmail.net


입력시간 : 2004-05-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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