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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반세기 '100년 기업' 꿈이 영근다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시대를 읽는 경영전략이 성장의 동력

36년간의 식민 치하, 광복, 한국전쟁, 휴전 등 우리 민족사의 신산을 뒤로 하고 맞은 1954년. 빈약한 시설마저 전쟁으로 철저하게 파괴돼 모든 것을 대외 원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한국은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경제규모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다른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내로라 하는 기업들의 상당수가 문을 연 때가 바로 그 50년 전인 1954년. 초토화 된 나라의 재건의 움직임이 본격화 했던 휴전 이듬해였다. 전쟁은 끝났으나, 살아 남은 자들의 생존 경쟁은 또 다른 전장일 수 밖에 없었을 터. 그로부터 50년이 채 되기 전, 대우그룹은 창업 30년 만에 공중분해됐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동명목재와 삼화 등 한때 재계를 주름잡았던 기업은 이름조차 생소해 졌다. 1995년 조사 당시 1965년의 10대 기업 중 살아 남은 곳은 하나도 없다. 이들의 존재가 새삼스러운 이유다.

미국의 기업 전문가인 케빈 케네디와 메리 무어는 공동으로 펴낸 책 ‘ 100년 기업의 조건(Going The Distanceㆍ한스미디어刊)’에서 다른 기업으로의 흡수나 소멸은 기업 경쟁의 현실이며, 동시에 생명 현상의 기본 원리라고 적고 있다. 나아가 그 같은 위기 상황을 경영상의 위기와 지배 구조상의 위기로 나누고 8가지의 위기 극복 과제를 제시, ‘100년 기업’의 꿈이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책에서 제시된 위기 극복 과제들을 기반으로 해, 학원, 언론, 금융 등 전후 반세기동안 국가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분야의 기업들을 돌아 봤다


- ‘혁신의 정신’ 한국일보 창간 50년

오는 6월 9일 창간 50주년을 맞게 되는 한국일보는 정치 공방전, 공비잔당 섬멸을 위한 계엄령 선포 등 전쟁의 여파로 사회 전체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창간됐다. 이 시기는 조선일보 등 신문업계가 전반적으로 경영난에 봉착해 신문업계의 판도가 혼탁하던 터라, 한국일보의 탄생은 더욱 업계에 충격이었다. 또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이후 40여년간 신문업계에서는 유례없는 고공 성장을 한다. ‘고객(독자)의 요구가 혁신을 이끌고, 혁신이 제품의 교체를 낳는다’는 기업의 기본 원리에 충실해 독자들의 요구를 미리 읽고 이를 지면의 혁신으로 대응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1세기 들어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 대응해 나가는 한국일보의 시도는 이 같은 전통의 힘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국일보의 성장 동인이었던 ‘ 혁신의 정신’은 삼성그룹의 모기업으로 설립된 제일모직에서 ‘혁신과 제품의 교체’로 나타난다. 우리 나라 최초의 직물기업으로 이후 한국 섬유 공업 발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제일모직이었지만, 그 생산품이 직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따뜻하게 입는 것이 지상 과제였던 시절에는 직물생산이 모든 것에 우선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패션과 케미칼 전자재료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변화, 확대되었던 것. 이 변화가 50년 동안 제일모직을 지탱한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동란 이후의 꾀죄죄한 삶에서 생활의 필수품이었던 유지(비누)산업을 바탕으로 설립된 애경그룹의 50년사에서도 이 같은 생존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치약, 비누, 샴푸 등 생필품 위주의 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휴대폰, 자동차 부품 등 제품의 원료 및 소재 생산으로 혹독한 경쟁에서 생존했다. 그러나 애경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통 분야에까지도 직접 나서 양질의 상품을 고객들에게 직접 연결하는 전략까지 구사해 경쟁력을 확보했다. ‘ 100년 기업의 조건’에 따르면 이 수법은 ‘ 얼라인먼트’로 정의되는데,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의 생산단계부터 고객에게 이르기까지의 업무흐름이 고객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주는 강력한 경영 전략으로 승화된 관건이었다.

- 의사결정의 굳건한 인프라 구축

여기까지는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읽고, 전열을 발 빠르게 정비해 치열한 기업간의 생존 경쟁에서 성공한 모델로 합의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산업은행의 경우는 다른 각도의 분석을 요구한다. 견실한 지배구조 덕분에 50년의 명맥을 유지했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사실 개인적인 성공에만 관심을 쏟는 리더들도 위대한 기업을 세울 수는 있다. 하지만 개인적 리더십을 원동력으로 해 성장한 기업들에서는 그 리더가 떠난 다음에는 지속적인 성장이 유지되지 못 하는 수가 있다. 산업은행은 그 같은 딜레마를 잘 극복한 케이스.

개인 기업이 아닌 공적 기업이라는 태생적 조건이 주요 변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간 리더가 수없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더십의 DNA’로 불리는 조직 내 특유의 지배 구조에 기인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즉 시장, 고객, 직원, 경쟁사들로부터 적극적인 피드백 고리를 형성해 리더가 의사 결정을 해 가는 구조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리더가 떠나더라도 그 피드백 고리에 묶여 있던 의사 결정의 ‘인프라’ 덕분에 조직의 흐름과 분위기가 유지돼 간다는 것이다.

영리를 우선으로 하는 기업과 달리 인재양성으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고자 한 대학의 경우는 위에서 언급한 기업 경영의 원리들이 비교적 덜 적용된다. 백년대계(百年大計)일 수 밖에 없는 교육에서조차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점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 인재양성 ‘백년대계’ 세우다

그러나 차별화 된 교육으로 두각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오늘날처럼 대외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특유의 학원 경영 전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국가 재건을 위해 외국의 선진 기술의 도입을 위해서 우수한 외국어 실력자들이 필요했던 개교 당시의 상황에서 대대적인 외국어 교육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벤치 마킹이었다. 그 결과 50년이 지난 지금 졸업생의 10%가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동남아, 남미, 중동 등 ‘제 3세계’지역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밖에도 CBS, 한독약품, 동국제강, 인하대 등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거나, 맞게 된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으로 효율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기업과 차별화 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정보를 쉴새 없이 흡수하고 유통시키며 활발한 피드백으로 무장한 리더십. 지난 50년 동안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음 50년, 100년 기업의 첫걸음도 여기서 출발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뜻도 헤아릴 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올해 50주년을 맞은 이들은 제 2의 탄생을 준비하며 밤을 밝히고 있다.



정민승 prufrock@empal.com


입력시간 : 2004-05-1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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