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 넣었으니 이젠 재범 수렁에서 건져야죠"강력계 형사24년의 베테랑, 그들의 친구로 살기라파 의료조정교실 운영하며 마약사범 재활에 정성

'마약범의 대부' 조형근 형사
"잡아 넣었으니 이젠 재범 수렁에서 건져야죠"
강력계 형사24년의 베테랑, 그들의 친구로 살기
라파 의료조정교실 운영하며 마약사범 재활에 정성


“난 대한민국 형사다. 놈들은 늘 우리보다 빠르다. 허나, 아무리 날쌔고 빨라도 대한민국에선 어림도 없다. 뛰-어-봤-자-다.”

전화기에서 들리는 컬러링(영화 ‘와일드 카드’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분이다)이 과연 형사의 그것이다. “왜 뛰어봤잡니까?” 따지듯 묻자, “한번 걸린 놈들은 끝까지 따라가서 잡아내니까 그렇죠.”

올해 마흔여덟 살, 강력반 생활 24년의 조형근 경사(방배경찰서 수사계). ‘범죄사냥 24년 외길’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제 나이의 ‘경사’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이게 ‘진짜 형사’ 아니겠습니까?” 정복 한번 입어볼 기회도 없이 강력반 형사로 달려온 그는 이제 지칠 법도 하지만 범죄 사냥에 있어서는 아직 ‘스물여덟 살’이다.

1996년 8월, 네살배기 어린이의 진술 능력이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지를 놓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후암동 일본인 현지처 살인사건.’ 수사 지휘권자가 다섯 번이나 바뀌면서 거의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을 꼬박 2년 2개월 하고도 15일 동안 추적한 끝에 범인을 구속시킨 주역이 바로 그이고 보면, 나이답지 않게 톡톡 튀는 컬러링에다 남다른 자부심이 괜한 것은 아니었다.


- 약 끊을때까지 관심 또 관심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경찰관 피습 사건이 잇따르면서 강력반 형사들과 그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주목받는 가운데, 조 형사가 세간의 시선을 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출감하는 마약 전과자들을 위한 ‘라파 의료조정교실’을 열어 그들의 사회 적응을 돕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 손으로 집어넣었던’ 그들이다.

마약범 검거는 다른 수사보다 두 배는 족히 힘들다는 게 이 바닥의 정설. 발품을 많이 팔고, 한 달 이상은 예사로 잠복 근무를 해야 한다. 막상 범인들과 맞닥뜨리더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쉽게 흥분하기 때문에 대응 방식이 일반범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조 형사는 마약 사범은 검거하는 일보다, 정상인으로 되돌려놓는 일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수감생활 몇 년 하고 나오면 가족도 떠나버리고, 설사 남아있더라도 연을 끊고 무시로 일관하는 게 보통입니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 ‘약’을 또 찾는 악순환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죠.” 잡아들이는 일이야 단발로 끝나지만, 조 형사의 말대로라면 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가족처럼 때로는 친형과 같은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는 까닭에 이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관심을 끊는 순간 이들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마약을 잊고 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일자리라도 하나 알선하고 정착할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그는 부연했다.


- 마약 전과자 무료치료

마약중독치료센터에서 전경수 교수(오른쪽)와 함께. / 김지곤 기자

조 형사가 마약 수사 전문이 된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4년 용산경찰서 강력반 근무 당시 반장이던 전경수(51ㆍ광운대 마약범죄학과 교수)씨와의 인연 때문. 두 사람은 한솥밥을 먹으며 투캅스처럼 맹활약했고, 이후 전씨가 운영하던 ‘한국사이버마약감시단(www.drugcci.or.kr)’이 의료교실을 열자 함께 뛰어들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서초전자공고 뒤편 야외에 마련한 의료교실에서 마약의존증 극복 교육을 하고, 한 병원의 후원으로 마약 전과자들의 합병증 치료도 해주고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전과자들의 ‘민원’을 들어주고 수감생활 중인 ‘예비’의료교실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단약(斷藥)의 의지를 북돋우는 일은 사실상 더 중요한 사전 치료이다.

“같은 사범들이 한 감방에서 몇 년을 생활하다 나오니, 수법은 오히려 더 교묘해집니다. 99% 이상이 마扇?다시 손을 대게 됩니다. 강력 대응으로 치솟는 마약범죄율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다시 그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합니다.” 마약사범들의 99%가 재범에 이른다는 통계가 맞다면 이들의 출소 후 관리만으로도 마약범죄율을 줄일 수 있다는 그의 논리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마약을 멀리하고 싶어도 의지대로 되지 않는 출소자들이 입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열대여섯 명 남짓한 ‘학생’들이 교정교실에 착실히 출석하고 있다. 조 형사는 “과거에는 이들을 소탕하는 맛에 생활했다면, 지금은 이들이 보내오는 고맙다는 말이 형사 생활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고 했다.


- "약 끊기보다 취직하기가 더 어렵네요"

교정교실 수강생 최모(40ㆍ마약전과 4범)씨 의 경우를 보자. 출소한 지 넉 달째, 그는 그간 취직을 위해 수십 군데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그러나 6년 동안 감옥을 들락거린 그 앞에서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나이 마흔에 가족과 건강을 다 잃어버리고 기댈 곳 없는 처지의 세상살이가 만만하지는 않았을 텐데, 태어나서 이렇게 독한 마음을 먹은 때도 없었다. 그런 그도 지쳤는지, 푸념 먼저 내 놓는다.

“마약의 중독성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시는 분들이 이럴 수 있습니까. 잡아 가둬놓기만 했지, 출소하고 나면 그 뒤의 일은 안중에도 없어요. 물론,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래도 이거 너무 힘드네요.” 색안경을 끼고 마약 전과자들을 대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전과자라지만 재활 의지가 있는 이들은 무슨 일이든 맡겨주면 보통사람 두 사람 몫은 해낼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들 있습니다.” 단약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뭐든 못하겠느냐는 의미였다.

그는 “죽어도 못 끊을 것 같던 마약을 뿌리치고 보니, 세상에 안 될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취직하기는 정말 하늘에 별 달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 형사의 라파 의료조정교실이 백방으로 일자리까지 알아봐주는 데 대한 고마움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조 형사에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제가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열악한 교실 환경에서도 마약과 그들을 떼어놓는 일에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전문기술 교육 등 정작 그들의 자립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현실을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범죄인을 응징하겠다던 젊은날의 형사는 어느새 그들의 둘도 없는 친구가 돼 있었다.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9-02 13:55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